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2일 (토), 충남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 산27 선산으로 금초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산소를 비롯해 집안 산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초를 마치고 선산 위쪽을 바라보다 뜻밖의 모습을 봤습니다. 묘역 한쪽이 크게 무너졌다가 급히 복구된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선산 붕괴현장을 보고도 당사자인 형님들께 바로 이것저것 묻기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날 귀가한 뒤 저녁 한가한 시간에,
산림과에서 산사태 현장을 살피던 습관대로 위치를 확인하고 산사태위험지도와 산림지반특성지도까지 찾아보게 됐습니다.
◆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2025)로 본 묘역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뒤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의 ‘산사태위험지도(2025)’를 열어 같은 지점을 대조해 보았습니다.
노란 원 안이 이번에 사면 붕괴가 발생한 방문리 산27 묘역입니다.
왼쪽 아래 범례를 보면 빨간색이 1등급, 노란색 2등급, 연두색 3등급, 하늘색 4등급, 파란색 5등급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노란 원으로 표시한 묘역 일대가 붉은색 ‘1등급’ 격자와 겹쳐 보입니다.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는 단순히 산의 경사만 표시한 지도가 아닙니다.
임상, 경급, 사면경사, 사면방위, 사면길이, 사면곡률, 모암, 토심, 지형습윤지수(TWI) 등 산사태 발생에 영향을 주는
9개 인자를 이용해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분석한 지도입니다.
과거 전국의 산사태 발생지와 미발생지를 대상으로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하고, 각 인자의 영향력을 반영해 계산된 발생확률을 1~5등급으로 구분합니다.
산림청 설명에 따르면 1등급은 상대적으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구간이며,
1, 2등급은 강우 조건에 따라 산사태 발생 우려가 큰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등급이기 때문에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산사태위험지도는 지형과 토양, 산림환경 등을 이용한 광역적인 확률지도입니다.
묘역을 조성할 당시의 절토, 성토 범위와 성토두께, 다짐상태, 배수시설, 집중강우 때 실제로 형성된 물길 같은 현장조건까지 모두 보여주는 정밀 지반조사 자료는 아닙니다.
산림청 역시 이 지도는 정보제공과 예방활동을 위한 기초자료이며, 개별 필지의 안전성을 확정하는 법적 판단자료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현장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 사면 붕괴가 발생한 묘역을 산림청 자료와 대조해 보니, 해당 위치가 산사태위험지도상 1등급 구간에 걸쳐 있었습니다.
즉 이번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을 위험지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형, 토양, 산림환경 등을 종합한 위험도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은 구간으로 분류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이제 다음 산림지반특성지도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곳인가?’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곳의 흙은 어떤 성질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자료 :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 산사태위험지도(2025)
◆ 산림지반특성지도로 본 방문리 산27 묘역의 지반
앞의 산사태위험지도에서 ‘어디가 상대적으로 산사태에 취약한가’를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산림청 ‘산림지반특성지도’를 통해 그곳의 흙이 어떤 성질을 가진 지반인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산림지반특성지도는 산사태 위험등급을 표시하는 지도가 아닙니다.
산림지역의 토질 특성을 분류하여 나타낸 지도이며, 오른쪽 범례에 보이는 SW, SP, SM, SC 등의 기호는
토목과 지반공학에서 사용하는 통일분류법, USCS(Unified Soil Classification System) 계열의 토질기호입니다.
S는 모래(Sand)를 뜻하고, W는 입도분포가 양호한 모래(Well-graded), P는 입도분포가 불량한 모래(Poorly graded),
M은 실트질(Silt), C는 점토질(Clay)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SW는 입도분포가 양호한 모래, SP는 입도분포가 불량한 모래,
SM은 실트질 모래, SC는 점토질 모래를 뜻합니다.
SW-SM, SP-SM, SP-SC처럼 두 기호가 함께 표시되는 것은 두 가지 토질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경계성 또는 혼합성 지반을 의미합니다.
노란 원으로 표시한 방문리 산27 묘역 주변은 범례와 대조하면 SM 계열, 즉 ‘실트질 모래’ 성격의 지반이 넓게 나타납니다.
다만 이 지도만으로 묘역 자체의 실제 토질까지 SM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실트질 모래는 모래 사이에 미세한 실트 성분이 섞여 있는 흙입니다.
집중강우가 이어져 지반에 물이 침투하고 포화가 진행되면 함수비가 증가하고 유효응력이 감소하면서 전단강도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특히 묘역 조성이나 확장 과정에서 절토, 성토가 이루어졌다면 기존 자연지반과 성토층의 경계, 다짐상태,
배수조건에 따라 집중강우 때 성토부 일부가 사면 방향으로 활동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산림지반특성지도는 광역적인 지반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입니다.
이 묘역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해 입도분석이나 전단시험을 실시한 결과는 아니므로, ‘SM 계열 지반이어서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산사태위험지도상 1등급이라는 조건과 주변 지반특성, 묘역 조성 과정의 절토, 성토, 배수상태,
집중강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참고자료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자료 :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 산림지반특성지도
◆ 산사태위험지도와 산림지반특성지도를 함께 본 묘역
위 그림은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에서 ‘산사태위험지도(2025)’와 ‘산림지반특성지도’를 동시에 켜서
방문리 산27 묘역을 확인한 화면입니다. 노란 원 안이 이번에 사면 붕괴가 발생한 묘역입니다.
왼쪽 아래 범례의 산사태위험지도는 빨간색 1등급에서 파란색 5등급까지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단계별로 나타낸 자료입니다.
노란 원 안의 묘역은 붉은색 1등급 격자와 겹쳐, 산림청 자료상 상대적으로 산사태 위험도가 높은 구간에 위치함을 보여줍니다.
오른쪽 범례의 산림지반특성지도는 위험등급이 아니라 지반의 토질 특성을 나타내는 지도이며,
SW, SP, SM, SC 등의 기호는 앞에서 설명한 통일분류법, USCS 계열의 토질기호입니다.
이 묘역 주변은 앞서 단독 산림지반특성지도에서 확인한 것처럼 SM 계열, 즉 ‘실트질 모래’ 성격의 지반이 넓게 나타납니다.
다만 묘역 자체의 실제 토질은 현장조사 없이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중첩도는 ‘어디가 상대적으로 산사태에 취약한가’와 ‘그 주변 지반은 어떤 토질 특성을 보이는가’를 한 화면에서 함께 보여줍니다.
이번 방문리 산27 묘역은 산사태위험지도상 1등급 구간에 걸쳐 있고, 주변 산림에서는 실트질 모래 계열의 지반특성이 나타납니다.
여기에 집중강우와 묘역 조성 과정에서의 절토, 성토 여부, 배수조건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두 지도는 어디까지나 참고용 기초자료입니다.
실제 붕괴 원인을 단정하려면 기존 자연지반과 성토층의 경계, 다짐상태, 배수시설, 상부 물길, 실제 활동면 등을 현장에서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 : 산림청 산사태정보시스템, 산사태위험지도(2025), 산림지반특성지도
◆ 현장사진과 지도를 함께 놓고 보니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묘역 끝부분이 국부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묘역의 오른쪽 절반이 위에서 아래까지 넓게 움직인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기존 잔디가 남아 있는 왼쪽과 달리 오른쪽은 황토가 넓게 드러나 있고, 급히 흙을 정리한 뒤 새로 떼를 입힌 흔적이 뚜렷합니다.
일반적인 세굴이나 묘역 가장자리의 작은 붕괴라기보다는 묘역 자체의 일부가 활동한 모습에 더 가깝게 보였습니다.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에서는 이곳이 1등급 구간에 걸려 있었고, 산림지반특성지도에서는 묘역 주변 산림에 실트질 모래 계열의 지반특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1등급이라서 무너졌다’, ‘SM 지반이라서 산사태가 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산사태는 경사, 토질, 강우, 지하수, 배수상태, 절토와 성토, 다짐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현장상황과 지도자료를 종합해 보면, 가능성 가운데 하나는 묘역 조성이나 확장 과정에서 형성된
기존 자연지반과 성토층의 경계가 약점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 자연지반은 오랜 기간 형성된 지반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새로 성토한 부분은 겉에 떼가 잘 활착돼 있어도 성토층 내부의 다짐상태와 배수조건까지 안정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집중강우로 물이 침투해 기존 지반과 성토층 경계부의 전단강도가 낮아질 경우, 성토층 일부가 사면 방향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묘역 끝부분의 국부적인 붕괴가 아니라 절반가량이 넓게 활동한 이유도, 이러한 지반 경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봅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장상황과 공개된 지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추정입니다. 정확한 원인을 판단하려면 성토 깊이,
기존 자연지반과 성토층의 경계, 상부에서 유입되는 물길, 배수시설, 실제 활동면 등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산림과에서 맡았던 산사태 업무는 현장을 살피고 위험요인을 조사해 상황을 보고하는 데까지였습니다.
산사태취약지역의 관리계획 수립, 사방댐 설치 여부 결정, 피해지의 복구방향과 공법 결정, 설계와 예산 편성, 실제 공사 추진은
그 이후 담당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가 판단하고 처리하는 영역입니다. 현장조사와 복구공사는 서로 다른 단계인 셈입니다.
가족에게 들은 바로는 현재 급한 부분만 우선 복구한 상태라고 합니다. 전면적으로 다시 손을 본다면
단순히 흙을 덮고 떼를 입히는 데서 끝낼 일이 아니라 물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빠지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산사태 관련 업무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면 붕괴의 마지막 방아쇠는 집중강우로 인한 빗물의 침투와 지하수 등 결국 ‘물’의 영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묘역 역시 자연사면을 절토하거나 흙을 성토해 조성한 경우가 많아, 하나의 작은 인공사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의 집중호우가 그동안 숨어 있던 지반의 약점을 한순간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번 금초길은 풀만 깎고 돌아온 날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살피러 갔다가 선산 묘역의 사면 붕괴 흔적을 보고,
집에 돌아와 1/25,000 지형도와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 산림지반특성지도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조상님들이 모셔진 자리인 만큼 겉모습을 서둘러 복원하기보다, 왜 묘역의 절반가량이 움직였는지 원인을 먼저 살펴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손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신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무너진 지반도 다시 단단히 자리 잡고 산소도 더 튼튼하게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93세 OOO 형님께도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드리는 일이 되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산소는 조상을 모신 자리이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결국 흙과 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금초를 끝내고 나니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산소도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잡풀이 너무 우거져 조금 창피하기도 합니다. 고사리와 산딸기, 잡초가 뒤엉켜 1년만 지나도 금세 정글이 됩니다.
재작년에는 150만 원을 들여 다시 떼까지 입혔는데,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산소이다 보니 자연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전에 “산소는 1년에 다섯 번은 찾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는 곳도 멀고, 형제들 사정도 있다 보니 현실은 1년에 한 번 금초 때 찾아오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풀을 깎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놓입니다.
살아 계실 때 자주 찾아뵙지 못한 마음까지, 풀 한 포기 더 베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석 전 조상 산소 제초작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1년에 한 번 만나는 파종계 진양강공(晉陽姜公) 석(奭)자 주(周)자 후손들의 모임입니다.
낮 12시, 천안논산고속도로 진입로에서 멀지 않은 공주 고마나루 인근 식당에서 점심모임을 가졌습니다.
고마나루, Gomanaru는 말 그대로 ‘곰나루’입니다. 곰과 관련한 오래된 전설이 전해지는 금강변 나루터로, 연미산 아래에 자리합니다.
산소 풀을 깎는 것도 조상을 찾는 일이지만,
흩어져 사는 후손들이 1년에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밥 한 끼 나누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집안 행사입니다.
저는 1961년 5월,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일찌감치 서울시민이 됐습니다.
말하자면 ‘생후 9개월 서울시민’인 셈입니다. ^^
서울에서 살아온 세월이 훨씬 길어졌지만,
이렇게 1년에 한 번 선산을 찾고 집안 어른들과 후손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금초는 풀만 깎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1년에 한 번 내 뿌리를 찾아가는 날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