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월나라
합려(闔閭) 윤상(允常)
부차(夫差) 구천(句踐)
부용검(芙蓉劍)
와신(臥薪) 상담(嘗膽)
오자서(伍子胥) / 백비(伯嚭) 범려(范蠡) / 문종(文種)
동병상련(同病相憐) 장경오훼(長頸烏喙)
서시(西施)
范蠡
춘추 시대 월(越) 나라의 모사(謀士) 범려(范蠡). 자는 소백(少伯). 월 나라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를 멸망시켰다.
범여(范蠡) : 춘추(春秋) 때 사람으로 자는 소백(少伯). 월왕 구천(越王句踐)을 도와 오(吳) 나라를 멸하고 상장군(上將軍)이 되었으나, 그는, “큰 명예 밑에는 오래 있기 어렵다.” 하고, 바다로 제(齊) 나라에 가서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변성명하고 많은 돈을 벌었다. 제 나라에서는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승상(丞相)을 삼으려고 했지만, 그는 재물을 흩어버리고 다시 제 나라를 떠나 도(陶)란 곳에 머물러 살며,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그는 도에서도 많은 돈을 벌어 큰 부자로 살다가 그 곳에서 천명으로 죽었음. 《史記 范蠡傳》
범려(范蠡) : 춘추 시대 월(越)나라 대부(大夫)로, 자는 소백(少伯)이다.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멸망시켰으나, 구천을 더 이상 섬길 수 없는 군주라고 생각하고 떠났다. 뒤에 장사를 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전한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國語 越語下》
범소백(范少伯) : 소백은 춘추 시대 월나라 사람 범려(范蠡)의 자(字)이다.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켜 복수한 다음 제(齊)나라로 가서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고, 또 도(陶) 지방에 가서 도주공(陶朱公)으로 자호하며 장사로 거부(巨富)가 되었다. 이는 계연(計然)이 구천에게 제시한 7가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계책을 집에 적용시킨 것이다. 《史記 卷129 貨殖列傳》
금주(金鑄) :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자기를 도와 오(吳) 나라에 복수하여 치욕을 씻고 나라를 찾게 해 준 범여(范蠡)가 오호(五湖)에 배를 띄우고 종적 없이 사라져 버리자, 금으로 범여의 상을 주조하여 놓고 매일 아침 배례를 하였다는 고사를 이른다. 《國語》
월(越)나라 임금 구천(勾踐)을 도와 큰 공을 세웠던 범려(范蠡)가 은퇴하여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서 살아갈 때였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살인죄로 이웃 초(楚)나라 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막대한 부를 이루었던 그는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막내아들에게 천금을 주어 초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는데, 장남이 기어코 자신이 가겠다고 우겼다.
도주공은 할 수 없이 큰 아들을 보내면서 초나라 임금에게 신임을 받던 장공(莊公)에게 그 돈을 뇌물로 주고 석방을 부탁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돈이 아까웠던 장남이 장공에게 실례를 하는 바람에 도리어 둘째 아들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장남이 돌아오자, 도주공은 미리 예견했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막내는 내가 부자가 된 뒤에 태어나 큰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만, 장남은 나와 고생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큰돈을 쉽게 뿌리지 못한다. 그래서 막내를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