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이사야 35:1-10)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죤이라는 우체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약 오십 마일(80km)의 거리를 매일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어느 날 죤은 거리에서 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이 길이 너무 황량하구나...’
꽃 한송이 피어 있지 않은 황무지 길을 오가며 죤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다음부터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길가에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1년, 2년, 3년......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자전거로 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 여름,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났습니다. 그가 다니는 길은 이제 꽃길이 되었습니다. 죤은 그 꽃길을 휘파람을 불고 다녔습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황무지는 사람이 가꾸면 온갖 꽃이 만발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사야가 전한 이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자리는 황폐한 황무지, 광야 길과 같습니다. 나라는 망했고 왕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노예로 잡혀갔습니다. 웅장했던 솔로몬의 성전은 적군이 불태워버렸습니다. 고향 마을은 전쟁으로 불타고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곳은 황무지가 되어 뱀과 전갈의 처소가 되고 이리와 늑대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의 긴 여로를 걷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포로된 사람들,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나라를 잃고,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달픈 히브리 노예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메시야가 오시면 광야에서 백합이 피는 것처럼 행복한 날이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말씀은
첫째,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마음이 광야와 같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비옥한 땅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막이 되고 광야가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의 마음이 광야와 같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면 마음이 황폐해 져서 광야가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 그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삭막한 세상으로 쫓겨났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했을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분노하며 아벨을 죽이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창4:6-7)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동생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가인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의 마음은 황폐해졌습니다. 아무도 가인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욕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피해망상에 시달렸습니다. 누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불안에 쫒기고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가인이 견딜 수 없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 죄가 너무 무거워 견딜 수가 없나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죽이려하나이다.’ 가인의 마음이 황폐한 광야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 9절 이하에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의 죄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아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비옥한 땅이 저주를 받아 황무지가 되는 것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그가 사는 땅이 황폐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황폐해지면 땅이 황폐해져서 황무지가 되고 광야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황폐해지면 그가 경영하는 일들도 황폐해 집니다.
사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망하고 그 땅이 황무지가 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이 금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 안 밀실에서 바알과 아세라, 온갖 벌레와 짐승, 담무즈라는 미소년과 태양신 아폴로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성전을 떠났고 나라는 망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떠나면 황폐한 황무지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메마른 광야와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날이 되면,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날 것이라 했습니다.
메마른 광야가 어떻게 장미가 만발한 낙원이 됩니까? 그것은 먼저 사막에 비가 내리든지 시내가 흘러야 합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은혜라 합니다. 은혜가 내리면 메마른 땅이 기뻐하고 백합화와 장미가 만발한 낙원이 됩니다.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는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눈먼 사람을 고쳐서 보게 하시고, 귀가 안 들리고 말 못하는 사람이 듣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악령에 눌린자를 해방하시고, 가난한 사람들, 그 당시 천대받고 멸시받던 무리(오클로스)와 백성(암하아레츠)들을 위로하시고 하늘나라의 비전을 선포하셨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언제 기뻐 노래합니까? 사막에 샘이 터지고 시내가 되어 흐를 때, 모든 메마르고 죽어가던 것들이 다시 생명이 넘쳐 기쁨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시내가 흐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미국에 라스베가스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네바다 사막이었습니다. 그곳을 흐르는 강이 있는데 콜로라도 강입니다. 그 강은 미국의 서부 로키 산맥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강입니다. 1929년 당시 미국은 대공황, 우리의 IMF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당시 후버 대통령이 이 그 강을 막아 거대한 댐을 만들고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습니다. 그 댐은 인간이 만든 가장 큰 댐이며, 그 댐은 미드호수라 하는데 인간이 만든 호수중에 가장 거대한 호수입니다. 호수 한바퀴 거리가 무려 1100마일, 1800km 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5배 거리입니다. 그 댐의 물을 관개시설, 수로를 통하여 네바다 사막에 물이 흐르게 했습니다. 그 네바다 사막에 물이 흐르게 했더니 사막이 변하여 낙원이 되었습니다.
백년이 지난 지금 그곳은 휘황찬란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도시가 라스베가스입니다. 후버 댐에 있는 기념비에는 댐 공사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습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죽었는가? 이 사막에 생수의 강, 메마른 땅에 장미꽃이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셨느냐면, 황무지에 장미를 피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그것은 황무지 같은 우리 마음에 장미가 만발한 행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셋째, 내 마음속에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삭막한 황무지 같은 내 마음이 장미가 만발한 낙원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황폐한 우리 마음을 아름다운 장미가 만발한 동산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모시고 살면 메마른 광야 같은 마음이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입니다. 그는 돈이 많았지만 그 마음은 쓸쓸한 광야와 같았습니다.
어느날 누가 예수님이 이 도시를 지나가신다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달려가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이르러 삭개오를 쳐다보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했습니다. ‘내가 오늘 그대 집에 신세 좀 져야겠다.’고 하자 삭개오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셨습니다. 삭개오, 그 마음이 광야같이 황폐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모시자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저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너무 가난하여 고향을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살았습니다. 가장인 황수영은 교회의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강사는 유명한 길선주 목사님이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가난했던 황 수영 집사님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목사님을 집에 모셨습니다. 조그마한 단칸방에 가족은 얼마나 많았는지...너무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보고 길선주 목사님이 한동안 울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그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만, 역시 하나님을 믿는 이 가정은 어찌 이토록 가난하고 애처롭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오니 이 가정을 긍휼히 여기시고 특별한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그날 초라한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가족 모두는 눈물바다를 이루고 펑펑 울었습니다. 나중에 장로가 된 황수영 장로의 아들 중에 황금찬 시인이 있습니다. 황금찬 시인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두고 쓴 시에 어머님의 아리랑이란 시가 있습니다.
"어머님은 봄 산에 올라 / 참꽃(진달래)을 한 자루 따다 놓고
아침과 점심을 대신하여/ 왕기(사기로 만든 큰 대접)에 꽃을 담아 주었다.
입술이 푸르도록 꽃을 먹어도/ 허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후 황수영 장로의 네 아들은 교회의 장로로, 목사, 시인,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이 간증은 그의 아들인 황금찬 시인이 간증한 것입니다. 황무지와 같고 광야와 같은 한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살았더니 음악과 예술이 있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