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
지난 2018년 가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당시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와 함께 있던 동생이 피의자를 돕는 듯한 모습이 CCTV 영상에 담겨 있었는데, 과연 피의자의 동생을 공범으로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됐다.
경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했고, 이후 동생은 (살인이 아닌 폭행에만 가담하였다는) 공동폭행 혐의로 불구속기소 돼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세간의 이목을 끈 사건에서 경찰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얼마나 정확하고, 실제 수사와 재판에서는 어떻게 활용될까. 대검찰청예규에서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의미하는 심리생리검사규정을 두고 있다. 예규에서는 심리생리검사에 대해 “심리생리분석기(폴리그래프 등)에 의해 사람의 심리변화에 따른 혈압, 맥박, 호흡, 피부 전류저항 및 뇌파 변화 등을 측정, 기록한 후 그 기록의 해석으로 진술의 사실 여부를 추론하는 심리분석기법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선 증거 능력 인정 안 해
거짓말탐지기 검사의 정확도는 90% 이상으로서 최고 97%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정확도가 97%라 하더라도 산술적으로 100명 중 3명은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 대상이 1000명으로 늘어나면 30명, 1만명이면 300명에 대해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어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 고소를 당해 수사를 받게 되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담당 수사관에게 먼저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요청했으나 공교롭게도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 반응이 나와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있었다. 그는 불행 중 다행으로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무죄가 선고됐다.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매우 정확하다는 주변 사람의 조언을 듣고 먼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청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족쇄가 돼 이를 풀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사기관에서는 사건 당사자의 진술 외에는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찾기 힘든 경우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검사를 받는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도 거짓말탐지 검사를 ‘권유’하는 형식이 되는 것이다.
90%가 넘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으니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자신이 떳떳하다 하더라도 낯선 기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90%가 넘는 정확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누가 잘못된 검사 결과의 희생양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지 않는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대법원에서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거짓말탐지기의 검사 결과에 대해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충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①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일정한 심리상태의 변동이 일어나고, ② 그 심리상태의 변동은 반드시 일정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며, ③ 그 생리적 반응에 의해 피검사자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가 정확히 판정될 수 있다는 세 가지 전제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특히 마지막 생리적 반응에 대한 거짓 여부 판정은 거짓말탐지기가 검사에 동의한 피검사자의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장치여야 한다. 질문사항의 작성과 검사의 기술 및 방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검사자가 탐지기의 측정내용을 객관성 있고 정확하게 판독할 능력을 갖춘 경우라야만 그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여러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대검찰청 예규에는 검사 결과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임산부, 지적 장애인, 정신분열증 환자(과거에 사용되던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아 2011년 조현병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으나 대검찰청 예규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에 대해선 검사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극도의 피로상태에 있거나 충분히 자지 아니하여 그 의식이 불명료한 때’ 등 검사를 받는 사람의 심리적·정신적 상태가 불완전한 경우 검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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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탐지 검사 결과 진실 판정이 내려지면 조금 더 수월하게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혹시라도 거짓 반응이 나왔을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매우 크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일단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거짓으로 판명되면 수사기관에서는 더는 그 사람의 주장을 믿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재판에서 비록 검사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진술의 신빙성 판단 등에 있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신중하게 결정해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은 사람은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앞으로도 거짓말탐지기 조사 빈도는 더욱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늘어 갈수록 조사 기법도 점점 발전하고, 정확도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아직은 검사 결과가 실체적 진실과 다르게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연루돼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될 경우 무턱대고 검사에 응하거나 이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결과에 따른 부담은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