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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트로피가 된 오비 볼
비탈에 선 남자를 향해 모두 시선을 돌렸지만 누구하나 그 남자에게 얼른 말을 걸지 못했다. 그 남자의 첫인상 때문이었다.
남자의 키는 180을 넘고 덩치는 100은 훨씬 넘어 보였으며 얼굴엔 알 수 없는 위엄과 카리스마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웃고 있었지만 눈매도 매서웠다.
최사장을 위시한 일행 모두 멍한 트라우마혼란에 빠졌다.
공을 주우러 온, 옆 홀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남자를 시비꾼으로 생각하는 것은 진회장만 아니었다. 최사장, 제비, 쁘리쌰 모두 그렇게 느꼈다. 다만, 그 남자를 향해 캐디만 고개를 정중히 숙여 보였을 뿐이다. 캐디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 고개 숙이는 캐디를 본 진회장의 생각이다.
“우리를 아는 거유?”
평소 느긋한 성품의 진회장이 대담하게 그 남자에게 퉁명스런 질문을 던졌다. 진회장의 말에 그 남자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순간 긴장이 팽팽하게 감싸 돌았다. 스윙차례를 기다리며 들고 있던 드라이브의 그립을 빙그르르 돌리며 진회장이 말을 이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때였다.
캐디가 진회장을 쳐다보며 잽싸게 말을 가로 막았다.
“우리 사장님이세요.”
“뭐여? 사장? 그럼 이 골프장 사장이란 말이여?”
“네. 우리 골프장 사장님요.”
캐디가 진회장에게 대답하는 사이 그 남자가 티잉그라운드에 서 있는 네 사람 앞으로 걸어 왔다. 걸어오는 폼이 마치 어드벤쳐영화에 나오는 킹콩이나 로봇같았다. 걸음을 뗄 적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아, 이런 제가 무례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중 여기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들리기에 올라 와 봤습니다. 하하하하. 정말 재미난 골프하시군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네 사람이 얼굴의 표정을 풀고 까딱 고개를 숙여 골프장사장이라는 그 남자에게 예의를 표했다.
“저는 조달수라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엔 제가 골프장을 돌아보거든요. 허지만 오다가 이 공에 제가 맞을 뻔했습니다. 하하하.”
조달수가 내민 공을 본 순간 최사장의 안색이 확 변했다. 조달수가 들고 있는 공은 바로 자신이 처음 오비 낸 공이었기 때문이다.
“어머 그 공은 최사장님 공인데.”
조달수의 공을 본 캐디의 반응을 최사장이 황급히 깔아뭉갰다.
“오메, 시상에, 똑 같은 공이 한두 개여?”
“맞아요 사장님, 최사장님 공 맞아요. 사장님 고맙습니다.”
캐디가 조달수의 손에서 공을 낚아채듯 옮겨 들며 최사장에게 내밀었다.
“흐미. 아니랑께 내공 아니여.”
자신의 공이라고 속으로 인정했지만, 마치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 같아 최사장은 캐디가 내미는 자신의 공을 부정했다.
“어머, 맞잖아요. 최사장님 공 맞네요. 타이틀리스트 3번. 그리고 이 스크라치보세요. 지난번 라운드 때 사용했던 공이잖아요. 이 공으로 마지막 홀 버디했다면서 스크라치 자랑까지 해놓고 오늘은 왜 오리발이세요?”
쁘리쌰의 핀잔 같은 말에 최사장의 얼굴이 빨개졌고 조달수가 최사장을 쳐다보며 웃었다. 오비OB한방에 망신살 뻗쳤다고 생각하는 최사장에게 조달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하하하. 장타십니다. 어디서 그런 파워가 나오나요?”
“흐미 내 공이 필시 아닌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최사장을 향해 조달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공 제가 기념으로 가져도 될까요? 끝판버디에 첫판 롱홀에서 장타오비 낸 공이니 기념될 만하잖습니까? 이 공 기념트로피 만들어 우리골프장에 진열해 놓겠습니다. 여기 싸인이나 해 주시죠. 대신 제가 라운드 마치신 후 한잔 쏘겠습니다.”
“야아, 사장님 보기보다 멋쟁이십니다.”
제비가 나서며 조달수를 거들었다. 물론 최사장은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자신의 공임을 인정하는 말을 했다. 끝까지 시침 떼지 않는 최사장은 역시 보통사람이었다. 만약 국회의원이었다면 법정에 서는 한이 있어도 절대 실토하는 언행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워쩔까이, 프로도 아닌디 싸인하라고라?”
“프로보다 아마추어니까 더 가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공 밑에 네임보드 붙여 놓겠습니다. 내 오비가 어때서? 이렇게 새겨서요.”
조달수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어떻습니까?”
“아오, 기가 막힙니다.”
제비가 비명 같은 특유의 소리를 지르며 반색했고 쁘리쌰가 박수를 쳤다. 쁘리쌰의 박수에 티잉그라운드에 서 있던 일행도 함께 박수를 친 것은 당연하다. 박수소리가 들리고 떠들썩하자 옆 홀의 이동로를 지나가던 골퍼들이 우루루 비탈로 올라와 이들을 내려다보며 영문도 모른 체 덩달아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당일 오후 8시10분.
카페 아웃인.
쁘리쌰가 어제 백화점 여름맞이 이벤트에서 산 큐빅체인귀고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커피를 들고 제비와 최사장 그리고 진회장이 앉아 있는 자리로 걸어 왔다.
“흐미, 뿌리샤가 또 제비 잡으려고 귀에 쇠고리 용접한 거 좀 보소.”
“언젠가 진짜 제가 최사장님 입에 납땜 해 드릴거에요.”
“호미. 납땜이라고라? 글씨 고거이 불가능할 건디. 내 입술 재질이 신주라 땜빵이 잘 될지 모르겄소.”
최사장이 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쁘리쌰의 드라이버집게 손가락이 최사장의 허벅지를 비틀었다. 쁘리쌰의 기습적인 공격에 최사장이 독사처럼 머리를 솟구치며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카페안의 손님들이 모두 쁘리쌰의 자리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허지만 쁘리쌰는 손님들의 시선쯤엔 아예 신경을 끄고 최사장의 허벅지를 더 요란하게 비틀었다.
“으미, 으미 나 최사장 죽소.”
쁘리쌰가 최사장의 허벅지를 비틀어도 최사장은 아픔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표정이 도둑놈 발바닥처럼 일그러졌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의 가전매장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최사장을 역경에서 구한 것은 제비였다.
갑자기 제비가 카페아웃인의 입구를 향해 손을 번쩍 쳐들자 쁘리샤도 최사장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비와 함께 쁘리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배장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장로님.”
“어서오세요 배장로님.”
첫댓글 골푸 일행들과 골푸치는 이야기 잘보았슴니다.
전편을 읽지 않아 처음엔 조금 이해하기 힘드실겁니다.
그러나 곧 익숙해질거에요.
오늘도 고운날되시구요
최사장이 가장 파워가 쎈것인지 함께한 골푸친구들 최사장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이직 소설 서두라서 그런지 윤곽이 안잡히는 군요..
곧 본격스토리로 들어갑니다
전편 썼던 이야기가 있어 갑자기 방향을 완전히 급회전하기가 힘드네요
주말 멋지게 보내십시오
신장 180이넘는 건장한 체구를 갖은 남자가나타나
최사장 일행에 관심거리를 주엇/군요...
네 정다집님
조달수가 아마 사건을 던질거고 그때부터 재미있을 겁니다
허지만 후편이라 전편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금세 친숙해 질겁니다.
좋은 주말보내시구요
소설 이게 후편인가요.?
잘보았슴니다.
제비와 꽃뱀 전편은 여기 연재하지 않았어요...ㅎ 새로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월요일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