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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리의 뜻
날짜: 1976. 3. 3(수)
장소: 한국 춘천교회 12230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기성교회의 목사들한테 가서 “목사님, 하나님의 뜻이 뭐요?” 하고 물어보면, “이 녀석아, 하나님의 뜻이 뭐긴 뭐야?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지!”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쎄 말이야…. 그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대답이야!” 하고 대답합니다.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뭐예요?” 하고 물어 보면, 이렇고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야 할 텐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문제라고 하는 것은 대답을 못 하겠다는 말이요, 핑계하는 말입니다. 그런 대답은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대답은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종교인들에게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면 개인을 위한 뜻, 가정을 위한 뜻, 종족을 위한 뜻, 민족을 위한 뜻, 국가를 위한 뜻, 세계를 위한 뜻, 우주를 위한 뜻, 그 다음에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위한 뜻까지 전부 다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 중에서 모든 종교를 통일하겠다는 중심되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런 것부터 정의(定義)를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이 창조했으면 창조할 때의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할 때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으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양이나 돼지를 지었으면 고양이나 돼지를 창조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지었으면 나무를 창조한 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공통적인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목적을 완성한다는 것은 또 뭐냐? 창조목적을 완성하면 창조이상이 실현됩니다. 창조목적이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이상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상실현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실현은 창조목적이 완성되는 데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단계가 그렇습니다. 창조목적이 완성을 본 후에 창조이상의 실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85-164)
여자가 남자보다 정서적인 분야에 더 높고 귀한 위치에 있어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돌아와서 인간을 보면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잘 태어난 것입니까, 남자로 태어난 게 잘 태어난 것입니까? 이왕에 사람으로 태어날 바에는 남자로 태어난 것이 더 좋았겠느냐, 여자로 태어난 것이 좋았겠느냐 하는 걸 물어 보는 것입니다.
남자가 아기를 낳을 수 있어요? 여자가 고생을 해서 아기를 낳아 가지고 젖가슴을 헤치고 젖을 먹일 때의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남자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자가 좋은 줄 알았더니, 그런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여자가 아기자기하고 감칠맛이 나겠구나! 그런 맛을 느끼는 데는 남자들은 구경꾼이로구나! 여자가 한번 되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솔직한 얘기입니다. 남자들은 전부 다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그저 아기를 낳아 주는 데 있어서 구경꾼입니다.
우리 권진이가 여기에 와 있어요. 내가 사랑은 엄마한테 지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엄마하고 둘이 척 방에 들어가서 “이리 와!” 하게 되면 나는 보고도 외면하고 엄마한테로 갑니다. 열 번이면 열 번, 백 번이면 백 번을 그러니까 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천지이치가 그래야지! 공을 들이고 수고한 사람한테 가까이 가는 것이 이치가 아니냐.” 하면서 스스로 위로합니다. “너도 배우지 않았지만 천지의 이치를 따라갈 줄 아누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럴 때는 위대하다고 그럽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아기들을 대해서 사랑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어머니가 클까요, 아버지가 클까요? 어머니가 큽니다. 왜 엄마가 크냐 말입니다. 힘을 들였다면 누구보다도 힘을 들였고 고생했다면 누구보다도 고생했으니까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들이 남자보다도 정서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높고 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동양의 여자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왕지사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을 뻔했어요, 지금도? 아이들이 볼 때, 웃는 것도 아버지야 뭐 멋대가리 없게 “히” 하고 웃지만 어머니가 웃는 것은 여기서부터 쏴악해서 웃는다구요. 그거 맛이 있지요. 남자는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우리 아가씨들이 웃는 것을 보니까 내 편이구만! 내 말이 맞지요?
남자들이 웃는 것을 보면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그저 깨물어 주고 싶어도 깨물 수도 없습니다. 막 정신이 홀려 돌아갈 만큼 사랑스러운 것을 남자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때는 어느 누가 더 좋은 천국에 갈 것이냐? 여자가 더 심정적인 천국에 갈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 태어난 것입니까? 여자들, 이제는 기분이 좋지요? (85-166)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여자의 살을 만져 보면 너무도 부드러워요. 그런데 남자들의 손은 울툭불툭합니다. 그러니까 남자의 손이 남자의 손에 와 붙으면 질색이에요. 그것처럼 기분 나쁜 게 없습니다. 남자의 손은 뻣뻣하고 뿌득뿌득하고 돌 같은데, 여기에 또 그와 같은 손이 닿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모터를 봐도, 이게 강한 강철로만 된 것 같지만 그 돌아가는 면은 납 같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건 만만한 쇠입니다. 그건 천년 만년 돌아가도 닳지 않습니다. 천지이치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전문가는 전문가입니다. 그 강철에다 강철을 대 놓으면 몇 시간 돌아가지 않아서 다 불이 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한 것끼리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울퉁불퉁한 손 위에 남자의 울퉁불퉁한 손을 갖다 놓으면 좋아해야 되겠어요, 안 좋아해야 되겠어요? 싫어야 됩니다. 지긋지긋하게 싫어야 됩니다. 왜? 그건 안된다는 것입니다. 둘 다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한 데 부드러운 것이 와 있으면 둘 다 보존되는 것입니다. 남자의 손에 남자의 손이 맞닿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의 손에 보들보들한 여자의 손이 와 닿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한마디를 하지요. 우리 교회에 한 아가씨가 있어요. 손끝이 부드럽게 생겨 가지고 아주 아름다운 색시입니다. 여자로서는 아주 표본으로 만들고 싶은 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아가씨가 연령이 다 차 가지고 시집을 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약속을 정해 가지고 중매쟁이를 따라 선을 보러 갔습니다. 남자가 괜찮은 집안에서 훌륭한 아들로 자랐는데, 처음 만나서 남의 남자 얼굴을 먼저 볼 수 있어요? 볼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손을 처음에 들여다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을 보니까 남자의 손이 아니고 여자의 손이에요. 여자의 손같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 그것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기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손이 황소의 앞발처럼 두둑해 가지고 투박하게 생겼으면 얼마나 그 여자에게 매력적이었겠느냐! 여자의 손 같지 않고 남자의 손 같았으면 허물을 잡을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의 여자들, 한번 대답해 봐요! 남자의 손이 여자의 손같이 생겨야 돼요, 남자는 남자답게 울툭불툭하게 생긴 게 좋아요? 남자는 남자답게 생겨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수염이 나는 것입니다. 남자가 왜 이렇게 수염이 있느냐? 수염이 났을 때는 뭔가 자극적인 것이 쓱…. 이게 뭐라고 해요? 여자의 살에 닿으면 보들보들하니까 꾹 찔러요. 이게 이렇게 탄력이 있어 가지고 쓱 할 때 자극이 있게끔 만든 거라구요. 수염이 있는 남자를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남자들은 남자로 태어나기를 잘했어요? 왜 잘했어요? 남자는 뭘 해야 되느냐 하면 말이에요, 일을 해야 돼요, 일을.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개척적인 일을 해야 됩니다. (85-167)
만물의 영장을 주장할 수 있는 권위는 남자로부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장(靈長)’ 하게 되면 여자 같은 기분이에요, 남자 같은 기분이에요? 조그만 여자가 주먹도 요만한 주먹을 가지고, 눈은 아무리 커도 요만하고 말이에요, 얼굴에는 수염도 없는 조그만 여자 하나가 “만물의 영장은 나부터다.” 해보라구요. 그거 재수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자들, 한번 해보라구요! “이제 만물의 영장은 나부터다.” 이렇게 째지는 목소리로 암만 얘기해도 남자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덩치가 이만한 남자가 “만물의 영장은 나부터다!” 이래야 어울립니다. 여자부터예요, 남자부터예요? 암만 싫더라도 여자도 대답을 남자부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네에서 주먹이 왔다갔다하고 싸우고 뭐 이렇게 뒤넘이치는 데 여자가 가 가지고 “이놈의 자식들아, 비켜라!” 하면 비키나요? 두둑한 주먹으로, 왕발톱 같은 주먹으로 “이놈의 자식들아, 비켜라!” 이래야 “예이!” 하며 비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영장의 자리를 누가 차지하면 좋겠어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그러니까 기술이라도 한 가지 더 많은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뭘 한 가지라도 더 가진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뭘 하나를 더 가졌느냐? 수염 하나를 더 가졌습니다. 개수로 따지면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누구에게 있느냐? 수로 봐도 남자는 여자보다 한 가지 더 있으니까 그렇게 한 가지 더 있는 사람이 한 가지 덜 있는 사람보다 났다구요. 그러니까 나은 사람이 영장이 되더라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 순리적인 하나님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왜 수염이 없어요? 별수 없이 여자들이 졌지요. 사고방식을 이렇게 처음부터 해 놓아야 여자들이 꼼짝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돌아가서 “아, 이놈의 수염이 왜 없어!” 그러지 말라구요. 그리고 남자들은 지금까지 천대한 수염에 대해서 이제부터는 천대하지 말라구요. 그거 매일 아침 면도하기가 편리해요, 불편해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그래도 천대하지 말라구요. 이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도인이나 도사라고 할 때는 흰 수염이 쓱 나고 지팡이를 높이 잡고 터벅터벅 이래야 되는 거라구요. 여자가 수염도 없이 고깔 쓰고 암만 뚜벅뚜벅해 봐야 재수 없어요. 사실이 그렇지요? 이렇게 볼 때, 만물의 영장이 누구부터예요? 여자들은 할 수 없이 남자부터라고 대답하지요. 그래서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잘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없으면 남자도 큰일입니다. 그렇지요? (85-169)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사랑 때문
그렇지만 이게 분명합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다!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입니다. 뭘 갖고 지배해요? 사랑을 갖고 지배합니다. 사랑은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해요? 할아버지도 좋아해요? 할머니는 싫어하지요? 좋아합니다. 사랑이 싫다는 사람은 손 들어 봐요! 그건 사람 축에 못 드는 것입니다.
남자는 왜 여자한테 지배받느냐? 사랑 때문인데, 거기에 이유를 붙여야 됩니다. 원인보다도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남자는 나가서 하루 종일 24시간 싸우고 얼굴을 붉히고 말을 많이 하고 좋고 나쁜 일에 전부 다 부딪치고 옵니다. 그러다가 저녁 때 집에 돌아오게 되면 지치거든요. “아이구, 내 다리 아파!” 하면, 그 다리를 문질러 주는 것이 누구입니까? “아이구, 조금만 더…! 아이구, 시원하다!” 할 수 있도록 긁어 주는 게 누구예요?
결국은 정서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남자한테는 밖에 나가면 없습니다. 투쟁이에요, 투쟁. 투쟁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위안처라는 집에 들어왔을 때 애기들한테 “어디 긁어!” 그러지 않아요. 제일 가까운 게 그래도 여편네거든요. 그러니까 등이 가려울 때도 신세를 지고, 다리가 아플 때도 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기분 나쁠 때는 “왜 그러우? 누구든지 그럴 수 있는데….” 하면서 여편네가 앉아서 밥을 같이 먹으면서 달래면 풀어집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는 것이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다 풀어요!” 하면서 남편의 상처 난 곳을 여편네가 많이 메워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아픈 데, 기울어진 데, 어려운 데를 많이 풀어 주는 곳에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가서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쉬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그러한 일을 여자가 많이 합니다. 무턱대고 사랑하면 되나요? 남자의 서글픈 심정을 채워 주는 데 있어서의 정서적인 분량이 많은 그런 곳,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의 심정을 위로해 주는 데 가서 사정을 털어놓고 비밀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전부 다 이렇기 때문에 샅샅이 모든 것을 전부 다 여자에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다 얘기해서 이런 것은 이래서 나빴다고 컨트롤해 주면 빚을 많이 졌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이렇게 설명을 붙여야 이해가 되는데, 무턱대고 “우주는 남자가 지배하고 여자는 그 우주를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한다.” 하면 안됩니다. 그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듣게 마련이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남자가 집에 왔는데 여자가 남자같이 생겼으면 싸움을 또 하게 됩니다. 여자가 남자같이 생겼으면 싸움을 하지 별수 있어요? 그러면 남자가 어디로 갈 겁니까? 그러면 남자는 목매다는 것입니다. 별수 있어요? 살맛이 있나요? 살맛은 내면의 깊은 심정 골짜기에 채워 주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 여자는 남자를 지배한다 해도 그 말이 나쁘지 않습니다.
남자는 우주를 지배하고, 여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한다. 무엇 갖고 그래요? 무슨 사랑을 갖고 지배해요? 먹여 주는 사랑, 더듬는 사랑, 긁어 주는 사랑, 쓸어 주는 사랑…. 사랑의 수가 많다구요. (85-171)
남자와 여자의 창조목적은 자기의 위치를 지킬 때 이루어져
여자로 태어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이제 창조의 목적을 완성하는 길로 돌아가야 됩니다. 창조목적의 완성인데, 남자로서의 창조목적의 완성이 뭐냐? ‘사람’ 하면 남자와 여자인데 남성으로서 태어난 남성적인 창조목적이 있는 것이요,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적인 창조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창조목적을 완성한다고 “남자의 일을 내가 해야 되겠다.” 하면 돼요? 남자가 활을 메고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싸움터에 나가는데 “남자, 집어치워라! 내가 하겠다.” 하면 되나요? 사명이 다릅니다.
그러면 남자의 창조목적의 완성이 뭐냐? 남자의 창조목적의 완성이 어떤 것입니까? 남자의 창조목적의 완성이 뭔지 알면 여자의 창조목적의 완성은 그냥 아는 것입니다. 남자의 창조목적의 완성을 알아야 됩니다.
상하관계와 전후관계와 좌우관계를 귀하게 다룰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위치가 어딘지를 알아 가지고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뭐냐?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전후·좌우·상하의 관계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리(事理)에 통할 수 있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하라는 것은 부자관계이고, 좌우라는 것은 부부관계이고, 그리고 전후라는 것은 자녀관계입니다. 이게 치우치면 안됩니다. 거기에 인간의 창조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그 다음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상하관계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아야 되고, 형제관계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전후·좌우·상하의 관계에 어긋나지 않으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전후·좌우의 그 원형 가운데 중심자리는 사방으로 거리가 다 같지요? 거리가 전후·좌우·상하가 다 같지요? 그렇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아야 됩니다. 타락은 뭐냐? 치우친 데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사내라면 그 사내가 동네에서 어떻게 지내느냐 하는 것을 쓱 보게 되면 벌써 저 녀석이 소망적이다, 아니다 하는 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않고 전부 다 윗사람을 알아보고 아랫사람을 지도하고 좌우관계의 균형을 취해 주게 될 때 그 사내는 소망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지킬 위치를 지켜야 됩니다.
지키는 데 있어서는 요동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번 정한 다음에는 영원히 안 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지가 뭉그러진다는 것입니다. 타락은 위치를 지키지 않은 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여자가 지킬 위치가 있다구요. 그런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때는 창조목적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85-174)
창조목적을 완성한 후에는 이상실현의 단계로 넘어가
창조목적이 완성되면 이상실현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남자의 이상실현이 무엇이고, 여자의 이상실현이 뭐냐?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때에는 달라집니다. 이상적인 위치가 나옵니다. 남매적인 위치가 지나가면 이상상대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춘기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벌써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전부 다 안다구요. 사춘기는 구형(球形)을 이룰 때라는 것입니다. 총각은 총각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전부 다 마음이 부풀 때입니다.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히히히 한다구요. 담 위에 얹어 놓았던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허허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제나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전부 다 시인 중의 시인이 안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노래는 세상천지에 안 하고 싶은 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꽃피는 때입니다. 꽃이 피면 어떻게 되느냐? 꽃이 피면 향기가 풍기고, 향기가 풍기면 나비가 날아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춘기라는 것이 그런 때입니다. 이상실현의 단계를 향해서 준비하는 기간이 사춘기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상실현이 뭐냐? 여자의 이상실현이 뭐냐? “여자로서 있는 것이 이상실현이다!” 그래요?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여자에게는 남자한테 끌려가는 것이 이상실현입니다. 또, 남자의 이상실현은 여자한테 홀려 가는 것입니다. 그게 결혼입니다.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하면 뭘 할 것입니까? “공부해서 출세하지!” 할지 모르지만, 출세해서 뭘 할 것입니까? 성공해서 뭘 할 것입니까? 잘살려고 공부해요? 잘살려면 어떻게 해야 잘사는 것입니까? 돈 보따리를 끼고 그저 술에 취해 가지고 곤드레만드레 떼굴떼굴 구르고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까? 쇠고기 반찬, 장조림 반찬, 찰밥, 흰밥에 그저 매일같이 릴레이식으로 쭉 먹고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까? 혼자서 세계로 여행을 다니면서 오늘 아침에는 일본 가고, 내일 아침에는 영국 가고, 저녁에는 미국 가고 그러면 잘사는 것입니까? 공부해서 출세하는 그런 것은 다 2차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제1차적인 것이 뭐냐? “내가 공부를 잘함으로 말미암아 한국에서 제일 1등 미인을 얻겠다.” 하는 게 남자의 욕망입니다. 성공은 둘째 문제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로서 이상적인 것이 뭐냐 하면 남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두둑한 돼지 같고 황소 같은 사나이를 만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면 씽 받아넘기는 그런 사나이, 말같이 툭 차 버리는 그런 사나이를 만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남자의 이상이 뭐냐?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잘 만나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여자를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앵앵거리고 그저 방에나 틀어 앉아서 바가지를 빡빡 긁는 것이 뭐가 재미있어요? 그렇지만 그거 긁힐 만하기 때문에 긁히지요. 긁히지 않을 때야 재미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알아야 됩니다. 개체가 창조목적을 완성한 후에는 이상실현을 해야 됩니다. 이상실현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되느냐? 돈을 가지고 하나되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이상실현이다! 그거 그래요? 부처끼리 돈을 가지고 만나면 이상실현이지요? 또, 부처끼리 “너도 법학박사, 나도 법학박사” 하면서 지식을 가지고 하나되었다고 “아, 우리는 행복한 가정이다!” 합니까? 여자는 외무부장관이고 남자는 내무부장관이라면 부처끼리 권력을 가지고 하나되었다고 행복하다고 그래요?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사랑을 갖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합니다. 무엇 갖고 행복하다구요? 사랑을 갖고 행복합니다. 사랑이 좋아요? 사랑을 얘기하게 되면 남자나 여자뿐만 아니라 저 할아버지까지 “헤헤헤” 합니다. 부처님까지도 웃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85-175)
창조이상실현의 핵심
하나님의 뜻이 뭐라구요? 첫째는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상실현은 무엇을 두고 말하느냐 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서 둘이 사랑으로 하나되면 그것만으로 끝나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것은 상하관계가 연결되어야 됩니다. 어제가 있으면 오늘이 있는 것이고,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연결되어야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끼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오늘이 있으면 내일이 이어져야 합니다. 내일이 없으면 맥이 끊기는 것입니다. 부처끼리를 위라고 한다면 자녀인 아래가 없으면 끊깁니다. 그래서 천지이치는 상하를 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좌우를 겸해야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좌우로 겸했다구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부모들은 그 아들딸들을 결혼시켜 놓고야 비로소 “아, 내 책임을 다 했다.” 하지요? 그 부모의 결혼패하고 아들딸의 결혼패가 상하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처도 상하관계가 있어야지요? 결혼한 부부가 위가 되려면 아래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자녀입니다. 상하관계가 합해야만 이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좌우관계는 남편과 아내가 합한 것이지만 상하관계는 부모와 자녀가 합해야 돼요. 이렇게 되어야 종횡이 연결되어 이 우주의 이상적인 구형세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또, 형제간의 전후관계가 다 겸해야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을 실현하게 될 때는 횡적으로 연결되고 종적으로 연결되는 이러한 십자적인 원형을 그려야 됩니다. 그 두 이상실현권(理想實現圈)을 남자와 여자가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내 스스로 “이상적인 자리에서 내가 산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통일교회에서 소위 말하는 사위기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이상이 뭐냐? 그것은 사위기대의 완성이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가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창조목적의 완성이요, 그 다음에는 이상실현으로 넘어가고, 이상실현이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횡적으로 하나되는 것이지만 종적인 기준에서는 부모의 자리에서 아들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안됩니다. 종횡관계를 거칠 수 있는 원형을 그리게 될 때 영원히 돌아가는 것입니다. 좌우만 되면 돌아갈 수 있어요? 영원히 구르지 못합니다. 종횡으로 관계를 맺게 될 때 원형을 그릴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영원히 돌 수 있습니다. 영원성이 있게 될 때 이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창조이상의 실현이라면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핵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정입니다. 창조이상을 실현하는 핵심은 한 인물이 아닙니다. 남자라는 인격자가 아니고 여자라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한 뭉치가 되어 가지고 뗄래야 뗄 수 없게끔 서로가 통일을 이룰 때 창조이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일반 종교들과 다른 위대한 점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인간의 인륜도덕을 중심삼은 맨 근본, 사랑문제의 핵점(核點)과 일치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종교들은 하나님은 그저 뚝 떨어지고 인간들만으로 모든 종교가 된 줄 압니다. 인간과 공동적인 이런 내적인 인연을 가지고 사랑의 이상을 결속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통일교회만 갖고 있는 특유성(特有性)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할 수 있는 사랑을 중심삼고야 비로소 참된 아들이 되고 참된 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부가 나옵니다. 참된 부부가 나온 그 기반 위에서 참된 부모로 등장하기 때문에 참된 아들딸이 비로소 종횡으로 번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점령하게 될 때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관할 수 있는 선의 주권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세계권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과 같은 사랑의 심정을 횡적으로 세계화시킬 수 있는 것이 지상천국의 이념이라는 것입니다. (85-178)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
아주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