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림 – 불세례
"전도사님 처녀를 구한다면서요?”
주일 예배를 마친 오후, 혼자 자취하고 있던 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도사님 처녀를 구한다면서요?하며 모르는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는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와 잘 아는 여전도사님이 전화에다 영문을 모르고 있는 나에게 자기 교회 피아노 반주자라고 하였다.
봉사하는 개척교회 목사님 사택에서 예배 후 점심식사를 같이 하다가 “이선생. 이선생은 남자 앞에서는 말도 못하지. 밥도 못먹지?”라고 놀렸더니, “왜 말을 못해요. 말 잘해요. 왜 밥을 못
먹어요? 잘먹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분의 아들 신학대학 다니는 전도사가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한번 말해보라고 하고 전화를 걸어 바로 전화기를 건네 주었더니 받자마자 한 말이 “전도사님. 처녀를 구한다면서요?”라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어찌 이리 당돌한 처녀가 있나?하고 당장 택시를 타고 30분 걸리는 교회로 달려가게 되었다.
처음 본 인상은 호리호리하고 다소 바랜 청바지를 입은 다리로 키가 작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이 내 눈에 너무 이뻤다.
그 때가 1980년 6월 초순이었다. 그 다음 날 정식으로 만나자고 하여 그 당시 만날 장소로는 학생들은 빵,집, 어른들은 다방 뿐이었는데, 한 방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시간 전에 나가 기다렸으나 약속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휴대전화도 없었고 삐삐도 상용되지 않았을 때라 연락할 어떤 방법도 없었기에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두시간 반 정도인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을 때, 검정색 치마에 하얀 브라우스를 입고 지금의 아내가 나타났다.
낮이었지만 좀 어두웠던 지하다방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본 아내의 모습은 너무나도 청순하고 분에 넘치도록 아름다와 미녀와 야수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아도 나뭇군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이 생각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당시 언니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하고 있었는데 나올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와 형부가 부부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있기
가 곤란해 갈 곳도 없고 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아무튼 오래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만난지 21일만의 결혼 스토리의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 만났다. 그야말로 가진 것도 없고 8남매의 맏이인 도무지 결혼할 형편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그렇게 밀어부쳤는지 모르겠다.
그 때가 신학교 2학년 다니며 교육전도사로 일할 때였는데, 1980년 5월 광주사태가 일어나 학교가 휴교하면서 일찍 방학에 들어간 때였다.
그당시 잘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말밖에 없었던 것같다. 말로는 무엇을 약속하지 못할손가? 하늘의 별도 따줄 태세였다. 며칠 후 집에 간다기에 마중 나간다고 갔다가 기차로 다음역까지만 가다가 내리겠다 하고는 결국 끝까지 따라 간 것이 논산의 집에까지 가서 넙죽 미래 장인 장모께 절하고 딸을 예쁘게 잘 길러주어서 고맙다 하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 전에 해 본 것도 아닌데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났는지는 나도 몰랐다. 결국 며칠 후에 부모님 상견례가 있었고 내가 서둘러 결혼날자를 바로 잡았던 것이 21일 만에 결혼식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내가 “무엇이 급해 그렇게 빨리 그것도 여름에 결혼하려느냐?”고 해서 “우리 집에 냉장고가 없어서 놓아두면 쉴 것같아서 그런다”고 밀어 붙인 것이다. 용감해야 미인을 얻는다고 하였던가?
정신차리기도 전에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무엇에 홀린 것 같고 속는 것같아 결혼식 사흘 전에 다시 집으로 도망가다시피한 미래의 아내를 데리러 가 같이 내려 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종종 “어떻게 만난지 21일 만에 자기 짝인줄 알고 결혼할 수 있느냐?”고 묻곤 하였다.그 때마다 나는 3년 21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유인즉 군에서 제대한 여름에 큰 기도원에서 3천 명씩 모여 여름산상부흥회를 할 때, 그당시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들 밑에서 찬송인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7월과 8월이면 매 주 다른 강사들이 연속으로 집회를 할 때였다.
그 때 강사들은 한국의 1세대 부흥사들로서 오관석, 김충기, 강달희, 이천석 목사님 같은 분들이었다. 누군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젊은 전도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래 강대상을 손바닥으로 치며 찬송인도를 하다가 주여! 하며 통성기도를 인도하는 모습을 보고 기특했던지 한번은 오라고 하더니 앞으로 결혼할 짝을 위하여 3년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아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사역자가 될 동역자를 구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이후부터 3년을 기도한 후, 결혼하려고 연속적으로 7번 선을 보고는 마음에 확신이 들지 않아 있던 차에 “전도사님. 처녀를 구한다면서요?”라고 해서 만난 지금의 아내였기에 3년 21일 만에 결혼한 것이요, 선은 아니었지만 8번 째 나타난 처녀였던 것이다. 보는 순간 이뻤기도 하였지만, 기도한 응답으로 알아 두 말할 필요없이 남에게 뺏길까봐 번개처럼 잽싸게 행동한 것이다.
사역자의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두 가지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목사로서 평생 한 번 밖에 결혼 안할텐데 이왕이면 예쁘야 한다는 것이며, 두번 째는 내가 그당시 아버지 피부를 유전받아 여드름이 많이 나고 겨울에는 습진이나 고름이 생기는 큰 뾰루지로 피부가 안좋으니 피부 하나만큼은 좋았으면 한 것이다. 그런데 3년 기도한 기도의 응답으로 그런 아내를 얻게 된 것이다.
오랜 후에 아내에게 물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의 확신이 들어 당신과 결혼했는데,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아무 것도 없는 나와 결혼할 생각을 했는지?”를…. 그랬더니 “내가 하나님의 음성
을 듣지 않았다면 당신하고 결혼했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친정 엄마가 자기 딸이 사모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자기는 안한다고 하였는데, 한번은 금요일 저녁 혼자 교회서 기도
하던 중에 몸이 공중에 번쩍 들려 올려져 “주님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다 가난했지만,그것도 머리를 장발로 하고 바짝 말라 광대뼈가 튀어나와 인물도 아닌, 그리고 어떤 조건에도 결혼할 처지가 아닌 신학생과 결혼하려고 할 때, 혼자 해안가를 거닐며 하나님께 물었다고 한다. “그 때 목회자 사모하겠다고 한 그 사람인가?라고… .
그 때 받은 응답이 그 때부터 12년이란 세월을 공부 뒷바라지 하고 지난 39년 동안 처음에는 어린 두 딸데리고 네팔, 인도, 영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10년 사역 후, 또 다시 열세 살 터울의 늦둥이 딸을 데리고 미국에 온지도 22년이 되었다. 외교관도 아닌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다섯 나라에서 산 것이다.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고생을 해도 국제적으로 고생했다고… .” 그러면서도 한편 돈주고도 못하는 여행과 다른 나라 문화 관습을 배우고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등,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제나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가서 교수생활하면서 안정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그런 길을 막으시고 지금의 사역으로 인도하심이 시대적인 하나님의 계획 속에 되어진 만남이었던 것이다.
다가온 엄청난 영광의 부흥의 비전을 주시면서 그를 위한 믿음과 순종과 희생과 그토록 기나긴 인내의 연단과정을 같이 견뎌낼 동역자로 주셨던 것이다.
한 번은 한국으로 나갈 길을 막으시고 영문을 몰라 힘들어 하고 있던 때에 꿈을 꾸었다. “90도 수직으로 된 높은 절벽 꼭대기에 아내와 세 딸들을 올려 놓고 정작 나는 힘이 없어 두 팔로 매달려 올라가지 못하여 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 속에 있을 때에 아내가 두 손으로 나를 끌어 올려 주었다.
“휴”하고 아내 왼쪽에 앉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까마득히 절벽 아래에서 새까만 개미같은 군인들이 마치 미국 남북전쟁 시의 굴려서 가는 대포의 포신들을 그것도 수십 개를 우리를 향해 높이 조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큰일 났다 생각하는 순간에 아련하게 ‘쿵 쿵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걱정하던 것하고는 달리 포탄이 우리가 있던 곳의 1/3도 못미치는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의 동역으로 적의 포탄이 미치지 못하는 높은 위치에 온 가족이 올라와 앉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얻게 될 열매의 많은 부분은 그 때 7번 선을 연속적으로 보고도 선택
하지 않고 선택받지도 못하여 거의 포기할 때쯤 8번 째 나타나 "전도사님.처녀를 구한다면서요?"라고 장난처럼 전화에다 말한 아내 덕이다.
그리고 한번 밖에 없는 기회인 그 아내를 잘 얻은 것이다. 그것도 예쁜 세 딸을 덤으로 말이다. 거기에다 두 사위와 세 손자까지 주셨다.
늘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기도제목 중 하나가 이 아내를 주신 것이다. 나도 몰랐고 아내도 꿈에도 몰랐던 시대적인 영적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수많은 예언적인 약속들이
열매 맺는 그날에는 더욱 큰 간증이 될 것이다.
이는 내 글을 보지 않는 아내에게 보내는 나의 진심이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언 18:22).
킹덤 빌더즈 전두승 목사
L.A 글로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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