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하다
세상이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다. 고막을 자극하는 영화 음악, 잘난 정치 평론가들의 고함 소리, 무례하고 상스러운 휴대 전화 사용자들, 아무리 귀를 막이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현대의 시대정신 중에서 가장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이들은 거의 없는 듯 보인다. 그것은 바로 '자기 증폭'이다. ●자기 브랜드화와 과시욕의 시대 점점 더 세분화된 뉴스와 예능 프로는 사적인 경험들을 마구 떠벌리는데, 연구에 따르면 이는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강화한다. 아바타로 자아의 온라인 버전을 키우고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우리는 스스로가 홍보 가능한 상표라는 개념에 익숙해진다. 이처럼 디지털 붑젤라가 불어 대는 자기중심주의의 불협화음은 마치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쉴 새 없이 손을 치켜드는 얄미운 동급생과 흡사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애틀랜틱> 등에 기고해 온 언론인이자 작가로 책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실 검증 전문가fact checker로 일한 경험이 있다. <뉴요커>를 비롯한 명성 있는 잡지에는 사실 검증팀이 있다. 이 부서는 기자들이 쓴 기사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검토한다. 검증 전문가들의 학력은 보통 석사 학위 이상이며, 비교적 흔한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외에 중국어나 아랍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이들까지 있다. 그러나 기사에는 기자 이름만 있기에 독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모른다. 이렇듯 사실 검증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즉 ' 인비저블'이지만 타인의 인정이나 명성을 제일의 가치로 두지 않기에 불만은커녕 일 자체에 만족감과 사명감을 느낀다. 이와 같은 존재들에 대해 그가 <애틀랜틱>에 기고한 "사실 검증 전문가와 마취 전문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는 대단한 반응을 얻어 이 책의 시발점이 된다. 최고의 인재로서 놀라운 성과를 올리며 어디서든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지만 명성과 보상보다 내적 목표를 지향하는 조용한 엘리트들을 만나기 위해 그는 여러 대륙을 넘나들며 취재를 이어가게 된다. 분야별 최고의 숨은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한편 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학계 권위자들의 통찰력을 결합시켜, 인비저블이 고난도의 일적 도전을 즐기고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몰입을 경험하고 깊은 성취감을 느끼며 삶의 가치를 풍부한 경험과 행복에 두고 있음을 밝혀 낸다. UN 동시통역사, 초고층 빌딩의 구조 공학자, 공항 길찾기 시스템 설계자 등의 공통점은?
책의 서론에는 흥미로운 퀴즈가 나온다. 즉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 비틀스, 에릭 클랩튼, 그리고 반 헤일런 중 다른 한 가지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대부분 에릭 클랩튼을 답한다. 왜냐하면 나머지는 여러 명으로 구성된 밴드지만 에릭 클랩튼은 솔로 싱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비틀스다. 나머지는 모두 앤디 존스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어서다. 그는 녹음 기사인데,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자 기술자이며 음향 기술에 관한 한 탁월한 지식과 예술적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존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즉 인비저블은 고도의 전문 지식과 훈련을 갖추고 조직 내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외부 세계로부터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무명으로 남는 데 만족한다. 지금은 자기 과시의 시대임을 고려할 때 어떻게 이들은 직업적 성취감과 내적 만족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저자는 <애틀랜틱>에 기사를 투고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조사하면서 인비저블의 고유한 특성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인비저블은 단순히 평버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회사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2. 치밀성 3. 무거운 책임감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짐 하딩은 오십대 초반의 남성으로 아내와 두 딸을 부양하는 가장이다. 그는 그레샴, 스미스 앤드 파트너스 디자인 회사의 대표로 환경 그래픽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복잡한 대규모 시설물의 길 찾기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최근에 완공된 애틀랜타 메이너드 H. 잭슨 주니어 국제 터미널의 길 찾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유용한 길 찾기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는 연결성, 연속성, 일관성을 기반으로 설계한다. 사실 길 찾기 구축은 비교적 새로운 분야다. '길 찾기'란 용어는 1960년대 MIT 건축 및 도시계획과 교수 케빈 린치의 <도시환경 디자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일을 통해 인정받기보다 일 자체에서 보람을 얻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뒷문으로' 길 찾기 분야에 발을 들여 놓았다. 길 찾기 회사들은 그래픽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심지어 직원 중에 심리학자도 있다. 대학 시절 그는 건축 표지판 회사에서 일하며 당시 급성장 중이던 길 찾기 분야를 조금이나마 맛을 보았다. 졸업후 그레샴, 스미스의 신입 디자이너로 입사한 후 줄곧 한 우물만 파고 있다. 외부적 보상이나 명성에 큰 관심이 없으며,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데 기쁨을 느낀다. 필요에 따라서 주역 옆에 숨겨진 조연으로 남는 것을 즐길 만큼 일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부적으로는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기꺼이 지며 대단히 인정을 받는 양면성을 지닌다. ●치밀성 데이비드 애펠은 조향사(調香師)다. 업계에선 보통 그들을 '코쟁이'라고 부른다. 그는 심라이즈에서 일하는데, 이곳은 세계 향수 5대 기업 중 하나이다. 고급 향수는 물론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소비자 제품에 함유되는 향을 제조한다. 세탁용 세제에서부터 방향제, 향초, 그리고 무향 로션까지 말이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크게 성공한 향수들을 개발하고 제조했다. 캘빈 클라인의 남성용 "에스케이프", 휴고 보스의 "휴고", 엘리자베스 아덴의 "선플라워", 그리고 블랙 오키드 등의 히트작까지 그의 뛰어난 능력이 돋보임에도 유명 브랜드와 디자이너, 유명 인사 등의 이름 뒤에 숨어 활동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그는 새로운 향수 샘플을 출시할 때마다 제조법에 대해 매우 꼼꼼한 기록을 남겼다. 향수에는 대부분 50개 도는 그 이상의 향료가 포함되어 있다.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 모든 원료와 배합을 종이에 직접 써서 간직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치밀한 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극히 꼼꼼하고 정교한 성격. 지독할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며 '탁월성'을 지향하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집중해 완벽하게 해낸다. ◆무거운 책임감 632미터의 위용을 자랑할 상하이 타워는 총 124층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다. 이 타워의 수석 구조 공학자 데니스 푼은 지상 600미터 상공의 바람을 늘 걱정한다. 그는 2020년까지 세계 최고 건물 20개 중 10개에 관여할 예정이다. 마치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빌딩이 안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구조 공학자 덕분이다. "훌륭한 공학자는 반드시 창의적이고 예술적으로 사고할 줄 알아야 하죠" 그가 일하는 회사 손튼 토마세티는 현재 직원이 7백명 이상, 전 세계 20곳 이상에 지점을 두고 있다. 그는 지난 35년 동안 회사와 함께 성장하면서 지금은 부사장이다. 우리가 말하는 "초고층" 건물이란 높이 300미터 이상 건물을 가르킨다. 2008년만 해도 전 세계의 초고층 건물은 약 36곳이었지만 현재는 72곳에 이른다. 이에 높이 600미터 이상의 건물을 "극초고층"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다. 건축 공학은 '팀워크'이다. 진정한 리더십과 책임감은 자신을 팀의 일원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일종의 봉사로 여기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의 결과만을 누리려고 하고 거기까지 가는 데 필요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기피하는 반면, 인비저블은 막중한 책임을 지며 그것을 즐기는 성향을 지닌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마취 전문의는 여러 종류의 전문의들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류이기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칭찬이나 감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UCLA 의료센터의 마취 전문의 조지프 멜처 박사는 마취 전문의들이 환자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존재지만 환자들에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탁월함의 경지를 추구한다 UN의 최고 동시통역사 중 한 명인 윌킨스 아리는 유엔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동시통역은 워낙 힘들고 고된 일이기 때문에 항상 두 명이 한 팀으로 일하며 30분씩 교대한다. 그녀는 커네티컷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스위스의 프랑스어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녀의 부친은 영국인 생물학자였는데 전 세계 다양한 연구소를 순례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여러 차례 세계 곳곳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집에선 이탈리아 사람인 어머니와 이탈리어어로 대화했지만 완전히 익힌 것은 매년 여름 이탈리아에 사는 사촌들과 어울린 덕분이었다. 여덟 살에 그녀의 가족은 프랑스로 이주했고, 열세 살 때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도 미국에서 1년, 스페인에서 1년, 프랑스에서 2년을 보냈고, 졸업 후엔 런던에 있는 토역 전문 학교에서 1년짜리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통역사는 천성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교육에 의해 육성됩니다" 끊임없이 주입되는 정보와 정보 처리에 필요한 방대한 집중력은 전문 통역사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원인이다. 윌킨스 아리는 때로 업무가 끝나도 두통이 너무 심해 밖에 나가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는 아무도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된 일을 통한 보상과 몰입의 경험은 오직 기술과 지식이라는 토대를 미리 닦아 놓았을 때에만 가능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고 예외가 아니다. 그녀도 일에 있어 철저한 준비와 조사는 필수적인 의무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최고의 통역사는 유명 배우나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사전 준비와 연습. 연구 및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비저블의 특징
◎조직 안에서
조용한 영웅의 역할에 자부심을 갖는다. ◎잘하는 정도를 넘어 대가, 장인 수준의 탁월함을 지향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일의 가치와 과정에서 동기를 부여받는다. ◎지극히 꼼꼼하고 정교하게 일한다. ◎기꺼이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이를 즐긴다.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학습하고 매진한다. ◎고난도의 도전을 즐기며 책임을 완수함으로써 성취감과 기쁨을 느낀다 ◎일의 과정에서 몰입을 경험함으로써 내적 만족을 얻는다. ●'나'라는 존재는 없다 동시통역사들은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므로 기끔은 집중에 곤란을 겪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전체의 흐름과 하나가 되면서 마치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 것처럼 술술 흘러나온다. 이처럼 인비저블의 태도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상태와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인정과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인비저블은 그 반대다. 즉 일을 잘할수록 인비저블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수행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by/오대석b 전형적인 4인조 록 밴드는 전면에 기타 겸 리드 싱어를, 뒤에는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배치한다. 하지만 요즈음은 레드 제플린의 베이시스트엿던 존 폴 존스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베이스와 드럼이 없다면 밴드가 만들어질 수 없다. 성공적인 사회 도한 마찬가지다. 전면에 나서기만 하는 프런트맨으로 구성된 사회는 시끄러운 소음만 가득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