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9)
퍼펙트 칸 장승철 ・ 2023. 8.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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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9)
#당황공장
33년 만에 금의환향한 우덕
길러준 숙부 권유로 결혼하고 양아들까지 들이게 되는데…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백마 위에 귀인이 올라앉아 수염을 쓰다듬으며 수비마을에 들어섰다.
사동이 말고삐를 잡고 그 뒤에는 하인 둘이 등짐을 지고 뒤따랐다.
이 외진 산골마을에 말을 탄 귀인이 나타나자 온 동네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튀어나왔다.
백마 일행이 하촌어른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말에서 내린 귀인이
“숙부님, 제가 왔습니다”
“누구시오? 콜록콜록”
“우덕입니다”
“뭐라고? 우우우덕이라고?!”
그가 사랑방에 들어가 하촌어른에게 큰절을 올릴 동안 동네사람들이 마당 가득 찼다.
33년 전에 고향마을을 떠났던 우덕이를 아는 사람은 노인 몇명뿐이었다.
우덕이가 하인이 메고 온 등짐을 풀어 가가호호 당황(唐黃)을 한통씩 돌렸다.
“이것이 도대체 뭣에 쓰는 물건인가?”
당황 한통씩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동네사람들 앞에서 우덕이 당황 통을 열고 가는 막대 하나를 집어 쓱 통 옆을 긁자, 이럴 수가!
불이 켜지는 것이다.
“제 공장에서 만든 겁니다.”
남자가 백번, 천번을 부딪쳐야 불이 붙을까 말까 하는 부싯돌이 아니라 단 한번 쓱 긁는데 불이 붙는 당황, 그 당황공장을 하는 우덕이, 그는 수비마을에서 옥황상제 같은 존재가 됐다.
“그래, 당황공장은 어디에 있노?”
“함경도 무산에 있어요. 공장 옆에 유황광산도 가지고 있어서.”
이튿날 우덕이 앞장서고 그 뒤로 숙부인 하촌어른, 하촌어른의 아들, 그러니까 우덕이 사촌인 만덕이와 만덕이 아들 둘도 따라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우덕이 동네를 걸으며
“고향에 오니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 같네요.”
열넷에 고향을 떠나 33년 만에 돌아왔으니 우덕이 나이도 마흔일곱이다.
“숙부님, 목수들을 불러와 서른여섯칸쯤 되는 기와집을 하나 지어놔야 되겠네요.
가끔 고향에 오면 숙부님 신세 지지 않게.”
몇걸음 더 가다가
“여기가 어릴 적에 내가 살던 우리집이네요!”
만덕이 둘째아들 익수가 살고 있었다.
우덕이는 털썩 주저앉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거창하게 서른여섯칸 기와집을 짓지 말고 고향에 오면 여기 이 방에서 머물게.”
숙부의 말에 당장 그날부터 우덕이는 어릴 적 자기 집, 제 방에 거처를 잡았다.
그날 밤,
하촌어른 사랑방에는 비밀회동이 열렸다.
하촌어른, 그 아들 만덕이, 그리고 만덕이 두 아들이다.
하촌어른이 입을 열었다.
“우덕이는 혼인을 했다가 부인이 자식도 없이 일찍 죽어 지금까지 홀아비로 산다네.
그러니 익수를 우덕이 양자로 입적시켜야 돼!”
스물한살 익수 얼굴이 들떴다.
골똘히 생각하던 만덕이가
“아버님, 우덕이형이 아직 마흔일곱입니다.
새장가를 가서 자식이라도 태어나면….”
그때 익수가
“처가 동네에 자식을 못 낳는다고 쫓겨나 친정에 온 참한 석녀(石女)가 있습니다.”
몇달이 흐른 어느 날 우덕이는 숙부 하촌어른의 권고대로 익수를 양자로 들이고 익수 처가동네 석녀도 품고 자는 처지가 됐다.
어느 날 우덕은 벙어리 사동을 백마 태워 함경도로 보내며
“연말에 지배인이 직접 장부를 가지고 내려오라 해라.
그때 이삼천냥 돈도 가져오라 하고.
그런데 산적들이 걱정이다.”
연말에 지배인이 왔는데 돈은 산적들에게 다 털리고 장부만 들고 왔다.
우덕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익수가 할아버지 하촌어른에게 달려갔다.
“문밖에서 엿들었는데 당황공장 이익금이 엄청나대요.”
하촌어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덕이는 고향이 정말 좋다며 낮에는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마실을 다니고 저녁이면 진수성찬을 비우고 밤이면 새파란 마누라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렇게 십여년이 흘렀다.
그간에 숙부가 이승을 하직해 상을 치렀다.
회갑을 한해 남겨두고 우덕이도 눈을 감았다.
우덕이 일생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 불우했고 고생했으나 늙어서는 호강했고 예순까지 살았으니 장수(長壽)도 했다.
우덕이 코흘리개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아들을 숙부 집에 맡기고 야반도주를 했다.
숙부는 우덕이 아버지 약값이라며 우덕이네 몇뙈기 밭과 집을 가로챘고 우덕이를 소같이 부려먹으며 새경 한푼 주지 않았다.
우덕이 열네살 때 고향을 등지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리석게도 우덕이 죽고 나서 양아들 익수와 그의 형이 호적등본을 떼서 품에 넣고 함경도 무산까지 갔다.
당황공장을 찾았으나 아예 당황공장 자체가 없었다.
모두가 우덕이의 연극이었다.
우덕이가 열네살 때 숙부네 집을 나가 마흔일곱에 돌아올 때까지 어디서 뭘 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79)|작성자 퍼펙트 칸 장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