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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 마야 1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다.
마인드로 측정된 환상의 세계, 마야
간혹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궁금
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혹자는 이 세상을 두고 '환상(illusion)'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 세상이 '환상'이라니.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혼란이 더 가중되곤 한다.
도대체 왜 우리가 사는 이 '물질계'를 '환상'이라고 부르는 걸까? 예부터 현인들은 이 물질계를 '마야(maya)'라고 불렀는데, 그 어원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자.
Maya의 '마(ma)'는 산스크리트어로 '측정하다
(measure)'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측정'은 우리의 마인드를 통해서 어떠한 경험이나 현상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밝혀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즉 명명하는 것(naming)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인간이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어떠한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대로 경험되는 곳이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 마야는 인간의 마인드로 측정된 '환상'의 세계다.
측정할 수 있어야 무언가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라는 도구가 없이 인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통기반을 발전시켜 나갈 수 없다.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로 묘사하는 일이 우리 인간의 삶에 안정적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Maya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측정하기(measuring)'의 의미에 대해 더 살펴
보자.
일례로 '뉴트리노'라는 입자는 우리가 그것의 실체에 대해 무지했던 때에도 원래부터 우주에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뉴트리노'라는 입자에 대해 자유롭게 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것의 실체를 인식하여 발견한 누군가가 그것과 관련된 세부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분류하고 개념화해서, 뉴트리노(입자물리학의 중성미자)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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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무어라 규정할 수 없었던 어떤 실체에 대해 세부적 사실로서 구체적으로 명명을 한 이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뉴트리노'를 과학적 실체로서 동의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측정'할 수 있어야, 즉 '이름'이 있어야 무언가를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 마야(maya) 역시
'측정'이 되어야 '확인'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달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없듯이, 우리가 세상을 두고 명명한 여러 가지 이름 역시 이 세상을 가리키는 여러 개의 손가락 중 하나일 뿐,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일컬어 '환상'이라고 부른다.
즉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 마야 2
- 인식의 틀이 바뀌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도 달라진다
무엇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의식성장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마인드를 통해 측정한 논리적 세부사항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야를 '측정'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 목적인 '의식성장'이다.
우리 인간은 신피질의 자기 반영적 의식(self-ref
lected consciousnees)을 통해서 사고하며 성장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먼저 심긴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보고 투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측정(개념화)하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 등이 결정되고 강화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어떠한 정보를 기반으로 인식하고 사고하는 인간의 특수성 때문에, '측정'이 충분히 되지 않으면 의식 성장 역시 힘든 존재다. 또한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인식한만큼 의식 확장의 가능성이 주어지는 존재다.
즉 무엇을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언제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측정하느냐의 문제가 인간의 의식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것이 우리는 마야(maya)를 먼저 개념적으로
충분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의미다.
전혀 다른 인식의 틀, 휴먼 디자인
한편 우리는 이러한 '의식성장'이라는 맥락에서 휴먼 디자인 지식이 주는 유용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번 우리가 사는 마야(maya)가 '이름'을 붙여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 대로 경험되는 세상이라는 점과 '자기 반영적 의식'을 통한 인간의 제한된 사고 체계를 함께 고려해보자.
휴먼 디자인은 전례 없이 깊고 넓고 근본적 수준에서 우주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리적 패턴을 알려주고 있다. 즉 휴먼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가지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의 틀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이제, 이전과 같은 세상이 아닌 것이다.
휴먼 디자인 지식을 전달받은 Ra는 휴먼 디자인을 마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는 '마야의 절대적인 지식(absolute of the mechanics of the Maya)'이라고 말했다.
결국 휴먼 디자인 지식은 우주와 인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매커닉(mechanics)을 정신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논리적인 틀(frame)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 '틀'을 통해 삶이 작동하는 '공식'을 새롭게 인식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좁디좁은 인식의 틀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이 우주는 결코
정지 상태가 없는 계속되는 움직임(movement)
이기 때문이다.
미처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 인간 역시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과 흐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성장하고 깨어나기 위한 여정 위에 서 있다.
약 80년 남짓 이 세상 마야에서 살아가는 동안 여
전히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는
한계를 경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기존에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좁디좁은 인식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높고 넓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될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기 위해 고통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완벽한 수준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의 일부로, 대우주 안에 있는 소우주로, 그리고 형체(form)를 가지고 이 땅에 살아가고 생명으로서,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숭고한 목적이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세상은 내가 보는 대로 화답한다
이처럼 인식에 따라 내가 사는 세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심오한 '충격'이자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가능성' 이기도 하다.
「룸」이란 영화가 있다. 어느 낯선 남자에게 속아 무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3평 남짓한 좁디좁은 공간에서 감금당한 여주인공과 그곳에서 그녀가 낳은 아이와의 끔찍한 일상을 그린 영화다.
'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본 세상이라곤, 좁디좁은 유리천장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몇 개의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TV를 통해서 본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전부다. 이후 드라마틱하게 좁디좁은 룸에서 탈출에 성공하게 된 아이는 진짜 세상으로 나가 더 크고 광활한 진짜 하늘을 보게 된다.
오랫동안 룸에서 갇혀 바라보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된 아이는 처음엔 충격과 두려움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난 후,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3평짜리 룸을 다시 찾아가 작별의 키스를 한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이 알던 과거를 모두 놓아주고 새롭게 펼쳐진 '진짜'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마야는 내가 바라보는 그대로, 세상 또한 내게 화답한다.
우리가 3평짜리 좁디좁은 인식의 틀을 과감히 던질 수 있다면, 그래서 가능한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좁디좁은 유리천장 위로 보였던 좁디좁은 세상이 아닌, 더 깊고 더 넓은 세상을 우리에게 기꺼이 비춰줄 것이다.
이것이 환상의 세계 마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신비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다.
나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떤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