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무너져 내리는 돌무더기들로 막혀 있는 상태였다. 소구는 절망이 어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젠 돌아갈 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청나라의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무려 삼십장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가르는 혼천독보가 아니라면 들키지 않고 이 안에 들어올 방법이 없었다. 내상을 치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긴장한 상태로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혼천독보뿐이었던 것이다.
"이젠 어쩐다---?"
지치고 졸린 소구는 돌더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졸음--, 너무 지친 상태였다.
그렇게 소구가 나한동의 무너진 돌더미에 등을 기대어 잠들었다기 보다는 탈진해 기절해 있을 때, 나한동 안으로 청나라의 병사들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림사는 단순히 절이 아니었다. 아주 강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기에, 병사들은 이곳에 누군가 숨어 있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비록 화포와 쪽수로 밀어붙여 소림사를 장악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고수를 만난다면 일개 병사들의 능력으로 무림의 고수를 상대할 수 있으리 만무한 것이다.
병사들은 잔뜩 공포에 질린 채 상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숨어 있는 자를 찾아라!"
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 병사들의 상관은 후다닥 밖으로 도망치고, 남겨진 병사들은 두 손으로 창을 굳게 움켜쥐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졸고 있는 소구의 몸이 있는 곳에 병사들의 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소구는 깨어날 줄 몰랐다.
저벅, 저벅하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병사들 중의 하나가 소리쳤다.
"여기 핏자국이 있다!"
어둔 동굴 안에 횃불은 한자리로 모여들고, 불빛은 점점 소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소구가 기대어 있던 자리까지 오게 된 병사들은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금강존자들은 입가에 핏자국이 묻은 채로 의식을 잃고 있는 소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여기 올 때마다 다쳐 오는군요."
그들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의식을 잃고 있는 소구의 몸을 바라보면서 금강존자들 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녀석입니다. 시련이 많은 만큼 복도 큰 녀석입니다."
"일단 깨워야 하지 않을까요?"
"깨우지 맙시다. 이 녀석의 내상을 치료해 주면 우리의 인과는 끝입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해쳐나갈 힘이 있는 녀석이니---."
다른 열 여덟 개의 금불상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저리쳐지는 녀석의 듣기 싫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 나고 정적 속에 금강동이라 불리는 장소는 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음---."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소구는 벌떡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금강동 안이구나!"
금강존자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구는 자신의 몸에 넘쳐흐르는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 분들이 날 구해 주신 건가?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금강존자들이 늘 앉아 있던 자리를 살펴보던 소구의 눈에 벽에 쓰여진 글자가 보였다.
불법무한(佛法無限).
"불법은 한계가 없다? 그분들이 날 이곳으로 옮기고 치료해 주시고 사바세계를 떠나신 모양이구나---."
중얼거리던 소구는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고 금강존자들이 앉아있던 열 여덟의 포단에 고개를 숙였다. 그 자신 역시 쌓은 수련이 낮지 않아 금강존자들이 세상에 육신조차 남기지 않은 것을 알아본 탓이었다.
"이제 힘을 되찾았으니 수련 누나를 구하러 가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소구의 몸은 금강동의 천장을 향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소실봉 중턱에 있는 한 암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소화촌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우르릉!"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검은 구름만이 가득한 천지가 한순간 번뜩였다.
"쏴아아!"
칠흑같이 어두워진 하늘 아래는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져 내리고, 이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집 마루에 걸터앉았다.
정말 신비한 사람이었다. 이십년 동안이나 곡기를 끊고 살았다는 말도 신기한 말이었고, 어떻게 칠일이나 그렇게 잘 수 있는지 아무리 잠이 모자라다 해도 배가 고파서 그렇게 잘 수는 없을 것 같은 이첨이었다. 우물에서 사라지는 모습도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우물 위로 솟구쳐 오르던 백광도---, 모든 것이 신비한 사람이었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첨은 시선을 우물가로 던졌다.
소구가 모습을 감춘 지 벌써 사흘째였다. 자신처럼 산 속에 들어갔던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광경이 보였다. 비가 내릴 때의 산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들 저렇게 허겁지겁 마을 안으로 뛰어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그들이 오기 전에 그 사람이 나와야 할 텐데--."
이첨은 턱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시 한번 우물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화촌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비를 피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도 우물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산골짜기 순박한 사람들은 우물 속으로 들어간 도사가 사흘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혹시라도 귀신에게 잡혀 먹힌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백색의 광채가 우물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이첨은 벌떡 일어나 온몸이 비에 젖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우물로 달려갔다. 그 광경을 본 다른 마을 사람들도 놀라 우물로 달려갔지만 우물로 들어간 광채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도대체 이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장대비는 계속 쏟아지고 이첨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화련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의를 걸치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천궁 옥형진을 바라보았다.
"옥 선배. 조금 쉬었다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사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천궁 옥형진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자객들의 습격으로 타고 가던 말은 모두 죽어버려서 걸어서 가는 중이었다. 강행군으로 함께 길을 가는 무사들이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팔십이 다되는 천궁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얼굴 위에 피로가 가득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은 쉴 때가 아니었다. 천궁이 사방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에 쉴 곳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비를 피할 곳이 있을 겁니다. 자네들도 조금만 참게, 이 비속에서 멈추면 오히려 몸이 상할 것일세!"
앞에 한 말은 방화련에게 한 말이었고, 뒤에 한 말은 뒤를 따르고 있는 무사들에게 한 말이었다.
"염려 마시고 어서 앞장서십쇼!"
맨 후미에서 기운찬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천궁은 피로한 얼굴 위로 만족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쏴아아'
거칠게 비는 내리고 흙탕물이 흘러내리는 관도를 걸어가는 방화련의 귀에 전음이 들려왔다.
'둘째 아가씨, 앞쪽 언덕 너머에 이십명의 자객들이 숨어 있습니다. 저희들이 처리할까요?'
'아니, 그자들은 여기 천궁 옥 대협과 무사들이 처리한다. 너희들은 아직 드러나서는 안돼. 계속 감시만 하도록.'
그렇게 전음을 주고받은 방화련은 앞서가는 천궁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앞쪽에 자객이 있습니다."
천궁 옥형진은 계속 걸음을 옮기면서 손으로 뒤를 따르는 무사들에게 신호를 날렸다. 십여명으로 이루어진 행렬에 변화는 없었지만, 우의 속에 감춰진 손에는 모두들 무기가 들려졌다.
나라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 있어도 칼날 위에서 사는 무림인들의 세상은 변한 것이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머리 위에 쓰고 있는 삿갓 아래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게 긴장된 상태로 그들은 걸음을 옮기고, 방화련 역시 두 손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관도 왼편의 야산에서 습격의 순간만을 노리고 방화련 일행을 감시하던 한 사람은 눈은 찡그려졌다.
"매복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단주님."
청이 들어서면서 유랑하는 낭인무사들이 급증했고 그들은 청색 아니면 홍색의 옷을 입게 되었다. 그렇게 낭인들로 이루어진 청방과 홍방의 용병들로 이루어진 수십개 조직들은 천하 곳곳에서 피 터지게 싸워야 했고, 말을 하고 있는 삼십대 초반의 한 무사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단 부단주, 어찌하면 좋겠소?"
"이대로 가만있다간 기세에서 밀릴 것입니다. 차라리 위에 있는 우리들이 돌격해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게 났겠군."
일 대 일의 싸움이 아닌 다수의 전투에서 기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이 홍방 산하의 무력단체 중의 하나인 혈영대의 대주는 짧게 말하고 소리쳤다.
"돌격!"
관도 위를 묵묵히 걸어가고 있던 방화련 일행은 이미 준비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관도 옆의 야산에서 함성을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무리 역시 준비가 된 상태였다.
"와 아!"
검신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피가 섞이고, 오십여 명이나 되는 무리는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살아남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방화련은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비수를 한 손으로 쳐내면서 비수를 날린 자를 향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칙칙한 검은 색 우의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기에 땅에 떨어지고, 낡고 붉은색 기포를 입은 방화련의 날씬한 몸매와 아름답지만 어딘가 위엄이 서려 있는 얼굴이 빗줄기 속에 들어 났다.
녹색의 강기를 머금은 방화련의 손바닥이 비수를 날린 자의 가슴에 작렬하고, 그자는 피화살을 입으로 뿜어내며 뒤로 날아갔다. 그 순간 방화련의 등뒤에서 한자루의 도가 떨어져 내려오고, 방화련의 몸은 아래로 푹 꺼져서 맹렬하게 뒤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떨어져 내려오던 한 자루의 커다란 도는 방화련의 발차기에 주인의 손을 떠나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땅바닥에 떨어지고---.
뒤돌아서 그자를 공격하려던 방화련의 몸은 방향을 바꾸어 다른 홍색의 옷을 입은 자를 향했다. 그 순간 손바닥만한 작은 화살이 그자의 이마 한 가운데 박혀서 땅에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천궁은 잘려진 왼손에 달린 자신의 애병 초혼마궁을 다시 소매로 가리고 오른손에 든 검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양쪽 모두 일격필살의 살수만을 사용하는 전쟁이었기에 그 싸움이 끝난 것은 반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방화련은 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비는 쏟아져 내리고 하늘 가득한 먹구름 속에서 천둥번개는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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