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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7편은 기원전 6세기 경 유대민족이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비참한 상황을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고 울면서자신들이 민족을 버린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가게 해 줄것을 애원하면서 자신들에게 수치를
준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이다.
시편 137 편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竪琴)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異邦)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찌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害)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毁破)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이 시편의 내용의 배경은 기원전 6세기에 유다왕국이 신바빌로니아의 느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2세에게
멸망당하고 유대왕 히스기야왕과 유대인들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 유대인들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해서 신세 한탄과 더불어 복수심을 노래한 것이다.
유대민족은 스스로 선민(選民)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민족이다.
지금도 그 자부심은 가지고 있겠지만....
그 당시의 유대민족의 입장에서 나라가 망하고 노예로 잡혀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할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일이었다.
자신들은 전지전능한 야훼(하나님) 선민이 아닌가?
야훼의 선민이 어찌 이교도의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야훼는 전지전능한 신(神)으로 이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모든 신 중(中)의 신인데 다른 신을 믿는 민족에게 노예로
끌러 갈 수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에훼와 자신들의 관계 그리고 야훼의 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그럼에도불구하고 야훼가 우리를 단련하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구나 하고 이럴수록 더 열심히 섬기리라고
맹세하는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중에는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민족이 세상 가운데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솔직히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 앞에서 종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를 부르라고 하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는 처지가 되었으니
결국 자신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킨 자들의 자손들을 헤치는 자에게 축복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자신들이 믿는 신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힘도 세지 않고 자신들을 돌볼 힘도
없거나 돌 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며 사실 그것이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포로생활을 통해서 성서를 정비하고 새로운 신학 이론도 받아들이게 되는데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들이다.
포로 이전에는 천사장, 사탄, 육체 부활, 심판, 낙원, 지옥, 세상 종말 등의 개념이 없었지만 포로 생활 이후에 이런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들이라고 한다.
지금 기독교의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이 이때 받아들여진 내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유대민족이 그 이후에 나라가 망해서 민족이 흩어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는데 로마에 저항하다가 나라가 망해버린
AD70년이다.
만약 유대인들이 끝까지 저항을 하지 않고 적당하게 타협을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나, 선민이라는 자만심 때문에
끝까지 저항을 하게 되자 아예 이스라엘에 살지 못하도록 흩어버리고 이민족을 살게 해 버린 것이다.
나라가 없이 흩어지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야훼가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이런 수난을 당하게 한다고 했을까?
아니면 무능한 야훼를 원망을 했을까?
유대민족이 야훼가 자신만의 신이라는 생각에게 세상 모든 사람의 신이라는 생각을 변화 시키게 되는 계기들이 이런
사건이었다고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교수는 언급을 한다.
오 교수가 예로 든 내용들은 시편 137편과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교수대에서 죽어가는 어린
소년을보았던 엘리 위젤이라는 소년이 나중에 그때를 기억해서 당시를 기억해서 쓴 (Night) 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아래는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처럼 엄청난 역사적 정황 속에서 유대인은 지가들만 사랑하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옛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 하는 시실을 발견하고 지기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종래까지 자기들 민족만을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이른바 "부족신의 신관"을 버리고 하나님은 온 세상을 위한 신, 온 우주를
다스리는 보편신의 신관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출애급 등 이스라엘 백성의 안녕을 위한 일이라면 애급인이나 가나안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일도 불사하는 한 민족이나,
한 집단의 신이라는 믿음이 새로운 역사의 정황에서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고 제 2 이사야나 에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처럼
세상 만민을 위해 보편적인 사랑과 공의를 배푸시는 신, 그들을 위한 슬픔과 애통함, 안타까움으로 가득하신 신이라는 생각이
등장하게 된다.
오늘 우리도 새로 등장한 자연과학, 철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문헌학 예술 정보 대중매체 등 다시 완전히 새로운 정황과 환
경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포로들이다.
옛날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갔던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이 새로운 정황 속에서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는 형편이다.
지금껏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것' 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종래까지의 세계관, 신관, 가치관, 성경관, 예수관, 종말관, 등등의 그 문자적 표피적 의미에서는 완전히 힘을 쓰지 못하는 황당
함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옛날 순진하고 단순하게 살 수 있었던 때를 기억하며 "울었노라"의 심정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우리는 언제까지 예전 시대에 받들고 있던 것을 그대로 신주 모시듯 모시고, 그런 것에 대한 옛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하기를 강요받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새 노래를 지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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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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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천 몇 백 년이 지나 독일 나치 정권에 희생된 현대 유대인도 그와 비슷한 체험을 했다.
현대 유대인은 그들의 비참한 대량 학살(영어로 홀로코스트 히브리어로Shoa) 경험을 통해 종래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초자
연적인 유일신관이 여지없이 흔들리는 참담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이가 바로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출생 유대계 미국인 엘리 위젤이다.
그는 'Night'라는 그의 유명한 자전적 소설에서 그 참담함을 다음과 같이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나는 수용소에서의 첫날 밤, 일곱 번씩 일곱 번 저주받고 일곱 번씩 일곱 번 봉인된 채 나의 삶을 기나긴 악몽으로 바꾸어 놓
은 그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인육이 타서 올라오는 그 연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그들의 몸이 그 무심한 창고 아래서 연기 다발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 그 어린아이들의 작은 얼굴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나의 믿음을 영원히 소멸해 버린 그 불길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나에게서 살아갈 의욕을 영원히 앗아가 버린 그 밤의
정적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살해하고 나의 영혼을 죽이고 나의 꿈을 티끌로 바꾸어 버린 그 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내가 비록 저주를 받아 하나님 자신만큼 오래 살게 된다 하더라도 이런 일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결코"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 속에서도 아직 신에 대한 믿음을 지키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비열한 본성을 다스리고 우리 속에 있는 사탄을 죽일 수 있는가 알아보시려는 것이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우리를 이렇게 극심하게 벌주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더욱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젤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어느 날 수용소에 있던 발전소가 폭발되었다. 게슈타포가 수사한 결과 세 명의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일벌백계의 원칙에 따라
수용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 명이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명은 "슬픈 눈을 가진 천사"처럼 아름다운 어린
소년이었다.
밧줄이 목에 감기고 발밑에 놓여 졌던 의자가 없어지자 어른들은 "자유만세"를 외친 후 금방 죽어 혀를 빼물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체중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금방 죽지를 못하고 대롱대롱 매달려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밧줄은 30분 이상 움직였고, 수용소에 있던 모든 이가 생사를 오가면서 죽어가는 그 아름다운 소년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벌어지는 이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누군가 외친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위젤은 자기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어디에 계시냐고? 그는 여기 계시다 여기 이 교수대에 매달려 처형되고 있다"
(Where is He? He is - He is here on this gallows.........)
물론 위젤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 그가 천진난만하게 가지고 있던 전통적 유일신관이 영원히 무너져 버리게 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런 신은 그에게서 죽어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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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내용의 글을 인용해 와서 글을 쓰는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종교와 믿음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이번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전쟁은 사실 그 결과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전쟁이었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폭격이었지만.....
하메이니는 왜 끝까지 협상을 하지 않았을까
이슬람의 신 곧 알 라가 방어를 해 준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방어 무기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순교를 하면 이란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을까....
아니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아니면 이슬람 국가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전쟁을 할 것이라고 믿었을까....
일반적인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될 수 없는 선택을 하므로 인해서 이란은 지금 모든 군사시설이 파괴가 되고
오히려 아랍의 다른 국가들이 이란과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변해 버렸다.
하메이니는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을 몰랐을까?
이번 전쟁(?)을 보면서 구약의 시편 137편이 생각났던 것은 선민으로 오만했던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바빌론 사람이
'야 너희 나라에서 너희 신에게 바치던 노래 한 번 불러봐' 라는 비아냥에 울면서 노래를 했었던 치욕을 기록한
내용이다.
유대민족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오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2차대전 때 독일에게 600만명이 살해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자신들이 믿는 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 미국의 이란을 초토화 시키는 것을 것을 보면서 그들도 유대민족이 경험했던 신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그들도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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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니 엠은 비통하고 억울한 내용의 시편 137편을 신나는 디스코로 노래를 만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들도 참으로 궁금하다.
https://youtu.be/7r_MvglKxhs?si=8STyh6k3Z3gWWtZb...보니 엠의 바빌론 강가에서

첫댓글
종교의 힘은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본인이 믿고 행하는데는 막을 자가 없습니다.
집단으로 서로 부추기며 믿으며 힘은 더 세게 변합니다.
뿅망치님은 지식과 상식도 많으며 판단력까지 가지신 분의
분석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걸 보면서 상황판단이 됩니다.
비종교인으로서 이해불가입니다.
지구위에는언제나 한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한쪽에서는 산불이 끊이지않고 일어나고 있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 판단은 어떻게 될까?
세월이 흐른후 판단이 나오겟지요.
영웅아니면 정신이상자 둘중하나가 나올듯합니다.
방법이 합법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는 제거가 되어야 했었습니다.
37년 동안 이란 국민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고 중동의 평화를 깨드린
사람이며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과 한 패가 되어 자유세계를 위협한
인물이지요
종교
교리의 허황된 이론들이
들어서
선민의식 에다가
오히려 원수를 만들고
죽임당하는
빌미제공이 되었습니다
종교의 편협된
사상들이
얼마나 인간을
망가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오만과 선민의식이 미움과 박해를
초래했었던 것처럼
이란의 하메이니도 독선과 아집이 이 결과를 초래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