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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꾸르실료 DE COLORES 원문보기 글쓴이: 야고보 아저씨
2023년 8월 28일 월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1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봉제사와 십일조
제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고기와 술, 생선과 과일과 밥입니다. 어려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 되면 정말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쌀밥을 짓기 위해서 농사를 지으면 가장 좋은 벼를 고운 종이봉지에 담아 사랑방 대들보에 매달아 둡니다. 그래야 벌레도 먹지 않고, 제사 때에 정성껏 하얀 쌀밥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성전에서 양과 염소를 잡아 불에 태워 번제물로 바쳐서 성전에서는 언제나 향을 태워 제단에 향이 가득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고기를 구울 때도 향 기름을 발라 구웠을 것이고, 생선을 구울 때도 향 기름이나 향기로운 풀을 넣어 구웠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십일조를 바치는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이스라엘에서 많이 나는 식물들입니다. 시라는 1미터 정도 곧추 자라는 다년초로, 유다인들은 향기가 나는 그 씨를 양념으로 썼다고 합니다. 소회향은 30센티미터 정도 자라는 1년생 풀로, 그 씨를 빵이나 다른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는 데에 썼답니다. 박하는 매우 흔하였고, 시라와 소회향은 들에서 그냥 자라기도 하지만 경작하기도 하였답니다. 이렇게 매우 하찮은 것까지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면서 정작 더 중요한 실천 사항들은 간과하고 무시해 버리는 바리사이들의 행태를 예수님은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十一條)는 일반적으로 주요 농산물, 그리고 나중에는 축산물에 국한하여 그것을 생산한 사람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이렇게 양념이나 향료로 쓰는 소소한 것까지, 또 자기들이 직접 경작하지 않고 사들인 것까지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달아 바쳤다고 합니다. 농부가 십일조를 내지 않고 상인에게 판 물건을 샀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아예 가능하면 다른 바리사이에게서 농산물이나 다른 물건을 사들이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야 율법에 따라 정확히 십일조를 낸 물건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세세한 것까지 엄격히 지키려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지만, 의로움과 자비와 선행의 실천에 있어서는 도외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십일조에 대하여 반성해보면 답답합니다. 내 시간과 사랑의 실천과, 가난한 사람들과의 나눔과, 전례에 참석하는 것 모두 십일조를 바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세금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분이며 가지입니다. 그래서 십일조(十一租)라고 쓰지 않고, 십일조(十一條)라고 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온전히 다 받았으면서도 그 한 가지를 봉헌하지 못하고 바쁘다 어렵다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주님, 제 마음이 메마른 이승 삶에서 당신 성서의 말씀에 꼬드겨져 몹시도 허덕이고 있나이다. 인간의 지성이 빈약한지라, 흔히 말만 많이 하게 되는 것이오니 발견하기보다 찾느라 말이 많고, 얻기보다 빌기에 말이 길고, 잡기보다 두드리는 손이 더욱 바쁜 것입니다. 허나 저희는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이것을 무효로 만들리이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 31)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 7-8) 당신의 약속! 진리께서 약속하셨거늘 그 누가 속을까 두려워 하리이까? (성 아우구스티노/최민순 역, 고백록 제 12권 제 1장)
<여러분은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섰습니다. 다시 일으키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여러분이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시작입니다. 1,1-5.8ㄴ-10
1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2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3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4 하느님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5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10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
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축일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노 (Augustine)
신분 :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 지역 : 히포(Hippo)
활동 연도 : 354-430년
같은 이름 :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오스틴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이교도인으로 로마 제국의 관리인 부친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그리스도인인 모친 성녀 모니카(Monica, 8월 27일)의 아들로 354년 11월 13일 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지방의 타가스테(Tagaste, 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타가스테와 인근 마다우라에서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는데, 370년에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카르타고(Carthago)의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는데, 여기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여 그의 부친이 항상 소중히 여기던 아들 아데오다투스(Adeodatus)를 낳았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여러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는 점차 철학에 흥미를 갖다가 존재 문제, 특히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을 기대하고 373년경 마니교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타가스테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10여 년간 교사생활을 한 후 383년에 로마(Roma)로 가서 수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들의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하다가 384년 가을부터 밀라노(Milano)의 수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신플라톤 철학과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성 암브로시우스의 강의를 통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은유적 또는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한편으로는 명예, 재산, 결혼 등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책하다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읽어 본 것이 사도 바오로(Paulus)의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서 그는 386년 8월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의 친구 성 알리피우스(Alypius, 8월 15일)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387년 4월 13일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에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와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다가, 391년에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사제로 서품되었고, 5년 후에는 히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의 교구에서 그리스도교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사람으로 거의 35년을 참된 사목자로 헌신했다. 그는 사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되 백성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사용했고,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으며, 엄격한 규율 아래 모든 일을 행했으며, 주일과 축일에는 반드시 강론을 했고, 직접 예비신자 교리를 담당했으며,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의 재정지원을 물색하는 등 사회 정의를 위해서도 주교직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교구 신자들과 도나투스파(Donatism) 이단자들에게도 반박문을 써 보냈다. 특히 마니교 (Manichaeism)와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반박하는 강연회에는 너무 많은 청중이 몰릴 정도였다. 이외에도 삼위일체와 은총론에 관한 책도 썼는데, 그의 연구 대상은 매우 광범위했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저작으로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이 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자신의 개종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적 저서인 “고백록”(Confessiones)과 호교론적 저서인 “신국론”(De ciavitate Dei)이다. 그는 자신의 극적인 개종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순수한 은총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에 은총론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그래서 그를 흔히 ‘은총론의 박사’(Doctor Gratiae)라고 부른다. 그는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 학자이며 뛰어난 영성가였다. 주교가 된 이후에도 주교관 내에 성직자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이어갔을 정도로 수도자로서의 그의 영향 또한 대단하다. 그의 수도 규칙은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그리스도 교회 지성의 모델로서 가톨릭 신앙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공격하던 430년 76세의 나이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성인도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다. 또한 어떤 큰 죄를 지었던 죄인이라도 미래가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교회의 오랜 진리를 몸소 보여 준 인물이다. 아들의 회개를 위해 오랜 세월 눈물로 하느님께 기도했던 어머니 성녀 모니카의 정성과 영적 스승이었던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도움으로 그는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의 증거자가 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대개 연구에 몰두하는 주교의 모습으로 서재에서 책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15세기 이후에는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든 어린아이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성인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한 것이다. 중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심오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몰두하던 중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 아이가 모래톱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놓고 조개껍데기로 부지런히 바닷물을 퍼 나르는 것을 보았다. 궁금해 묻는 그에게 어린아이는 바닷물을 다 퍼 담을 것이라 했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럼, 아저씨 작은 머리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들으려고요?” 하는 말을 남기고 어린아이는 사라졌다고 한다. 17세기 이후에는 불타는 심장을 들고 있거나 화살에 의해 관통된 심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지는데,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적 열정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우구스티노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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