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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칠보산 마을신문 원문보기 글쓴이: 추장
2014.1.18 칠보산마을신문 후원인의 날 행사. 기념 공개 강좌 정리.
우선, 이날 행사소개를 간단히 하면,
마을신문 후원인을 위한 자리였다. 30명 정도 오셔서 따스한 격려의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먼저 사전 축하공연으로 선우엄마아빠( 마루와 노래) 의 노래로 활기있게 시작했다.
신문 편집장이자 대표인 달님은 감사 인사로 기존 발간한 마을신문들을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어와 상영했다.
영상 마지막에 신문6대 강령은 새롭게 다가왔다. "주민의 손으로 마을을 만듭니다....."
노만호 금호동장님께서 인사말을 통해 자목마을회관 건립,동사무소 준공등의 소식을 알려주며 격려 인사를 했다.
이어 이날의 중심행사인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의 강의를 들었다. ppt 화면으로 사진들 많고 내용 이해가 쉽게 되었다.
강연이후에는 며칠전부터 준비한 만두국을 나누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뒷풀이 자리를 가졌었다.
이하 오연호 강연내용 정리. (녹화없이 수첩에 띄엄띄엄 적은것. 대략 이런 내용)
제목은 "무엇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
인사..
이곳 칠보산 마을이 범상치 않은곳으로 느껴진다.
지금까지 어떤 인연으로 매체들을 만들어왔나 그 얘기를 나누고 싶다.
먼저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오마이뉴스 직원들 모습이다. 체육대회 사진등.
오마이에서는 매월 25일에 사원들과 단합대회의 자리를 꼭 갖는다. 이유는 이 일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하기때문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가슴이 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오마이에는 101명의 직원이 있다. 인원이 많은 이유는,
오마이뉴스는 "모든시민은기자다" 라는 모토로 누구나 기자가 되어 오마이에 기사들을 많이 올리므로, 그 기사들을 검증하는 업무량이 상당히 많다.
나는 어떻게 어떤 매체들을 만들어왔나...
(오연호기자 어렸을때 사진을 보여줌)
시골농촌 전남 곡성에 살았고. 우연히 "김유정"소설가의 봄봄 같은 작품을 알게 되어 좋았었다. 농촌소설... 별게 아니구나.. 이런 얘기라면 나도 쓰겠구나 하는 생각과,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김유정 이야기 ... 1930년대 그 당시 박녹주라는 우미관 기생이 있었고 연상의 여인이었는데 열렬히 짝사랑해서 편지를 그리 많이 보냈었다는 김유정 소설가의 일화가 있다.
글이라면 소설이냐 기사냐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그건 뒤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암튼,
나도 어렸을때 동네의 어떤 여인을 짝사랑해서 열심히 편지를 보냈었다. (그 사람과 결혼했을까 안했을까요?^^)
되돌아보니 그게 내 첫 창간이었다.
그 당시 편지들을 간직한 이유는 내 나름 그때도 기자정신이 있었나 보다. 이 기록들을 간직하고 싶어서 필사해둔것들이다.
연애편지 그게 첫번째 매체.
나중에 대학교 국문과를 갔다. 나는 소설을 쓸까 기사를 쓸까....??????
당시에는 기사라면 대자보 계열이었다. 나 대자보를 썼었다. 즉 기사를 쓴것이다.
그 당시에는 있는사실 조차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시대인데 뭘 지어내고 있느냐(소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대자보만 쓰다가 어느날 이걸 중고등학생들에게 쓰는 편지이면 어떨까 싶더라. 참신한 기획이었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에도 났다. '운동권 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편지써서 의식화 한다더라' 라는 보도. (사진보여줌)
불법유인물 그게 두번째 매체였다.
연애편지와 불법유인물의 공통점은 ... ^^
- 목숨걸고 쓴다. 졸지않고 쓰는 글.
- 원고료가 없다.
- 독자와 대상이 분명하다..
그렇게 학생운동하다 수배되고 감옥갔다 왔다.
아! 감옥가서 보니 소설의 힘을 느꼈다. 감방안에선 잡범들과 같이 살았는데, 이들이 태백산맥 읽더니 딱 이해를 하더라..
소설이냐 기사냐의 문제는 일단 이렇고 두고 결국은 기자가 되었다.
감옥생활이후 어떻게 막무가내로 찾아간 곳이 월간 말지 였다. 말지 아는 사람?
내 세번째 매체는 월간 말지 였다. 들어가서 12년 있었다. 1988.1~1999.12.31
조중동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만든 월간지. 요즘으로 치면 뉴스타파 같은 거다.
말지 기자 생활..
기자인지 시민단체 간사인지 모를정도. 월급은 교사의 3분의 1.
글쓰고 전국적으로 몰래 발송하고 배달하고... 그런 일들.
어떻게 말지에서 계속할수 있었나?
월급은 적어도 피곤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를 계획적으로 발굴해서 쓰기때문에 버릴게 없었다.
개근이 중요하고, 개근의 질도 중요한데 짧게 말하면, "자기주도성" 이라고 할까. 자기주도성 개근.
이렇게 해서 12년간 쓴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어도 8권 분량이나 됨.
말지에서 나온건...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았달까...
나와 말지의 관계는 그대로 인데, 외부환경,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환경이 변하더라.
세계를 모르면 뒤지게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 제안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보내달라. 물론 회사에 돈없는거 알았다.
그래서
- 말지 워싱턴특파원으로 간다.
- 자비 부담으로 간다.
- 회사 사정이 나아지면 받을수도 있다^^
- ....
그렇게 무조건 상경하듯 미국으로 갔었다. 3년간 (?).
돈벌이는... 당시 mbc 라디오 <세계는지금> 알바 뛰어서 벌었다.. ^^
오마이뉴스 2000~
2000년 창간한 오마이뉴스.
제호는 당시 김국진 개그맨 '오마이갓...' 에서 힌트^^. 세계화시대이니 영어이름도 나쁠건 없지..
모토는 , - 뉴스는 기자를 뛰게한다, 더 좋은 뉴스는 기자의 가슴까지 뛰게 한다..
여담.... 당시에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성공적이었다. 이사람을 홍대 앞에서 한번 만났는데, 새로운 매체 창간하려한다니까, 컨셉을 심층취재 전문기사로 두고 제목을 '뽕을 빼주마' 로 제안하더라. ^^
결국 오마이뉴스는 '누구나 기자다' 라는 모토로 누구나 시민기자로 열어두는 컨셉으로 가게되었다.
시민기자들이 실제로 10대부터 80대까지 다 있다.
예를 들면, 호응좋은 기사중에 심재철 기자의 기사가 있다. 이사람 새벽3시에 축구보고 기사쓰고 아침에 자기일 출근하는 분.
왜쓰냐 물으면, 그걸 쓰기 좋아하니까, 전문가니까...
실제로 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이 나온것도 200년이 채 안된다. 전에는 다 직접 서로 알렸다.
온라인 매체에는 해마다 트렌드가 있었다.
2002년 시민기자 라는거
2004년 블로그..
2009년 아고라 ...
2012년 sns 들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트위터)
2013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도 하나의 매체 트렌드랄까.
이처럼 새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고민해보니,
-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그 무엇에서 오는것 같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 "친구는 신뢰다"
트위터 (140자 이내) ... "속닥거림은 재밌다"
마을신문도 그렇고 이런 작은언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실핏줄언론이라 부르고 싶다.
1인~10인이하. 장점이라면 비용이 안든다는 점이다.
새로운것을 기획하거나 목표를 찾는데 실제로는 그대로 안되는것도 많다. 그래도 한다.
어떻게 아이디어나 소재를 찾느냐면... 일단 피곤하지 않아야 한다. 즉. 가슴뛰게 하는것을 찾는다.
실패해서 기운 빠질때 있지만, 낙심하지 말자.. 피곤치 않다면 때가 오면 거두리라 생각한다.
피곤하다면, 주체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점검해 봐야할것이다.
가치있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낙심치 말자, 피곤치 않다면 때가되면 이뤄진다.
--------- (이후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
질문: 오마이에서 시민기자들이 기사들을 엄청나게 올릴텐데 어떻게 기사화 되나?
오마이 기사는 기사에 대한 검수를 통과해야 한다. 2천원부터 5천원까지의 기사료가 책정되어 있다.
이래서 한달에 나가는 기사료만 해도 5천만원 정도이다. 직원중에도 이 기사 검수 인력이 많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 클럽에 가입해 주시라~!
오마이뉴스의 특징은, 기사료 말고 독자가 직접 글쓴기자에게 원고료를 줄수 있다는 점이다.
(많이 받은게 재작년? 도올 김용옥교수. (천안함 의혹에 대한 얘기였나.?) 그리고 용산참사(?)때 그 지도부 당사자의 아들이 쓴글도 기사료를 많이 받았었고.. 또 오연호기자 글에도 있었다 한다.)
요즘 덴마크 라는 나라를 연구중이다. 내일모레 3차취재 간다. 유엔 조사로 3-5년 연속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다. 그 비결을 찾는 기획이다. (덴마크 신학자이자 농촌부흥으로 유명한 인물, 그룬트비 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질문: 오연호 기자는 행복하신지?
행복.. 하니까 생각난다. 덴마크에 이런 질문을 했더니, "우리는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꼭 북한 같아 보이나^^??
북한사람들은 다 같은 이유로 행복하다고 말한다더라.(수령님 어쩌고 할듯)
덴마크는 다르다. 모두가 다른이유에서 행복하다라고 답한다.
전 사회가 어떻게 행복을 셋팅할까..... 어떻게 만들고 적용할까... 그런 궁리들 한다.
질문: 가끔 가슴이 뛰다 안뛰다 할때.. 즉 좌절은 어떻게 처리하시나? ^^
^^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변화는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물결의 파장이라도 남게된다. 아무런 역할도 안했어 같은건 없다..
개인적인 특성이라면, 늘 하고 싶은게 많았다. ^^
오마이뉴스에서 단행본 책으로 낸 거는 <진보집권플랜> <새로운100년(법륜)>, <노무현 마지막인터뷰> 있다.
"물론 저도 좌절도 하지요.
광고주를 만난달까 또 어떤 어려운 순간들은 늘 있어요.
그런데 나를 받쳐주는 힘이 있지요. 가족, 그리고 종교!
보통 기독교 하면 진보언론 매체 사장과는 뭔가가 잘 안 맞다고 의아해 하는 분 많은데,
실제로 이게 아주 잘 맞아요. (웃음)
일요일에 교회 가서 셀 이라는 교회단체에서 속장으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예배후 4시부터 7시까지 교회 축구팀 회장을 하고요...
교회에 가면 제가 지극히 수동적 인간이 되는데 또 이게 커다란 자기정제와 균형을 맞춰주거든요.
언론이라는게 누군가를 살리는 역할을 하거나 죽이는 역할 을 하는거라서... 이것에 대한 압박을 종교를 통해 치유합니다"
질문: 마을신문이 오프라인 신문인데 온라인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지?
글쎄.. 지면신문의 지속성이 있을테고, 종이신문 단행물이 여전히 잘 먹히기도 하지만, 영화는 2시간 내내 보는 매체이고 반면에 요즘 인터넷에는 5초영상이라는 장르도 있다. 결국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매체를 통합미디어로 소비하는 듯하다. 어떤 형식보다는 결국은 컨텐츠가 제일 중요하다고 볼수 있다. 올드 미디어건 뉴미디어건...
질문: 마을에 신문이 있다는 것에 어떤 의의를 부여할수 있을까요?
아까 말씀과 마찬가지로, 실핏줄 언론이 지역에 살아있음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다는게 큰 힘이다.
_정리_최창규.
첫댓글 요즘 나를 가슴뛰게 하는 것들이 무얼일까 저도 고민합니다. 그날 강의 듣고서
정리 감솨...
즐겁게 뜨겁게 사시는 분이로군요.
덕분에 좋은 뉴스 잘 보고 있지요.
전에 오연호님 강의는 한번 들은적 있지만 추장 덕분에 복습한 기분이네요. 난 우리 마을신문에 대해 조금더 형식을 빼고 더 소박하게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