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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의 낙원 전라도 구석구석
산과 새를 찾아 남도 누비기 어언 30여 년
사진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사람들로부터 한시도 떨어져 있지 못한다. 나 역시 여기에 발을 들여놓고 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풍경이나 새,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돌아다녔다.
언제라도 돌아가 누우면 편안한 잠에 빠져 버릴 것 같은 넉넉한 산, 깃을 펄럭이며 정신의 결정체를 창공으로 실어 나르는 새들이 사는 들판으로 나가 가슴으로 이들을 보듬듯 카메라를 들고 마냥 설쳐대야만 안온을 얻을 수 있다.
맑은 아이들의 세계를 담으려고 시작
순진하고 구김살 없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행사 때 아이들의 발랄하고 활동적인 모습을 찍었다.
언뜻 스쳐 가는 꾸밈없는 그 맑은 세계를 볼 때마다 여운이 길게 남았다. 하지만 다시 보려고 하면 사라진 뒤이기 일쑤여서 그 때마다 안타까웠다. 사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이런 모습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카메라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우선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족, 이웃, 아이들의 표정이나 생활 주변의 모습들을 필름에 담기 시작했다. 이런 사진이 한 장 한 장 늘어가면서 사진에 대한 색다른 맛을 느꼈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것은 우연히 촬영대회에 나가 입선하면서부터다. 벌써 30여 년이 지난 까마득한 일이다. 그때부터 주말이나 방학동안에는 카메라를 메고 전국 곳곳을 누볐다. 촬영 나가서 겪은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초가집이나 달구지 등을 찍을 때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다반사고 간첩으로 몰려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또 설경을 찾아 카메라 장비와 등산 장비까지 메고 지리산 등정을 어렵게 하고도 영하 섭씨 20도의 혹한으로 인해 카메라 작동이 안돼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때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당시는 그것이 고생일줄 몰랐다.
가는 곳마다 진 경이 어우러져 있어
우리 나라는 무엇보다도 풍경사진의 낙원이다. 좁은 국토지만 4계절이 뚜렷한 까닭에 철 따라 변하는 경치들은 그 모양이 다채로워 산과 계곡, 어느 곳 하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북미의 로키산맥과 벤프, 벤쿠버,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 등 꽤나 유명하다고 하는 지역과 유럽까지 다녀보았어도 우리 나라처럼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풍경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실속은 없으면서 덩치만 커다란 북미 대륙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자동차로 며칠씩 달려야 하는 것에 비하면 이런 국토를 가진 사진작가들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누구나 자기 고장의 명소들을 자랑으로 여기겠지만 고향을 즐겨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내가 자란 고장 전라도는 풍경사진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는 영암의 월출산과 더불어 일반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경치가 빼어난 장흥의 천관산, 곡성의 설산, 담양의 추월산, 화순의 백아산, 장성의 백암산,해남의 두륜산,순천 조개산.그리고 널리알려진 무주의 덕유산,진안의 마이산 등등--- 모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가을 사진으로는 전북의 사찰인 선운사, 내장사와 전남의 백양사, 대흥사, 송광사, 천은사, 화엄사, 보림사 등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계곡들이 있어 아기자기한 폭포와 여울들이 곳곳에 있다. 이중에서도 지리산의 피아골계곡, 뱀사골계곡, 화엄사계곡은 그 맑은 물과 폭포들이 바위사이와 숲을 지나 흐르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전남 무안군에 있는 60 년 전 목포 수원지에 가꾸어 놓은 단풍나무 숲은 알려지지 않은 가을 촬영 지이다. 또 이 근처에는 백련 저수지가 있다. 수줍게 한 두 송이씩 피고 지기를 두 달 동안 계속하는 하얀 연꽃이 10만 여 평의 넓은 연못에 장관을 이룬다. 이 꽃은 전국에서도 귀한 희귀식물이다.
무안, 해남, 진도, 영암은 간척지가 많다. 이곳에 수로가 있고 수로에는 어김없이 갈대가 우거져 온갖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아침, 저녁이면 일출과 일몰의 화려한 하늘빛에 철새들과 갈대가 어우러져 사진 작가들의 천국이 된다.
전국에서 가장 섬이 많은 전라도는 어느 섬에 가도 풍경사진 찍을 곳은 꼭 있다. 유인 도는 물론 무인도 또한 희귀식물과 새들이 낙원을 이룬다.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한 시간쯤 배를 타고 가면 갈매기 섬에 이른다. 이 작은 무인도에 갈매기의 산란철인 5월 말 경 이 되면 수만 마리의 갈매기들이 새끼들을 기르느라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근처를 맴돌며 하늘에서 곡예를 한다.
일출과 일몰사진으로 유명한곳도 많이 있다. 전라북도 변산 근처 격포 해변은 일년에 3일정도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데 소나무와 어우러진 예쁜 섬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또 전남 여천군 돌산 섬의 향일암과 해남 땅 끝 일출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며 알려지지 않은 진도의 남단 세포의 일몰은 근처의 아름답고 특색 있는 섬들과 지는 해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전라북도 무주 설천면의 스키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덕유산 정상을 20분만에 갈 수 있다. 이곳의 일출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겨울의 설경과 능선 그리고 뜨는 해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이다.
뭐니뭐니 해도 광주 가까이 있는 무등산만큼 매력을 끄는 촬영지는 없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의 주변에 등산 코스로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그리고 무등산은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사랑과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인자한산이다. 완만한 능선과 정상 분포곡선 같은 산 모습은 광주시민들에게 항상 희망과 용기를 붙 돋아준다. 그러나 무등산은 밋밋하지만은 않다. 산 중턱에 깍아 지른 듯한 입석대와 귀봉암, 그리고 정상 가까이 있는 서석대의 웅장한 바위산의 절경은 과히 산중의 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철에 따라 절경을 이루는 이곳이 군사 보호지에서 풀려나 누구나 자유로히 촬영 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산을 이야기하자면 또 빠뜨릴 수 없는 곳이 지리산이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끼고 폭 40km에 이르는 우리 나라 삼신산중의 하나이다. 이 광활한 산중에서 전라도 쪽의 노고단과 반야봉 쪽은 그 아름다운 절경이 옛부터 유명하여 서양 선교사들이 별장을 짓고 살았던 곳이다. 겹겹이 끝없이 펼쳐지는 산, 산, 능선, 능선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그 위로 솟은 봉우리 봉우리들. 여기에 일출이나 일몰이 겹칠때면 가히 신선의 나라에 온 느낌이 든다.
봄철의 진달래와 철쭉, 여름의 시원한 계곡과 폭포, 가을의 억새와 낙엽들 그리고 겨울의 설경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리산은 산만으로서 가치를 다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흐른는 계곡은 원시 숲과 바위들을 지나 폭포와 소를 이룬다. 계곡중의 하나인 뱀사골을 두 시간쯤 오르면 세계에서도 드문 이끼바위와 실폭포에 이른다. 어느 사진작가가 이 곳 사진을 국제 사진전에 출품하여 금상을 받은 다음부터 더욱 유명해 졌다.
지리산을 끼고 흐르는 우리나라 큰 강중 오염이 안된 유일한 강인 섬진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옥정호라는 그림같은 호수가 나온다 전라북도 임실군에 위치한 발전소를 만들기 위한 댐인데 호수 주위는첩첩 산들이 둘러 싸고 있어 북한의 백두산 천지보다 훨씬 아름다우며 가을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구름 그리고 찬란한 태양과 어울려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비교적 편리한 교통편으로 사진 찍을만 한 곳은 역시 사찰이다.
영광의 불갑사와 고창의 선운사는 단풍도 단풍이지만 벼가 익을 때쯤이면 꽃무릇이 이파리 하나 없이 넓은 땅을 발갛게 물들인다. 잎과 꽃이 철에 따라 따로 피기에 상사화 라고도하지만 이곳에 피는 꽃은 상사화가 아니다. 꽃이 필 때는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몰려들어 저마다 앵글에 그 수려함을 담는다.
단풍이 아름다운 선운사, 내장산 외에도 금산사, 백양사, 대흥사, 송광사, 천은사, 화엄사,보림사 등은 이 고장사람들이 아끼는 중요한 사찰이다. 색다른 풍경의 선운사 홍교와 계곡은 전국에서 하나뿐인 문화제 이다.
전라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담양의 죽물시장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였으나 그 향토색 짙은 시골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이 된 것이 무척 아쉽다.
그때 찍어 놓은 죽물 시장 풍경은 옛 추억의 그림이 되었다. 중국의 값싼 죽 제품에 밀려 생산을 대부분 중단했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예술의 고장이다. 그에 걸맞게 유명한 민속놀이도 많다. 광주광역시 대촌동 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끼리 편을 짜 벌이는 고싸움, 장흥의 보름줄 다리기, 여수의 진남 축제, 영암의 왕인 축제 ,남원의 춘향제, 화순의 운주 축제 무안의 연꽃 축제, 함평의 나비 축제 등 수많은 행사가 년 중 계속된다. 이들 축제는 사진작가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민예품들은 그 제조과정이 독특해 피사체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전주의 부채 만들기, 곳곳에 남아있는 질그릇 공장, 광주의 붓 만들기, 그 외 가야금 만들기, 대장간과 농악기 만들기 등등. 조상들의 채취가 물씬 풍기는 소재들이 산적해 있다.
공중 곡예 하는 새들의 춤사위
많은 시간을 나는 새와 함께 보냈다. 겨울이면 큰고니와 두루미 그리고 청둥오리와 기러기, 봄여름에는 백로를 찾아 다녔다. 순천만은 넓은 갯펄과 갈대밭 그리고 많은 먹이로 인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수백 마리씩 찾아들어 두루미의 우아한 자태를 찍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또 해남 고천암의 수로는 수 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드는 우리 나라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다. 우거진 갈대 숲과 농촌 풍경이 새들과 어우러져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다. 철새들이 날아오면 언제나 도래지로 향하고, 계절이 바뀌어 다시 떠나면 이듬해까지 그들을 기다리면서 지냈다. 그래서 철새를 찾아 도래지를 돌며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전남 나주군 세지면 저수지에 찾아온 백 여 마리 고니 떼와 전북 임실군의 백로를 촬영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주의 고니는 심술궂은 사냥꾼의 총소리에 놀라 지금은 오지 않지만 임실군의 백로는 지금도 따뜻한 봄이면 여지없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6월 초순경이면 해마다 보송보송한 솜털을 입은 새끼들이 알에서 나와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아름다운 장면과 어미들이 큰 날개를 펴고 공중곡예를 하는 춤사위 동작도 마음껏 찍을 수 있다.
새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가장 큰 바램은 큰고니가 물위에서 비상하는 장면을 찍는 것일 것이다. 전남 여천군 돌산면은 큰고니를 촬영하기에 조건이 매우 좋다. 소나무 밑에 숨어 촬영하면 300mm망원렌즈를 가지고도 큰고니의 우아한 모습을 앵글에 담을 수 있다.
광주에서 한 시간 내외 걸려 백로를 찍을 수 있는 곳도 여러 곳이 있다. 호남대학 분교 뒷산과 장흥군 유치면 그리고 무안 읍 등이 그 곳이다. 전남 영암호와 전북 군산 해안은 대규모 철새 도래지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새들의 모습을 찍는 것은 비단 두루미, 고니, 백로와 같은 화려한 새만이 피사체가 아닐 것이다. 시골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는 제비나 탱자 울타리에 무리 지어 날아드는 참새도 좋은 소재가 된다.
나는 아직도 내 고장 전라도의 풍경사진 장소를 아는 곳보다는 모르는 곳이 더 많다, 몇 년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인 바래 봉의 철쭉을 찍으면서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고 사방을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면서 셨터를 눌러 댔다. 깨끗하고 푸른 잔디, 사람 키가 넘는 정원수 같은 철쭉들의 물결 그 뒤엔 지리산 능선과 구름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또 황홀한 풍경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전라도의 구석구석을 이제야 시작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새로운 촬영지를 찾아 나선다.
구 영웅 광주 사진대전 초대 작가. 개인전 6회
010-2621-4213
첫댓글 아이와 산과 새와 풍경을 사랑하고 카메라를 사랑하는 영웅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한가지 일을 30여년 몰두한다는것에 깊은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되네요.흰구름님.
지금은 컴터가 있으니 그렇다치고 30년전엔 찍은 사진들은 어떻게 보관하셨나요? 전부 인화해서 가지고 계신가요? 대단하십니다~ ^^
네가 필름은 모두 변하여 상용 할 수없고 다행히 슬라이드 필름은 수정하여 사용합니다.
오히려 인화해 놓은 사진이 요긴하게 쓰입니다.
이것들을 디지탈 파일로 만드는데 3 개월이 걸렸어요.
옮겨 드릴걸.. 그간 댓글이 다 없어져버렸잖아요~~
미안한 생각과 부끄러움 때문에 얼른 옮겼습니다.
자리도 못찾고--. 덕분에 회원님들의 좋은 글 많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