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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수필30년사
1.2. 동백수필문학회를 거쳐 간 사람들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동백수필문학회는 정확히 1986년 동백문학회에서 수필분과로 독립해 나와 1987년 동백수필문학회로 독립한다. 제1대 회장으로 오승희, 총무로 권대근이 선임되었다. 동백수필문학회를 조직하고 그해 동백수필문학선집(1)를 발행하였다. 1988년에는 동백수필문학선집(2)를 발간하였다. 1989는 강규인 회원이 가입한다. 1990년 제2대 회장으로 최시병, 총무로 한연순이 선임되었다. 그해 안귀순, 송연희, 유혜란, 하현숙 회원이 가입한다. 그해 동백수필이란 제호로 계간지 형태의 동인지를 발간하였다. 해를 시발점으로 잡는다. 오승희, 최시병, 한연순, 서도형, 오원량, 강규인, 하현숙, 남지은, 김원순, 유혜란, 박양근, 정여송, 윤자명, 강숙련, 김종희, 윤자명, 김도우, 황원준, 서채영, 송명화, 문경희, 박기용 등이다. 안귀순은 늘상 토속적이며 전통적인 우리 것의 미학성 찾기에 눈길을 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을 갖고 있기에 어느 수필보다도 눈맛이나 손맛이 뛰어나다. 섬세한 자연 감정과 깊은 인간의 감각을 갖추고 작품을 창작하였다.
강규인의 수필 세계는 순수 휴머니즘 지향의 노력을 보여 주며 작품 제재의 그림자 형상은 순수의식과 휴머니즘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수필세계로 어느 것이나 향수의 표상하고 있다. 수필집이 두어 권 있으며, 부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원순의 수필 세계는 대지와 인생과 세계에 뿌리박은 대원적인 정신을 보여주며 우리네 전통에 근거한 밝은 긍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수필문학> 출신으로 한국시에서 주는 수필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과하기도 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이 작가는 동시에 또한 현실에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경고를 내리기를 잊지 않았다. 온화한 서정성 속에 단지 감미로운 정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이 그녀의 수필을 읽히는 시로 만들고 있다.
하현숙의수필세계는 고전주의적인 우아함과 낭만적인 감정을 조화시키면서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야유와 자조 그리고 기괴한 환상이 교착하는 그의 수필은 근대라는 병폐에 사로잡힌 고독한 영혼의 노래이다. 신비주의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운명의 지배에 따르는 사람들의 영혼의 필연성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등의 작품이 인간 존재의 밑바닥에 깔려 잇는 영혼의 현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황원준의 수필 세계는 서양 물질주의에 의해 삶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 지식인의 고뇌를 대변하는 것이며 인간 정신과 세계의 탐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부산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동래문화원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김종희의 수필 세계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수필의 형태로 결실시키려는 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사랑을 담담하고 감미로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김도우는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융합시켜 자기의 수필적 위상을 바라보면서 교묘한 시적 구성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다. 엄격한 구성과 고상한 수사를 특질로 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다. 서정 수필가로서 그녀는 낭만주의적 본성을 밑바탕에 깔고 음유시인의 발라드 양식을 사용하여 수필을 창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의 마음에 쉽게 침투하는 산뜻하고 유연한 리듬감이 특징을 이루고 있어 이것은 그녀가 바로 선천적인 수필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투명하고 지고한 삶의 양태를 가진서채영의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풍은 그녀의 작품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배후에는 어떤 체념이 감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윤정기의 작품 스타일은 사실적 수법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여 풍자와 유머가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가 초기에 발표한 작품 특히 직업수필은 특히 오늘날에 반성적으로 살펴봐야 할 만한 작품들이다. 유혜란은사색자로서 가장 예리한 그녀가 이미 소박하게는 노래일 수 없게 된 근대인의 소리를 그야말로 소박하게 노래하는 작가다. 주로 야수성과 신성 어두운 애욕 등을 노래했는데 몇 편의 작품에서는 밝은 해변을 즐겁게 묘사하는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녀의 작품은 고풍스럽다는 평을 듣지만 여자다움과 아름다움으로 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애찬을 받고 있다. 송명화의 수필 세계는 비평의 렌즈를 번뜩이면서 작가 자신이 직접 네 거리로 뛰어나가 현대문명의 병폐와 부조리를 목이 터지게 외치는 그런 지성의 세계이다. 작품집으로 <에세, 햇살 위를 걷다>가 있는데 어느 것이나 절창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교육신문, 전남일보 신춘문예, 제1회 부산수필학회상, 제1회 풀꽃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같은 시대의 대다수 수필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사랑하고 한낮의 빛보다는 밤의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수필가 윤자명의 수필 세계는 한낮의 빛보다는 한밤의 어두움을 노래했고 생의 현실보다는 죽음의 몽환을 사랑하여 그것을 노래한 작가다. 그는 수필가로서 모든 복잡한 상황과 대결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수법을 계속 시도했으며 서정수필가로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독자적인 작법을 개척하였다. 우리는 흔히 작가를 가리켜 “미래를 말하는 예언자”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이 작가에게 아주 잘 이울리는 말이다. 윤자명의 수필집 <도요 속의 꽃>은 지성적 관조가 특징을 이룬다. 그녀는 가슴보다 먼저 머리 와 닿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수필에는 인생에 대한 깊고 담담한 관조와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조망이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주는 위안과 인간의 정신을 고원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깊이가 있다. 인생을 보는 작가의 견해는 이치와 논리가 정연해 유현한 맛을 풍긴다. 남지은의 수필세계는 정밀한 분위기에서 풍기는 선풍적인 멋을 그 특징으로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정선된 수필들은 하나같이 선비정신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적 정서와 향기를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암담하고 우울한 정서를 애석해 하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고 마치 수채화를 그리듯이 담담하게 노래하는 작가다.
에이브럼즈는 <거울과 등불>이란 책에서 문학의 기능을 거울과 등불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우선 문학이 되어야 한다. 거울이니, 등불이니, 순수니, 참여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의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좋고 싫음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수필이 상상력이나 예리한 관조, 지적 통찰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채 쓰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나열이어서도 안 되고, 결코 관념의 퇴적장이어서도 안 된다. 화려한 수식어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에 몰두해서도 안 된다. 수필은 삶과 세계에 대한 고도의 세련된 지적 통찰의 기록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 윤자명의 수필은 문학이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몇 편의 작품으로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필은 의미로운 인생의 축소판으로써 작품 속에 작가의 숨결과 체취가 그대로 남아돌기 때문에 몇 작품으로도 얼마든지 작가의 문학적 특성을 추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제1부에 실린 <스크래치 기법>은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스크래치 기법>이란 미술 용어로 바탕을 빨강 노랑 등 원색으로 칠한 다음 검정을 덧칠하고 펜 같은 도구로 긁어서 표현하는 것이다. 밑바탕에 여러 색을 사용할수록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이 작품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목이 아니었을까. 이 제목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상징되어 있다. '아무리 유치하게 덧칠이 됐어도 그 위에 검정을 칠하고 다시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크래치 기법도 있지 않은가'라는 이 수필의 마지막 말은 많은 여운을 남기기에 더욱 수필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중심사상의 상상화를 통해 구수한 수필의 맛을 내는 작가의 기량에 박수를 보낸다.
평자는 수필평을 통해서 수필은 자조나 고백적 성격보다는 관조적 성격으로 해서 문학적 향취를 가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수필 창작에 있어서 관조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색깔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혜안, 즉 관조가 빛난다. 검정색의 예리한 관조를 통한 시작과 끝에 대한 동양철학적 해석은 확실히 남다른 투시다. 그 의미가 분명한 푸른 색도 붉은 색도 아닌 검정색의 내면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목은 글쓰기의 출발선을 자연과 사회 그리고 삶이란 삼각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인식에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수필의 진수는 결구에 있다. 그것은 화가가 새를 그리고 마지막에 찍는 눈과 같다. 눈이 살아 있어야 생명을 느낄 수가 있다. 마지막 문단이나 그 앞 문단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수필의 생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된 부분은 허욕과 유혹의 상징인 현란한 원색이 검은색과 대비됨으로 해서 검은색이 가지는 안정성과 세련된 분위기가 부각된다. "아무리 유치하게 덧칠이 됐어도 그 위에 검정을 칠하고 다시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크래치 기법도 있지 않은가"란 반문을 통해서 작가는 검은색의 포용성, 수용성을 재음미할 수 있게 한다.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듯 인생이란 주제를 그림에 있어서도 스크래치 기법이 통할 거라는 작가의 인식에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녹아 있다. 자기만 돋보이고자, 자기만 튀고자 설치는 단세포적이고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현대적 삶을 성찰하듯 매만지고 있는 작가는 스크래치 기법을 통한 수용적이고 포용적인 인생살이를 펼쳐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주문하고 있다.
제2부에 실린 <남포로 건너기>는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를 보고 나온 작가가 남포로 건널목을 건너면서 보게 되는 자갈치 시장 풍경을 배경으로 해서, 삶과 꿈이란 이원적 과제를 '여과지'란 매개물로 풀어 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여과지'란 단어에 무게 중심을 놓아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는 여과지의 심상을 살리는 장치가 많이 보인다. 남포동과 자갈치, 본성과 이성, 일과 예술, 현실과 환상, 정신과 육체 등의 대비적 문구는 결국 삶과 꿈이란 대칭으로 좁혀짐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할 이원적 존재다.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본성과 이성이 마찰을 일으키고, 일과 예술을 놓고 고민하고, 현실의 중시냐 환상의 추구냐를 두고 사색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정신적 삶에 충실할 것이나 육체적 만족을 추구할 것인가 양 갈래 길에서 선택을 고민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제화 전략은 인간이 생을 영위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혼란의 양상을 남포동과 자갈치 시장을 연결하는 도로를 매개로 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가가 발견한 것이 바로 '여과지'란 것이다. '여과'란 먼지나 이물질을 걸러 내는 일이다. 남북의 땅 사이에 비무장지대가 있어 긴장을 완화시키듯, 삶의 두 영역간에 갈등을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이는 '어느 쪽을 우위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인생의 중대사다'라는 표현에 녹아 있다. 자세히 보면, 이 문구는 멋지게 여과된 것이다. 문맥을 통해 조화와 균형 그리고 중용의 도가 흐르고 있음이 느껴진다.
제4부 수필 <개구리 소리>는 서두부터 문학적 향취를 물씬 풍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오랫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수필로 형상화한 것인데, '개구리 소리'를 제재로 하여 '소리'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는 작가의 개성적 시각이 돋보이는 글이다. 도입부 마지막 문장, '친구는 서로에게 거울이기도 하다'를 읽고 나면서, 평자는 '수필의 문단은 이렇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독백을 뇌까렸다. 예시 문장들을 열거하고, 이를 통합하는 일반화 문장을 비유적인 문장으로 직조하는 능력이 분명 예사롭지 않다. 평자가 읽어나가는 첫 작품의 첫 문단부터 기본기가 갖추어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썼길래 평자가 이렇게 상찬할까 독자들은 궁금히 여길 것이다. 어디 한 번 보자.
우리는 손부터 맞잡았다. (1) 반가움에는 말보다 손이 앞섰다. 메마르고 거친 감촉이 까슬하게 닿는다. (2) 서로의 주름살에서 십수 년만에 만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3) 매일 보는 거울 속에서는 몰랐던 나이테를 한꺼번에 확인하게 된다. (4) 친구는 서로에게 거울이기도 하다.
- <개구리 소리>에서 -
위 인용 예문은 서두 문단인데, 감정의 절제가 돋보이고, 중심 사상을 비유를 통해 구체화시키는 단락 구성이 눈길을 끈다. 문학을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할 때, 형상의 측면에 있어서 수필문장 구성의 원리는 보이지 않는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보여주는 데 있다. 위 문단의 구성 원리를 살펴보자. (1) '반가움에는 말보다 손이 앞섰다'는 표현은 '반가움'이란 감정을 '말보다 손이 앞섰다'는 동작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이는 수필 문장의 형상화 기법으로 수필 문장의 멋을 내는 데 일차적으로 기여하며, 문장을 읽는 맛을 내며, 상상을 통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과정을 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감상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독자가 문장의 표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마음을 의미의 재구성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배려는 훌륭한 수필가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윤자명은 기본기를 갖춘 작가다. (2)의 문장을 보자. '오랜만에 만났다'는 사실을 서로의 '주름살에서 깨닫는다'는 진술도 멋있다. (3)의 문장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거울 속에서는 몰랐던 나이테를 한꺼번에 확인하게 된다'는 것도 일품이다. 시각을 촉각화하여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과 '세월에 묻혀 살았다'는 두 가지 사실을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은 작가의 능숙한 수필독자에 대한 배려다. 작가는 (1), (2), (3)의 예시 문장들을 한 문장으로 일반화하는데, 그것이 바로 (4)다. '친구는 서로에게 거울이 되기도 한다'는 진술이다. 수필 문장은 의미를 상상을 통해서 파악해 나갈 때,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조문을 적절한 표현으로 정리하는 솜씨도 일품이려니와 소주제문을 비유적으로 구성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윤자명은 신춘문예 당선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수필 창작에 힘써온 작가다. 2002년 토지 문학상 수상과 2006년 수필집 발간은 그의 문학적 열정이 오늘도 계속 이어져 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물상에는 의미가 있다. 그 의미는 발견하는 자의 것이다. 윤자명의 수필은 느낌을 준다는 측면에서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수필이 추구하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이고, 그 세계의 구현이기에 윤자명의 글은 단순한 자기 경험의 기록이 아니다. 그의 작품집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이루어 즐기는 것보다 정신적 여유를 회복하는 일과 건강한 육체를 통해 건강한 정신으로 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가의 이런 세계관은 위의 <남포로 건너기>, <개구리 소리>, <스크래치 기법> 등에 잘 드러나 있다. 윤자명의 수필은 현란한 색채로 나타나는 허욕의 삶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색처럼 겸허한 삶을 그려낸 한 편의 멋진 수채화라고 하겠다.
강숙련은 199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수필이 당선되어 등단한 수필가다. 그리니까 처녀 수필집 <얼추왔제>는 등단한 지 10년째 되는 해에 내는 셈이다. 등단 이후 문학 공부에 대한 열정을 그냥 둘 수 없어 부산예대 문창과를 다니며 쏟아 부었다. 오랜 숙고 끝에 한 권의 책을 묶어 내는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줄곧 수필문단과 독자의 각별한 관심을 모은 작가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동인지 <동백수필> 특집에서 그녀의 작품을 다룬 바 있지만, 이 한 권의 책을 읽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참빗>, <나비>, <달을 보며>, <종소리>, <꽃밭에 앉아서>, <서랍을 열어 놓고>, <대숲에 바람이 일면>, <실과 바늘>, <빈집>, <쇄석실에서> 등 주옥 같은 작품들이 38편이나 실려 있다.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수필세계를 진단해 결과, 몇 가지 측면에서 그 문학적 특성을 살필 수 있었다. 그것은 강숙련 수필이 지니고 있는 성격에의 구분일 수 있고, 또한 주제적인 지향성이나 내적 구조의 유형일 수도 있고, 특성의 범주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강숙련의 수필은 1) 낯설게 하기와 서사정략 2) 참신한 관조와 시적 기법, 3) 순수한 서정과 인간구원 4) 견고한 인성과 구도미학 5) 전통적 정감과 정신문화의 특징으로 대별된다.
강숙련의 수필을 관통하고 있는 큰 줄기는 첫째, 낯설게 하기와 서사전략으로 볼 수 있겠다.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은 <나비>다. 이 작품은 서사의 매력을 힘껏 발휘한 수작이다. 미국에서 누드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희가 빼어난 몸매로 한국 남성의 눈을 쏙 빨아들이고 있을 즈음, 작가는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하면서, 작가는 틀림없이 나비를 제재로 그 상징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 편의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이승희 신드롬을 시니컬한 필체로 쓴 작품 <나비>는 서두부터 "낯설게 하기" 전략이 동원된 작품이다. '누드'의 의미를 '다시 태어나는 미래지향의 과정'으로 상승시키는 수법도 일품이다.
두 번째 특성은 참신한 관조와 시적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빈집>은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빈집을 통해 우리 시대의 소외 현상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예리한 관조가 돋보이는 수필이다. '빈집'의 쓸쓸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물화하는 시적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아궁이 속의 잡초며, 비껴가며 서성대는 까치의 모습에다 미동도 않는 먼지의 관조는 일품이다. 비수가 되는 바람 그리고 휘청거리는 낡은 벽 그리고 북풍에 몸서리치는 마지막 남은 쪽문의 묘사가 썰렁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며, 정신이 빠져버린 앙상한 육신의 처참함을 적절한 수사법으로 멋드러지게 잘 묘사해내고 있다.
세 번째로 강숙련의 수필들의 특징 중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정성이다. 그의 글에는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인정이 녹아 있고, 그 인정으로부터 삶의 의의를 깨닫는 작가의 인간적 체취가 드러난다. 멋진 수필가는 제재를 가지고 주제를 겨냥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숙련은 제재를 가지고 주제를 겨냥하는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사물을 포착하여 관조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것은 곧 현실의 삶에 투사된다. 이를테면 자연의 대상 앞에 선 작가는 자연의 완상을 즐기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진지한 모습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달을 보며>는 보름달을 맏며느리의 자리에 견주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습 때문에 힘들어하는 맏며느리의 애환과 그 역할을 서정성에 기대어 잘 그려내고 있다.
네 번쩨 특성은 견고한 인성과 구도미학으로 볼 수 있겠다. 대표작은 <바늘과 실>이다. 인간의 여러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려는 몸짓이다. 바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려는 삶에 대한 겸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면서 야기된 조작된 행복관, 전도되고 도치된 가치관으로 인간의 역사는 갈등의 연속이 아닌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조화'요, '공존'이다. 바늘과 실의 조화와 공존을 통해 내리는 부부 관계의 의미를 말하는 예시 부분은 참신한 비유와 암시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미학적 형상화가 잘 되었다. '따로따로'가 아닌 '서로 함께'를 외치는 작가의 견고한 인성은 전통적인 가치관의 수용임과 동시에 동양적인 사상에 기반을 둔 듯하다. 그는 서랍을 정리하며 투명한 삶에 젖고자 한다. 바로 구도의 자세다.
다섯 번째로 들 수 있는 강숙련 수필의 특성은 전통적 정감과 정신문화의 추구다. 한국적 혼과 미를 발견하려는 것은 결국 '우리 것'의 재발견과 재해석을 의미한다. <참빗>은 참빗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정조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참빗에다 수절하며 사랑을 지켜 가는 수많은 미망인의 자존심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이기에, 그는 '옛 여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하나쯤은 가슴에 참빗을 품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반듯하고 아름다운 새 삶이 동서에게 다시 열리기를 바라면서도 혹여 허방을 딛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에게 보내는 따뜻한 정이다. 작품 <참빗>에는 대세에 밀려 그 존재적 가치와 의미를 잃어 가는 것에 대한 작가의 한없는 애정이 녹아 있는 반면에 빗살 하나 부러진 참빗마냥 몸과 마음이 헤퍼 허방을 디딘 여성에 대한 질타가 담겨 있다.
강숙련 수필집 <얼추왔제>는 읽는 맛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다. 지금이 수필의 시대라 하지만, 수필에 대한 세인의 평판은 썩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우리 수필이 독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강숙련의 수필과 같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새롭고 참신한 인식의 세계를 독자에게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의 수필세계는 활기에 찬 싱싱한 언어들의 놀이터다. 싱그러운 감성과 순수 서정이 조화를 이룬 인정의 샘터다. 그윽한 종소리 들리는 새벽이 여는 아침 햇살 같은 따스함의 세계다. 그의 문학적 바탕이 견고한 만큼 그가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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