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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프로젝트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편한 침묵
[기고]기능도 지속가능성도 애매한 사업의 비민주적 강행
서울시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작년부터 추진해 온 서울역 고가도로의 보행공원화 사업이 지난 5월 13일, 국제현상 설계공모 당선작 발표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1970년에 건설된 노후한 고가도로를 17미터의 높이에서 도심을 조망하며 17개의 사람길로 잇는 보행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 마스의 ‘서울 수목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보탤 것이라고는 하지만 6월 중에 설계 계약을 끝낸다고 하니 당선작의 틀에서 보완되는 정도일 것이다.
938미터 길이의 서울역 고가 위아래에 가나다 이름 순으로 국내산 나무를 심게 될 이 ‘서울 수목원’의 청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기발하고 아름다운 계획이라고 평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역시 과거 서울시장들의 과시형 토건사업의 아류가 아닌가 하고 평할 것이다. 또한 박원순 시장의 대선 출마 전망과 결부되면서 사업에 대한 평가가 진보와 보수의 렌즈를 통과하며 언론과 정치인들에 따라 이미 일정한 맥락을 띠고 개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박 시장이 예상했을 것이고 또한 감수할 것이지만, 누가 보아도 이 사업이 무척이나 빠르게 그리고 시 주도의 일방적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동안 몇 차례의 설명회와 공청회, 그리고 고가상부 공개와 시민 걷기 행사가 있었지만, 서울시에서 정한 사업 방향을 기정사실화 하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이 사업의 방향을 돌리기 어렵다고 여기겠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있고 답변은 부족하다. 서울시의 대형 공공사업이라면 당연히 적용해야 할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생각해보자. 첫째는 기능성이다. 만리동의 봉제 공장들과 남대문 시장 사이의 물류와 통행 연결의 단절에 대한 우려를 쾌적성이나 관광객 유인 증진 효과와 단순히 비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체고가 건설은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 시점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구두선으로도 약속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건설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보행공간 측면이라면 이후 북부역세권에 컨벤션 센터가 들어설 경우 염천교와 의주로 지하차도 주변의 보행로 개선이 자연스럽게 예상되는만큼 중복인 면이 있다. 나무와 숲이라면 인근 서소문공원이 활용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하는 게 나을 것이다. 고가에서의 투신을 막기 위해 투명소재 벽을 양 옆으로 설치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 길쭉한 어항 모양이라면 쾌적한 보행로라는 취지도 반감될 것이다. 화려하기는 하되 기능은 여전히 모호하다.
둘째는 지속가능성이다. 공중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수목원’을 만든다는 것은 난간에 화분 몇 개를 걸어두는 것과는 다르다. 수목원 모양의 유지를 위해서 갈수기와 동절기마다 적잖은 물과 에너지, 사람의 손길이 소요될 것이다. 전기로 한강물을 퍼올려 흐르게 하는 도심 인공정원이 된 청계천을 생각한다면 비니 마스의 수목원은 ‘공중에 뜬 청계천’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 쪽에서는 ‘서울에서 원전 하나 줄이기’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에너지와 자원이 계속 투여될 구조물을 새로 만드는 일은 정당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비니 마스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 전에 진행되었던 시민 공모에서도, 그리고 비니 마스의 작품과 함께 심사에 붙여진 다른 작품들도 대체로 비슷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서울시에서 제시한 요구 조건과 틀거리 속에서 구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셋째는 다름 아닌 민주성이며, 박원순 시장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 가장 기대하는 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박 시장의 다른 어떤 사업 보다 관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보행권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행권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서울역 고가의 보행공원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보행권 증진이 꼭 고가의 활용이어야 하는지, 서울역 버스 환승센터를 비롯해서 도심의 보행권 사각지대를 개선하거나 차량 통행 자체를 적극적으로 막는 선택지들은 없는지 하는 논의는 배제되었다. 올해 10월부터 고가를 폐쇄한다는 일정 계획 자체가 다른 선택지 논의를 무력화한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박원순 시장을 응원하는 이들에게서 적극적 찬성 목소리도 찾기 어렵고 반대 여론에 대한 반박 목소리도 보기 어렵다. 시민사회 출신의 대표 정치인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있겠고, 예상하기 어려운 대권 구도와 관련될 시비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불편한 침묵은 시민사회답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박 시장에게 좋지도 않다. 다른 자치단체장이 이와 유사한 사업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하더라도 이렇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아가서, 지금의 침묵은 박 시장이 앞으로 이와 유사한 무리스러운 사업을 하더라도 또 한번 두번의 침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박 시장이 토건 시장을 답습하는 징후를 보인 것은 서울역 고가가 처음이 아니다. 4월 말 발표된 잠실 주변의 ‘마리나 베이’ 사업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이다. 막대한 재정 조달 문제 외에도, 탄천으로 배가 드나들도록 마리나 베이가 유지되려면 박 시장이 동의했던 환경단체의 제안인 한강 수중보 철거도 백지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박 시장이 갈수기와 홍수기의 변화를 담아내는 재자연화된 한강을 약속했었다는 것조차 모두 잊고 있거나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지금의 서울역 고가 공원화 계획은 아마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하고 호응을 얻을 것이다. 복원된 청계천과 동대문 DDP, 새빛둥둥섬 모두 명소가 되었고,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남한강변의 자전거길도 수많은 라이더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임을, 잘 된 사업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다른 많은 선택지와 다른 많은 추진 방식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만들어진 전임 시장들의 기념비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과 아픔을 말하고자 함이다. 줄을 서서 서울 수목원을 걸으며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를 촬영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 사진이 한국 관광 가이드북에 70년대의 청계고가를 대신하여 실릴 수 있겠지만, 시대만을 달리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가 될 것이라면 이제 이 사업부터 브레이크를 걸고 한 숨 돌리며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박 시장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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