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막걸리 한 잔을 했습니다.
사실은 어제 하려고 했었는데(며칠 전 한 지인과 '송년회'를 하느라 김치부침개 반죽이 남아 있어서),
아직 일도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미국에 있는 그림 가져오는 문제), 너무 혼자 기분내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어,
하루를 늦췄던 건데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침이었는데,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한 지인이드라구요.
"오늘 뭐 해요?" 하고 묻기에,
"특별히 할 일은 없는데, 신경 써야 하는 일 하나에 묶여 있어서......" 하고 제가, (미국하고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는 중이어서, 제 코가 석자나 빠진 상태로 여유가 없어서)조금 난색을 표명했는데,
"그럼, 안 되겠구나......" 하고 혼잣말 비슷하게 하는데,
그 분이 안 돼 보이드라구요.
그 양반도 나름 바쁜 사람인데, 가으 내내 저와 술 한 잔 하고 싶어했는데도 못한 채 계절을 넘겼었는데,
그 날 시간이 났기 때문에 저에게 전화를 걸었을 텐데,
제 사정이 그랬기 때문에... 만남을 뒤로 미루거나, 못한다고 해야 할 상황이었답니다.
그렇지만 얼른 상황파악을 했던 저는,
"그렇지만, 오세요! '송년회'나 합시다!" 했더니,
"무슨 송년회요?" 하고 그 분이 묻더군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지금이 연말이고, 둘이 모처럼 만났으니 막걸리 한 잔 하면... 그게 송년회지, 뭐 송년회가 특별한가요? 오세요!"
"그럴까요?"
"예, 서둘러 오세요."
하는 것으로, 둘의 송년회를 했던 겁니다.
그 양반, '김포' 쪽에 살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여까지 오려면 두 시간도 넘게 걸리거든요......
그 날도 전화를 한 뒤(오전이었는데) 근 세 시간 걸려서 점심 때(한 시 다 돼) 도착했드라구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막걸리만 사왔어요." 하고 들어오는데,
야! 막걸리 다섯 병을 사오지 않았겠습니까?(그 양반이 술을 잘 마십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했던 저는, 미리 준비를 해놓았기 때문에,
일단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해서 먹고는(그 양반 국수를 먹으면서도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하드라구요.),
또 바로 '김치 부침개'도 준비해서,
소박하나마 둘 만의 송별회를 했답니다.
(마침 우리가 그럴 때, 미국은 한 밤중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이었기에, 그 쪽에서 저에게 보낼 연락은 없었답니다.)
그 양반은 모처럼 술 한 잔을 하려고 맘먹고 왔던 사람이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저는 뭔가 꺼림칙한 상황이어서 나름 자제하면서 마셨기 때문에, 아무래도 양도 줄이면서 그 분의 기분을 맞춰주었는데요,
제가 모르고 있던 그 양반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듣느라 저녁도 되었고, 또 밤 시간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다가,
먼 곳에 사는 분이라 9시가 되어서는,
제가 떠밀어 보내긴 했는데요,
아무튼 그렇게 계획에도 없었던 한 송년회를 하느라 김치 부침개 반죽이 좀 남아 있었답니다.
그리고 오늘(월요일),
제 아랫글의 상황이, 하필이면 금요일 밤에 벌어졌기에(제 작품을 실어 보내긴 했는데, 가장 중요했던 송금 문제가 해결돼야 선적을 한다는데, 그게 하필이면 여기는 금요일 밤이어서),
제가,
'월요일 아침이 되어야 은행에 가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고,
그 쪽에서 '알았다'는 의견이 왔었기에,
저는 그나마 한숨 돌리고 우리 까페에 글을 올렸던 건데요(그런데도 그 전 글과는 날짜 간격이 컸기 때문에),
당연히 오늘 월요일 아침 일찍,
저는 9시가 되기 전에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요,
오늘이 하필이면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잖습니까?
그럼에도 약속은 지켜야만 해서, 서둘러서 일찍 은행으로 갔던 건데요,
어찌어찌 해서,
9시 반 가까이에야 겨우 송금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그 문제의 또 한 고비를 넘긴 것이지요.
그리고 어차피 나갔던 길에, 장을 봐오기로 했답니다.(요즘 밖에 잘 안 나가서, 식료품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거든요.)
방향도 같아서요.
그렇게 장을 본 뒤에는 또, 동사무소에도 들러... 며칠 안에 있는 그놈의 '아파트 재계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류를 떼어야만 했고, (제가 요즘, 이런저런 문제로 정신 차릴 수가 없네요.)
일을 다 본 다음에야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막걸리 한 병을 사왔답니다.
달랑 한 병을 사오긴 좀 뭐했지만,
한 병이면 됐지요.(더구나 혼자 마시는데)
그리고 저녁이 되어가기에(요즘은 '동지'가 가까워서, 5 시가 되어도 어두워집니다.),
준비를 하는데......
상을 차리느라 잠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아, 타는 소리였답니다.) 뛰어 갔더니,
아, 김치부침개가 타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연기가 나드라구요......
그렇게 한 쪽이 탄, '남궁문표 김치 부침개'와 한 잔을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 탄 부위를 발라내느라,
애를 많이 먹었답니다.
(보통 짜증스러운 게 아니드라구요. 그래도, 며칠 전의 송년회 때보다 맛은 있었답니다.)
그렇다고 어쩝니까? 그렇게라도 발라서 먹어야지요. 이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는데......
그렇게, 오늘, 그냥... 막걸리 한 잔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