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노예
정 장 표
내 인생시계를 반세기쯤 거꾸로 되돌려보니, 어느 여름날아침 등굣길에 내가 시계 점으로 들어가고 있다.
손목시계의 고장 난 가죽 줄을 고치기 위하여, 중앙통의 어느 시계점으로 급히 들어서면서 "시계 줄 좀 수리해 주세요"라는 말과 동시에 오른손을 남방셔츠의 왼쪽호주머니에 갖다 대는 순간 ,너무도 황당하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하였다. 분명히 그 호주머니에 들어있어야 할 내 손목시계가 없어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것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시계 점에 오기까지의 일들을 찬찬히 더듬어보다가 그제서야 소매치기 당한 것을 알아차렸다. 시계 줄이 고장 나서 손목에 차지는 못하고 남방셔츠의 주머니에 넣고서 등굣길에 쫓겨 급하게 걸어오는데, 누가 내오른쪽으로 앞질러 지나가면서 내 오른발을 가볍게 툭 치기에, 옆으로 돌아보니 별것 아니라서 그냥 시계 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그게 바로 소매치기의 작전이었다. 일당 중 한명이 내 오른쪽을 지나면서 툭 쳐서 나로 하여금 그 쪽으로 신경을 집중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사이에 다른 한명이 내 왼쪽 호주머니 안에 있던 시계를 슬쩍 훔쳐간 것이 분명하였다. 난생 처음 당해본 소매치기였다.
분하고 아까운 마음이 치밀어 올라 도로로 뛰쳐나가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그 일당들이 보일 리가 만무하였다.
잃어버린 그 시계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사주신 내 생애 첫 시계이자 우리 집 최초의 시계로서, 한 3년간 정이 든 시계였다.
시계는 처음부터 없으면 몰라도, 있다가 없으면 잠시라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그 후 몇 달간을 답답함 속에서 지내야 했다.
그당시 손목시계는 태엽시계로서 그다지 정확하지도 않은데다 걸핏하면 고장이 났다. 바늘이 빠지기도 하고 줄이 탈나는가하면, 내부고장이 잦아 분해청소도 자주 하였다.
그래도 손목시계가 워낙 귀하던 시절이라 애지중지하면서 뽐내기도 하였다.
문명이 발달하여 요즈음에야 주위가 온통 시계다.
휴대폰이나 자동차는 물론이고 T.V나 각종전자제품에도 디지털시계가 있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 흔하던 벽시계, 탁상시계, 손목시계는 드문드문 보이고, 길거리에 즐비하던 시계 점포도 길거리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나도 요즈음 들어 손목시계를 차지는 않지만, 그동안 아끼고 정이든 것과, 기념이 묻어있는 것만은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모아두었더니 서랍속이 수북하다.
시계를 보다가 가끔 "내 인생을 하루에 견주어 보면, 지금 몇 시쯤 될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앞으로 사람의 수명이 자꾸만 늘어난다고 하니까 수명을 90년으로 볼 때 나의 인생시계는 이제 오후 6시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게 비유해보니 평소의 초조함과는 달리, 아직 긴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시간약속은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다. 비단 그 이유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빡빡하게 살고 있어, 잠시라도 시계 없이는 움쩍달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계에 꽁꽁 얽매여 영락없이 그 노예가 되어있다.
비록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가끔 한 번씩은 시계의 족쇄를 풀고 시간을 잊어버린 채, 느릿하고 한가한 생활을 만들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계의 족쇄를 풀자는 숨바소님의 뜻에 공감합니다.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29 12:03
부족한 글 봐주시어 고맙습니다.
요즘이야 손목시계 하나 잊어버려도 그리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지만 귀중품이었던 시절엔 마음의 상처가 되었으리라 생각듭니다. 잃어 버린 시계로 인해 상심하였던 이들이 선생님의 글 읽으면 많이 공감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정말 아깝고 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계를 잃고 황당함에 공감과 위로를 전합니다. 시간에 족쇄를 풀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지혜를 가져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공감부분이 있으시다니 매우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잘알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있을때 잘해라는 노래가사가 생각납니다.잊어버린 시계가 평생을 가지요.시계가 오후 6시라 희망을 가져볼까합니다.잘 읽었습니다.
그렇게 늦지않은 것같으니 희망을 가지고 한번 파이팅 해봅시다. 봐주시어 매우 고맙습니다.
시계에 얼킨 엣이야기 공감이 갑니다. 사람이 시간에 억메이고 늙어 가는 것은 시계 탓이아니라.서산에 지는 햇님 탓이지요
좋은글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시계가 시간이요 세월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