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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 <무릉도원(武陵桃源)>, 1922년, 비단에 채색, 159x406cm, 10폭 병풍,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사진: 이영일 채널A 스마트리포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생의 찬미'전 전시 중
안견(安堅),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복사꽃 만발한 꿈속으로)>, 1447, 비단에 수묵담채, 38.7×106.5㎝, 일본 덴리[天理]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청전(靑田)의 <무릉도원(武陵桃源)>과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두 화가 모두 중국의 자연 시인 도원명(陶渊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의 풍경을 그렸다.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를 잡다가 길을 잃고 동굴속을 지나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원에 가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는 꿈같은 내용이다.
안견의 그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림의 내용이 전개되나 청전의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된다. 청전의 그림은 10폭 병풍 그림인 반면 안견의 그림은 두루마리 형태이다. 두그림 모두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시기적으로는 450년의 시공의 차이가 있다.
이 그림은 청전이 1922년 가을 그의 후원자인 이상필의 요청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그 존재만 알려졌지 실물을 본 사람은 거의 없어, 이 작품의 실체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가 된 것이다.
그림 오른쪽의 1~3폭을 보면, 어부가 노를 저어 처음 보는 동굴 입구에 다달아 동굴을 바라보며, 들어가야 할지 살펴보고 있다. 4~5폭에는 동굴 외부의 울울창창한 기암의 산들과 나무숲 풍경이 보인다. 6~10폭에는 동굴밖의 경이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6폭의 복숭아꽃들 사이로 집들이 보이고, 7폭의 바위산위 소나무 너머로 개울 다리를 건너는 어부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넓은 들판에는 복숭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인적은 없다. 평화롭고 호젓한 풍경이 혼탁한 세상과 동떨어진 이상향의 정경이다.
중국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래 동아시아 작가들은 이상향인 ‘도원’을 저마다의 상상력을 덧입혀 화폭에 담아냈다. 이상범이 1922년에 그린 ‘무릉도원’. 10폭 병풍 크기의 대작으로 그림 상단에는 왕유의 시를 적었다. 사진: 이영일 채널A 스마트리포터(부분도)
작품 위쪽에 쓰여진 제발(題拔) 에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가 지은 '도원행(桃源行)'시의 일부가 적혀 있다. 서화가인 이도영(李道榮, 1884~1933)이 글을 써주었기에, 이 작품은 이상범의 그림과 이도영의 글이 더해진 합작품으로, 그림과 글이 서로 어울린 격조높은 작품이 되었다.
桃源行(도원행)/ 王維(왕유, 699?~759)
漁舟逐水愛山春(어주축수애산춘) 봄산이 좋아 고깃배로 쫓아갔더니
兩岸桃花夾去津(양안도화협거진) 나루터 낀 두 언덕에 복사꽃 피었네
坐看紅樹不知遠(좌간홍수부지원) 그 붉은 꽃에 눈을 빼앗겨 멀리 온줄도 모르고
行盡靑溪不見人(행진청계불견인) 푸른 시냇가에 이르러도 사람은 보이지 않네
山口潛行始隈隩(산구잠행시외오) 산 입구로 가만히 들어가니 음산한 협곡이라
山開曠望旋平陸(산개광망선평육) 곧 산이 열리더니 넓은 평원이 드러나네
遙看一處攢雲樹(요간일처찬운수) 멀리 바라보니 구름이랑 숲이 모인 곳이 있어
近入千家散花竹(근입천가산화죽) 가까이 가니 집집마다 꽃과 대나무가 널려있네
樵客初傳漢姓名(초객초전한성명) 나뭇꾼은 먼저 한나라 이름을 전하는데
居人未改秦衣服(거인미개진의복) 그들은 아직도 진나라 시대 옷을 입고 있네
居人共住武陵源(거인공주무릉원) 사람들은 이 무릉원에 모여 살며
還從物外起田園(환종물외기전원) 도리어 세상 밖 저편에다가 전원을 만들었다네
月明松下房櫳靜(월명송하방롱정) 밝은 달 아래 집 난간은 고요하고
日出雲中雞犬喧(일출운중계견훤) 구름속에서 해가 나오니 개와 닭이 짖네
驚聞俗客爭來集(경문속객쟁래집) 속세의 사람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다투어 모이더니
競引還家問都邑(경인환가문도읍) 서로들 집으로 이끌며 사는 곳을 물어보네
平明閭巷掃花開(평명여항소화개) 동이 트면 사람들은 꽃을 쓸어 길을 열고
薄暮漁樵乘水入(박모어초승수입) 해 질 무렵이면 어부와 나뭇꾼은 물길을 따라 들어오네
初因避地去人間(초인피지거인간) 애초에는 난을 피해 왔는데
及至成仙遂不還(급지성선수불환) 마침내 신선이 되어 돌아가지 않네
峽裏誰知有人事(협리수지유인사) 누가 알았을까 이런 골짝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을 줄을
世中遙望空雲山(세중요망공운산) 세상에서 바라보면 그저 구름덮힌 적막한 산일뿐인데
不疑靈境難聞見(불의영경난문견) 그 신비한 세상 보고 듣다가도
塵心未盡思鄕縣(진심미진사향현) 세상 일 다 끊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네
出洞無論隔山水(출동무론격산수) 골짝을 나와서는 거기 산수를 말하지 않았네
辭家終擬長游衍(사가종의장유연) 이윽고 집을 떠나 이젠 오래도록 머물며 노닐 생각을 품고
自謂經過舊不迷(자위경과구불미) 다녀온 그 옛길을 찾을 수 있을거라 자신을 했는데
安知峰壑今來變(안지봉학금래변) 어찌 알았으리 봉우리도 골짝도 이젠 변해 있는 것을
當時只記入山深(당시지기입산심) 그때는 다만 산 깊숙이 들어가
靑溪幾曲到雲林(청계기곡도운림) 푸른 시내 몇 굽을 지나 운림에 이르렀고
春來遍是桃花水(춘래편시도화수) 봄이 와 온통 도화의 물결 이었는데
不辨仙源何處尋(불변선원하처심) 신선이 사는 그 곳 알 수 없으니 어디에서 찾아볼까 (번역: 맹주상)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1972)은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서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조석진(趙錫晋, 1853~1920)으로 부터 그림을 배웠다. 후에 그의 평생 후원자인 이상필을 만나 그의 자택에서 머물며 이 작품을 제작하여 그의 화가로서의 실력을 화단에 알렸다. 이후 청전은 선전에서 입선, 특선을 하며 조선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 매김하였다. 청전은 종래의 관념산수화의 구도와 필법에서 벗어나, 변관식, 노수현등과 함께 개별 화가의 개성적 필법과 주변의 경관을 스케치한 현실적 시각의 사경산수(寫景山水)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화가로서 원숙한 40대 후반에 그려진 반면, 청전의 무릉도원도는 20대 청년의 작품이다. 비록 청전이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본떴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시대를 떠나서 청전의 작품은 그 구도와 필법, 색채 등에서 안견 작품의 아래가 아니다. 아마 안견이 청전의 이 작품을 보았더라면 무릎을 탁 치고 친구하자고 했을 법하다.
과연 이상향(理想鄕)은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상향을 그리워했다. 과연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사전식으로 설명하면,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다. 한마디로 세상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럴까. 없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더 그리워한다. 나는 서양에서 말하는 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성경을 읽어보았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이상향, 즉 도원(桃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이래 이상향은 문학이나 미술 작품에 숱하게 묘사되어 왔다.
왕유(王維)의 ‘도원행(桃源行)’은 도원, 즉 이상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어부가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 그윽한 곳으로 들어가니 복숭아꽃 만발한 별천지가 있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속세의 일을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도원을 나온 어부는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면 맑은 시내 몇 번이나 지나서 구름 같은 숲에 이르랴. 봄 오면 복숭아꽃의 물을 두루 찾아 나서도 신선 사는 도원을 어느 곳에서 찾을까 구별을 못할세라.” 이러한 한탄은 왕유만의 것도 아니다. 다시 찾을 수 없는 복숭아꽃 만발한 이상향, 그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이상범은 청년 시절 10폭 병풍의 크기에 야심작 ‘무릉도원’(1922년)을 그렸다. 청록산수 형식으로 나름의 도원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상단에는 왕유의 시를 적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대표작으로 꾸민 ‘한국미술명작’ 전시에 출품하여 관객의 주목을 끌었다.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무릉도원 그림이 또 있다. 바로 이상범의 스승인 안중식의 ‘도원도(桃源圖)’(1916년)이다. 현재 이 그림은 국립광주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진열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명품으로 꾸민 전시이다. 사제지간으로 같은 소재인 무릉도원을 그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기야 조선왕조 초기에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은 서화 수집가로 유명했다. 그는 어느 날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거닐었고, 꿈 이야기를 화원 안견에게 말했다. 안견은 3일 만에 대작 ‘무릉도원’을 그렸다. 남의 꿈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꿈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그렸다. 불후의 명작.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상향을 지키지 못했다. 현재 안견 작품은 이국에서 묶여 있다. 나는 가끔 안평대군의 별장이었던 인왕산 자하문 자락의 무계정사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그 많던 안평대군의 미술 컬렉션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왕조 말기의 화단을 지킨 거장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무릉도원을 그린 역작 ‘도원문진(桃源問津)’(1913년)이나 ‘도원행주(桃源行舟)’(1915년) 같은 작품을 남겼다. 청록산수 계열의 이들 작품은 도원을 찾아가는 어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원은 어디에 있을까. 도원을 찾아가는 어부의 모습. 과연 현대인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안중식은 말년에 도원을 자주 그렸다. 나라를 잃고 일제 치하가 되어 더 그랬을까. 현실의 세속을 벗어나 이상향을 그리워한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원으로 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상범의 스승인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1916년에 그린 〈도원도(桃源圖)〉, (1916년). 기다란 화폭에 깊은 계곡과 낙하하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도원도(桃源圖)〉는 상하로 기다란 화면에 도원을 표현했다. 그야말로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계곡은 깊고도 깊다. 저 멀리 원경(遠景)은 바위산으로 용솟음처럼 치솟아 육중하다. 중간 부분의 산자락에 사찰과 같은 건축물이 있고, 바위 사이에 숲을 이루고 있다. 하단에는 물가의 정자에 앉아 있는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물을 바라보고 있는 은사(隱士), 그는 세속의 번다한 일을 잊고 자연과 벗 삼아 소일하고 있다. 하기야 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그래서 산수화 속에 표현되는 인간은 작고도 작다.
자연의 순리는 중요하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두 가지로 나누어 각각 산과 수로 집약했다. 그래서 산수화에서 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교훈. 물은 자신의 이름이나 출신을 자랑하지 않고 아래로만 흘러 결국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경지는 물과 같다.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모습. 산수화는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도 인기를 끌었다. 바로 수기(修己), 나를 닦는 것처럼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안중식 그림 위에 적힌 시는 이렇다.
“짙푸르게 그늘진 나무에 돌길이 미끄럽고 신선 집 정자에는 때마침 노을이 있네. 지난밤 계곡에는 한바탕 비가 내려 복숭아꽃 셀 수도 없이 지는구나.”
세상 살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이상향을 더 그리워한다. 그러나 어떻게 할까. 유토피아는 없다는데. 그렇다면 생각 바꾸기, 바로 이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그렇다면 지옥도 천국이다. 바로 현실 속의 이 자리가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면 뭐가 문제일까. 이상향이 어디에 있냐고? 바로 내 주머니 속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까.
안중식(安中植, 1861~1919), 〈도원행주(桃園行舟)〉, 1916, 비단에 채색, 143.5×50.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원 기증
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2년 10월 25일(화) [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심산유곡의 판타지, ‘도원’을 그리다(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Daum paulchaks님 불로그,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