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우선봉일기(兩湖右先鋒日記)》는 1894년 제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조정의 진압 관군이었던 장위영(壯衛營) 우방선봉진(右方先鋒陣)이 농민군을 진압·토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6하 원칙에 따라 생생하게 기록한 군영 일기(陣中日記)이다.
'양호(兩湖)'란 충청도(호서)와 전라도(호남) 지역을 뜻하며, '우선봉(右先鋒)'은 이 지역에 파견된 관군 진압 부대 중 우측 선봉대를 의미하고 있다. 내용은 당시 진압군의 핵심 지휘관이었던 이두황(李斗璜) 등이 중심이 되어 작성하였으며, 총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작성자 이두황이 1894년(고종 31) 9월 10일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정했을 때부터, 진압을 마친 후 서울로 귀환해 인신(도장)을 반납한 1895년 2월 18일까지 약 5개월간의 기록을 남겼다.
云○牒報巡撫營軍務衙門曰,卽到順川營將牒報內,東徒三名捉得大會軍民,卽爲砲殺,後姓氏名成冊修正上送,是如爲乎。
協左水營出陣領官牒報內,今月初一日到寶城郡,搜捉東徒三十二名,砲殺後姓氏名成冊修正上送,是如爲有乎所。
長興守城軍及各面民人與碧沙驛民人等,捉納東徒中查得死罪者,合五十五名,並爲結顆後,並與順天營將及左水營領官所報結顆東徒姓氏名合錄修成冊牒報云云。
成冊金用模鄭仁淑安允西盧判己梁仁三文允權文金永辰方斗根
方喜云孫致京魏大元崔局信
魏季鳳安永牙李崇伊玄長祿崔斗洪高用玄吳斗九伊
앞서 언급된 보고자(또는 진압 부대)가 순무영군무아문(巡撫營軍務衙門)에 첩보(보고)하기를, "방금 순천영장(順川營將)의 첩보를 받았는데, 그 안에 ‘동학도(東徒) 3명을 붙잡아 군민(軍民)을 크게 모아놓고 즉시 총살(砲殺)하였습니다. 그 후 성명(姓氏名)을 기록한 성책(成冊, 명부)을 수정하여 올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협좌수영(協左水營) 출진령관(出陣領官)의 첩보 안에는 ‘이번 달 초하루에 보성군(寶城郡)에 도착하여 동학도 32명을 수색해 붙잡아 총살한 뒤, 성명을 기록한 성책을 수정하여 올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장흥(長興)의 수성군(守城軍) 및 각 면(面)의 백성들과 벽사역(碧沙驛)의 백성 등이 동학도를 붙잡아 바친 명단 중에서, 죄를 조사하여 죽여야 마땅한 자 도합 55명을 모두 목 베어 처형(結顆)하였습니다. 이들을 앞서 순천영장과 좌수영령관이 보고한 처형된 동학도들의 성명과 합하여 기록하고, 성책(명부)을 새로 작성하여 첩보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책(명부)] 김용모(金用模), 정인숙(鄭仁淑), 안윤서(安允西), 노판기(盧判己), 양인삼(梁仁三), 문윤권(文允權), 문김영진(文金永辰), 방두근(方斗根), 방희운(方喜云), 손치경(孫致京), 위대원(魏大元), 최국신(崔局信), 위계봉(魏季鳳), 안영아(安永牙), 이숭이(李崇伊), 현장록(玄長祿), 최두홍(斗洪), 고용현(高用玄), 오두구이(吳斗九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