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rt24 팽나무 - 네가 있음이 곧 기쁨
Jesus teaches: “For whosoever will save his life shall lose it; but whosoever will lose his life for my sake, the same shall save it. For what is a man advantaged, if he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mself, or be cast away?”(Luke 9:24-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누가복음 9장 24절에서 25절 말씀이다.)
♧ 학명 : Celtis sinensis Pers. / 느릅나무과 팽나무속
♧ 꽃말 : 고귀함(nobility)
늦은 밤 귀가길, 인생이 더럽게 안 풀린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 동네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사곤 했다. 집에 들어가 김치나 과자를 놓고 텔레비전을 보며 신세타령만 하다가 잠을 청했다. 소유 확대는커녕 줄기만 하는 수입, 존재 유지는 가능할지 압박감을 가슴에 안고 쓰러지듯 눕곤 했다.
20여 년 단골이었지만 슈퍼 주인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막걸리를 건네고 돈을 내고 받으면 끝이었다. 나를 패배자로 본다는 인상을 내 스스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동네 입구에서 이 슈퍼 불빛을 보면 드디어 우리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곤 했다.
한동안 이 슈퍼를 가지 않았다. 반대쪽에 이곳보다 넓은 매장의 마트가 들어섰는데, 막걸리 값이 쌌다. 그곳은 10시면 문을 닫았지만, 나이가 드니 밤늦게 술 마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단골 슈퍼는 잊혀져 갔는데, 어느 날 보니 emart24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정겨운 동네 슈퍼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없었다. 내 관심사는 emart24 옆 키큰나무이지만 늘 한결같은 키로만 서 있는 동네 정자목에 가 있었다.
나무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눈길을 두지 않았다. 일단 나무 아래에는 늘 쓰레기봉투가 모여 있었고, 그 옆에는 농협 현금인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 동정을 한다고 그곳을 배회했다가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다 나뭇잎 하나 슬쩍 주워 주머니에 넣은 뒤 정류장에 가서 관찰하곤 했는데, 내게는 팽나무 같았다.
에리히 프롬이 인용한 성경 구절을 보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반드시 예수를 믿고 따라야만 구원과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 나머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독교 교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왜 이 구절을 가져왔을까? 자신을 위해 소유를 늘리는 생활 패턴은 오히려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바치는 것은 물건의 소유는 없지만 존재감은 확장시킨다는 말로 이해해본다.
세상의 중심은 나이지만,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어떻게 증거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서는 확인할 현상이 많다. 자원봉사, 기부, 배려, 협력 등등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도 남을 위해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탄생은 우연이었다고 과학자들이 말한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가운데 그 뜨거운 온도에서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존재했던 지구, 그 생명의 시작은 박테리아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시아노박테리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엽록체가 식물 세포가 되면서 광합성이 이루어지고 이후 산소가 적당히 대기에 채워지면서 동물들이 터전을 가꾸게 되었다. 즉 생명 순환의 중심에는 식물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식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을 위해 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적으로 희생을 바탕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을 빼고 적당한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하거나 자신의 재산에서 적절하게 내어 기부를 하는 것과는 그 바탕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든 위대한 존재인 나무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자 팽나무에 다가가는 내 발걸음은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팽나무 밑에서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어댈 때 현금인출기로 들어가는 눈길이 내 뒷골을 쏘아보는 것도 같았지만, 봉긋한 땅에서 우람하게 자란 줄기를 보며 든든함을 느꼈다. 비록 거무튀튀해 보이지만, 군데군데 검푸른 이끼가 화인처럼 박혀 있지만, 만지면 오래된 시멘트 담처럼 부서질 것 같았지만, 수많은 나뭇가지를 갈래갈래 떠받치고 있는 숭고함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금인출기 반대편 emart24 방향에서 팽나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온전한 팽나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입시학원에서 내건 플래카드가 줄기를 가리고 있어서다. 몸통은 없고 위태로운 팔들만 하늘에서 휘날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팽나무, 팽목항, 세월호. 2014년 그 차가운 봄이 나를 짓눌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을 그 아이들이 지금은 없다.
고개를 돌려 emart24 편의점을 보는 순간 미안했다. 컵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어야 할 아이들,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아이들, 그 아이들이 원인도 모르게 존재를 잃었다. 부모들도 존재감이 무너졌다. 문득 부끄러웠다. 삶을 불평하는 나는 여태껏 살아서 막걸리라도 축내고 있는 게 참으로 미안했다. 인생이 안 풀린다고 여겨도 세끼 밥 먹고 따듯하게 잠을 자는 이 삭정이만도 못한 삶이 슬펐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모르고 산 이 삶이 모욕이었다.
팽나무 학명은 Celtis sinensis Pers.이다. 속명 Celtis는 단맛이 있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일컫는다고 한다. 종소명 sinensis는 중국을 뜻하는데, 라틴어 Sinēnsis(중국인)을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 Pers.는 프랑스 식물학자 같다.
팽나무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 주로 분포하는데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 자생지가 있다고 한다. 특히 바닷가에서 잘 견디며 자라는 수종인데, 뿌리가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팽나무 꽃말은 주로 ‘고귀함’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더 검색해 보니 영어권에서 ‘concert(협조, 조화, 음악회, 합주)’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 순간 또 울컥해진다. 집에서 모두 고귀한 존재들인 아이들, 어디선가 음악회도 열고, 어디선가 합주회도 가져야 할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제는 없다.
지금껏 나는 남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문화해설가 활동이 자원봉사이기는 했지만, 내 공부를 위한 것이라서 시간을 낼 수 있었지 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존재 자체가 누구에게 기쁨이었는지 곰곰이 떠올릴 때가 있었는데, 아마 어머니 빼고는 없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그런 기쁨의 존재가 못되었지만, 자라는 동안에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조금씩 바뀌려고 한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고 감사이기 때문이다. 그 허망하고도 분노에 찬 존재 상실, 절대 잊지 말아야 하지만 갈수록 아프다. 그 아이들을 진도 바닷가 팽나무가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존재만으로도 지구에 생명을 주고 있다. 뒤늦게나마 그 인식이 내게 온 것을 감사드리며, 아이들의 명복을 삼가 또 빈다.
나무교 게송으로 마무리하자.
인생은 안 풀리는 게 아니라
그저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네
나무줄기에 부는 바람은 그 바람대로
나뭇가지를 휘감는 바람은 그 바람대로
나뭇잎을 쓰는 바람은 그 바람대로
모두가 바람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네
존재로 흐르는 삶은 그 자체로 기쁨이라네
우리 존재를 있게 한 나무에게 감사하세
우리 동네 어귀에 분명 정자목 있을 것이네
오며가며 인사하며 감사하세
존재는 기쁨이고 감사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