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외과진료의 선봉장 이국종 교수를 만나다!
날아라 마린보이 : 야생마~린 생생 리포트!/홍보마린의 스토킹
지난 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은 국군이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낸 쾌거였지만,
갖은 기지를 발휘해 소말리아 해적의 도주를 막아냈던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앙심을 품은 해적들의 보복으로 총을 맞고 생명이 위태로웠다.
"한국으로 이송해야한다, 오만 병원에서 상태 호전을 기다려야한다" 등등...
많은 주장들이 난무한 가운데 홀연히 오만으로 날아간 의사가 있었다.
그는 온 국민의 관심을 두 어깨에 부담으로 안고 42일만에 석해균 선장의 상태를 안정으로 돌려놓았다.
아덴만 여명작전을 완벽한 성공으로 만들어 준 또 한 명의 영웅.
지금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를 이끌어가며
대한민국 외상외과의 새 영역을 열어가고 있는 이국종 교수를 만나보자.
해병대와 해군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는 경기함에 갑판수병으로 복무한 해군 수병 출신이다.
Q1. 군 생활을 해군에서 수병으로 근무하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해병대에 대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1. 음...자신의 약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정신력. 그게 멋져보였어요.
제가 로프에 발목이 감기는 부상으로 잠시 육상근무 할 때였어요.
여름에 냉면을 먹었는데 부대에 식중독이 돈거죠.
제가 의대 다니다 왔으니까 보고 종합을 맡겼는데 해병부대 쪽에서는 환자 보고가 안 올라오는거에요.
해병부대 막사로 가봤죠. 겉으로는 여느때와 다름이 없는데 내무실에서는 난리가 난 겁니다.
제가 ‘괜찮으십니까. 의무대 가보셨습니까’했더니 욕이 돌아와요.
해병대를 뭘로보고, 배탈났다고 의무대를 가라고 하느냐는 거죠.
저는 욕을 많이 먹긴했지만 나빠보이지 않았어요.
몸이 괴롭고 힘들어도 정신은 굴복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그게 저는 좋았죠.
‘물 많이 드시고 많이 불편하면 의무대 오십시오’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네요.
Q2. 병원과 소방, 해병대가 손발을 맞춰 환자를 후송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민(병원), 관(소방), 군(해병대)의 통합작전의 완벽한 모범 같습니다.
A2. 네. 진정한 민관군의 합동작전이라고 할 수 있죠.
대한민국에서 여기보다 더 민관군이 하나되어 완벽하게 움직이는 곳이 있을까 싶어요.
소방 헬기가 의사들을 데리고 무사히 서북도서로 이동해요.
현장에 내리면 저희는 출동팩을 풀어서 환자를 응급조치 합니다.
소방헬기 안은 좁아서 치료가 힘들거든요. 그 동안 해병대원들은 헬기에 항공유를 주유하죠.
약 10분 정도. 주유가 끝나면 환자에게 지혈하고 삽관하고 혈액공급하는 응급조치도 끝납니다.
그러면 안전하게 헬기에 환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갑니다. 응급이라 새벽에 출동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해병대원들은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어요.
헬기 유도부터 항공유 급유까지 저희와 완벽하게 움직여 줍니다.
해병대 작전구역에서 환자를 데려오고 치료할 때 단 한번도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없네요.
비록 군사작전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되면
해병대원들도 자긍심이 생길겁니다.
Q3. 패키지된 출동 가방이 정말 대단합니다. 무게도 완전군장 만큼 무겁습니다.
이런 가방들은 본 적이 없는데 교수님께서 따로 구상해서 만드신건가요?
A3. 우리에게는 기본 군장과 마찬가지죠.
최소한의 긴급한 조치가 가능하도록 약품, 장비들이 다 들어있어요.
여기에 긴급혈액 3팩까지 더해지면 더 무거워지겠죠.
그래서 저는 손에 들고 가는 팩보다 어깨에 멜수 있는 백팩을 더 좋아해요.
그래야 헬기에서 내려서 이동하고 환자를 치료하는데 더 편하거든요.
Q4. 현장에 가보면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도 많이 있을텐데요.
훈련하는 영상을 보니까 교수님과 간호사들도 군인 못지않게 몸 쓰는 훈련을 많이 하시는군요.
A6. 해병대원들 처럼 우리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훈련하지 않으면
피가 넘치고 비명이 터지는 긴급한 현장에서 신속한 대응이 나올 수가 없어요.
허둥지둥 댈 것이 뻔하죠. 실제상황에서 투입 됐을 때 소방이나 군에 짐이 되면 안되잖아요.
우리 해병대원들 보다야 못하겠지만 웬만큼은 따라가줘야 임무수행이 가능하겠죠.
저는 아마 의사중에 패스트 로프나 이탈 훈련을 제일 많이 받았을걸요.
저희 간호사와 의사들도 상당 시간의 훈련 경력을 가지고 있죠.
Q7. 진취적인 사고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 대단하십니다.
병원에 들어오면서 봤던 건물 사이에 있는 커다란 헬기장도 교수님께서 추진하신 것 같은데요?
이제 제법 모양을 갖춘 헬기장이 됐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병원 공터에 헬기장이 생길 때까지, 교수님의 노고가 훤하게 그려지네요.
A7. 하하. 헬기장도 원래는 없었죠.
옥상 헬기장은 천장이 하중을 견디지도 못하고 거리가 멀어서 필요가 없어요.
지상에 헬기장이 있어야 해서 처음 헬기 후송 훈련을 할 때 잔디밭에 앉았었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건물사이를 연결하는 곳에 H자를 그려달라고 했죠.
없는 헬기장을 만들어 나간거에요. 스피어 헤드처럼 현실을 뚫고 나가는 겁니다.
처음에는 반발이나 불만이 있더라도 서서히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면 루틴한 일이 되는 거죠.
처음 뚫고 나가는게 힘든거죠. 마치 해병대의 상륙작전처럼.
그래도 저 정도의 헬기장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린 장소에요.
Q8. 외상외과에 대한 교수님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집니다.
항상 분초를 다투고 품이 많이 들어 다들 반겨하지 않는 외상외과에 대한 교수님의 철학을 듣고싶습니다.
A8. 외상외과는 누군가는 해야하지만 힘들고 어렵고, 또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죠.
감히 해병대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의 생명이 조금씩 조금씩 꺼져갈 때 제가 하는 건 생명에 대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일이에요.
해병대가 적진에 발을 내 딛고 교두보를 만들거나 악화된 전선을 뚫고 반전의 기회를 만드는 것 처럼
저는 환자 생명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살아날 수 있도록 반전의 기회를 만들죠.
일단 제가 생명을 살려놓고 나면 다른 팀이 와서 피부를 이식하거나 뼈를 다시 맞추는거죠.
마치 해병대가 확보한 상륙지에 후속군이 행정상륙을 하는 것 처럼.
그래서 저희 외상외과와 해병대는 기본적으로 정서가 같다고 생각해요.
해병대 지휘관은 모두 최전선에서 병력을 이끌죠.
실제 외상외과 의사들이 이런 전통을 많이 따라요. 제일 윗 사람이 최전선에 있다는 신념.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윗사람이 두려워하거나 힘들어서 철수하면 안됩니다.
외상외과는 인원이 얼마 없어요. 이렇게 수 년을 버티며 이어가고 있는거죠.
그래서 외상외과는 항상 군과 함께해야 합니다. 전장에서는 외상으로 인한 부상이 가장 흔하니까요.
그래서 미군에서는 작전지역에 가장 실력있는 외상외과의를 둡니다.
병사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외상외과의 길은 험난하고 더더욱 정신력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