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모래시계」 감상 / 김지율
모래시계
신용목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잤던 잠을 또 잤다.
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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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나 무의식에는 시간 개념이 없다. 무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지난 일들을 더 생생히 기억한다. 꿈은 이러한 무의식이 살고 있는 시간이다. 닫혀있는 과거와 막혀있는 미래 사이의 미궁. 그 미궁이 현실이라면 꿈은 이 기이한 우연이나 숙명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이다. 잠자는 동안 영혼이 육체를 떠나 꿈의 세게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는 어느 나라의 부족도 있고 꿈속의 사건을 현실에서 해야 할 일로 믿는 말레이 사람들도 있다.
무의식에 살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어디서든 불쑥 나타난다. 그 많은 모래들을 모래밭에 다 옮긴 잠 속일 수도 있고 혼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건널목 앞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는 것처럼. 그 사람은 항상 나와 현재형으로 산다. 신발 밑창에 붙은 h 있고, 셔츠에서 떨어진 단추이거나 아무 이유 없이 나오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끔은 누군가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본다.
김지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