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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의 적절한(?) 배신으로 번성을 타격하던 관우가 번성에서 대패. (사실 미방이 손권 세력의 식량을 강제로 탈취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몽이 이끄는 군세가 순식간에 형주를 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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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관우의 최후...(신삼국지에선 검은 머리였던 관우가 추격당하던 도중 백발이 되서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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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군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가던 관우...하지만 오군의 함정으로 인해 결국 아...관우여
사실 형주를 잃은건 뼈아픈 실책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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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의 정확성은 명확하지 않다...)
앞뒤 정황 안보고 형주 지방을 눈때중으로 대충 동그라미 쳤는데도 꽤나 큰 영토를 잃은게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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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알다시피, 형주는 위나라를 공략할 때 쓰기 위한 중요한 길목으로도 사용할 수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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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가 죽은것도 상당히 촞같은데 형주, 거의 국토의 절반을 소실했다. 매우 빡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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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비 8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를 정벌하러 가는데...
(어릴때 연의만 봤을때는 70만 가지고 지네 ㅉㅉ 했었는데, 70만 끌고갔으면 전투도 못하고 싹다 탈영+아사 했을듯. 70만 동원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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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진격로. 정말 많이도 갔다. 파죽지세다.
( 이 파죽지세가 어쩌면 오의 계략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전쟁은 유로파랑 다르다. 점령지에 군대도 배치해야 하고, 보급선도 길어진다. 점령지에 군대도 군대거니와 '신임'할 만한 장수를 배치해야 한다. 이게 전력 분산이 된게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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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파죽지세도 이릉에서 막히고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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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비가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다. 작전 능력이 나름 출중했던 그 유비가, 손제리의 합비 공방전급의 심각한 실책. 마안산 인근 으로 퇴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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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킹 같은 전투에서도 많이 잃어봐야 10,000~20,000을 넘기기 힘들다. 근데 8만 대군이 거의 궤멸당했다.(맞나?) 백미 마량을 잃었고, 황권을 잃었다. 8만군을 지휘할 소대장/대대장급 등의 장수들도 많이 죽었을 터.
이릉전 이전부터 유비는 패배를 직감한건 아닐까?
법정, 황충, 장비 등등 네임드들이 줄초상을 당한다.
조운, 위연같은 장수들도 대동하지 않는다.
촉나라 후반 버스를 태우는 제갈량도 촉에 있다.
유비가 잃은 병력과 장수들, 정말 뼈아픈 실책이였다.
이것으로 위와 촉/오와의 전력 차이가 더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위는 힘을 비축할 시간도 얻었을 터
(근데 나같아도 이런 상황에선 빡돌아서 못참을듯 함)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jkim2090&logNo=220034644208&isFromSearchAddView=true
신삼국지 사진 : 도원결의 카페, 재미로 전투만 보는 신삼국지
첫댓글 유비도 대머리가 되엇다면 관우의 무력을 얻엇을텐데..
평생의 개고생을 함께하고 그나마 본인은 익주에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을 때조차 형주에서 쎄빠지게 구르던 혈연 이상의 의형제가 동맹이란 놈들의 뒤통수에 죽었는데 그걸 참아넘길수 있는건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에게만 가능하겠죠.
감상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이릉전을 일으켰기 때문에 조상님처럼 천하를 얻지는 못했지만, 조상님보다 훨씬 인간적인 영웅으로 만세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오를 공격하지 않았다면야 그만큼 위에게 돌릴 수 있는 인력과 물자가 여유있었을 것이고 촉한의 최종적 목표인 북벌이 좀더 수월했겠죠. 제갈량보다 훨씬 명성과 권위가 높은 유비가 북벌을 주도했다면 제갈량이 겪은 촉한 내부적인 문제 (이엄이라든가)도 훨씬 덜했을 것이고. 대신 그만큼 위도 서북 전선을 튼튼히 방비했을테니 사실 모르긴 합니다. 가장 성공적이었던 1차 북벌은 어느 정도 위의 방심을 틈탄 것이니.
이릉전투 할때쯤이면 조조가 협천자를 한지 30여년, 천하 삼분지이를 한지 2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지요. 유비는 젊은 나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나 자기 휘하의 장군중 하나가 천재적인 군략을 보여준것도 아니었고.
이때 이미 천하통일은 물건너갔다고 봅니다. 특히 형주를 잃은 그 상황에서는...
유사학자들말로는 군권을가진관우와 정계탑급제갈량알력에 관우의병크가합쳐져 형주상실하고
이릉에서털렸어도 오군이 추격을약하게해서 인재풀은어느정도살렸다는데
어디까지가맞는건지
전혀...관우와 제갈량 알력설은 제대로 된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라고는 그저 제갈량 등용 직후 관우와 장비가 유비의 제갈량 사랑에 불평을 내보였다는 일화(수어지교), 지나친 관우의 자존심과 사대부들에게 공손하지 않았던 성격, 연의에서 제갈량이 관우가 죽었다는 것을 예측하면서도 유비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점 등을 드는데, 관우와 제갈량 둘 다 사적인 성격이나 관계를 둘째치고 유비의 최측근으로서 공사를 구분할 정도의 능력은 있었고, 연의는 연의일 뿐이니 별 근거가 없죠. 그리고 형주 문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고 원군을 보내지 못한 책임은 제갈량이 아니라 유비에게 있어야 하는 거고요.
이릉 패배는 병력 손실보다 인적 자원 즉 인재풀 손실이 재앙적이었던 것에 가깝죠. 관우, 황충, 장비, 마초 같은 1선급 최고 무장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그 뒤를 이을 2세대 무장들인 풍습, 장남, 부융, 정기, 두로, 유영이 모두 죽거나 항복했고 심지어 한중공방전에서 법정과 함께 유비의 최측근 참모였던 황권도 위에 투항했습니다. 문관 중에서도 형주의 유명인사이자 내정/외교 양면에서 활약한 마량이 군중에서 죽는 등 이릉에서 촉의 인재풀 손실은 괴멸적이었습니다.
촉의 전성기는 딱 입촉후 정군산전투 승리후 한중왕때라서...그뒤로 형주 강하,장사,영릉,계양 다때주고
강릉,무릉남았는데 양양친답시고 갔다가 다 잃고 촉오동맹도 파탄난 순간 ㅈㅈ인거죠 솔직히 제갈량 말대로
형주+익주였다면 가능했죠
북벌 성공을 가정하면 천수를 먹었으면 양주에 무위군이나 서평등 저족 강족의 주요 군벌들은 마초의 이름도 있고하니
유비랑 친하게 지낼수도 있구요
애초에 장안성은 수비만하면 못 뚫는성이고 그러니 북벌은 애초에 무리여서 양양을 쳐서 남양(완)을 먹고
그대로 허로 진격하거나 낙양을 쳐서
장안까지 포위시켜서 함락시키는 방법이 유일 했을텐데 손오가 욕심이 커졌는지 형주클레임자꾸걸어서글쵸
애초에 세력차이도 크구요 조비만해도 그 당시 하북왕으로써 자기아들 조예도 이미 평원왕...솔직히 익주하나만으론
조조가 아니라 조조아들 조비한테도 안돼네요 유씨황실 클레임도 조비가 선양받고나서는 없어진거나 진배없어졌구요. 장안성이 좀 매우 사기적인 성인지라 수비만하면 10만군이와도 못뚫는 성...이각,곽사가 마등상대로 막아냈는데 하물여 조조가
못막을리가 없...
중요한 건 아니지만 관우의 북진시 유비가 가지고 있던 땅은 남군과 무릉까지...나머지는 손권과 협상해서 넘겨줬었죠.
사실 국가지도자로서 보자면 선주의 판단은 최악의 판단이었죠.
주력부대를 날려먹은 것은 물론, 주요 지휘관들도 잃고 본인도 얼마 뒤 사망했으니, 무후라는 희대의 먼치킨이 아니었다면 망했을법한 상황을 만들어버림.
하지만 동진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유주에서 일어나서 마침내 천하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세 사람이 바로 그 절정의 순간 연이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이 마치 그리스 비극의 영웅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겠죠.
물론 이 비극적 최후가 없어도 북쪽 끝에서 태어난 몰락한 황족이 천하를 주유하여 서쪽 끝에서 황제가 된 것 자체도 극적이긴 하지만요.
삼국시대가 더 오래갔을지도 모르죠. 조운도 전장을 덜 굴렀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북벌자체가 가능했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정사 다루던 어느 역사방송(아이튠즈 팝캐스트)에서 유비가 말년에 원소처럼 충고를 잘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서 제갈량이 말하길 법정이 있었다면... 했다고 함.(묘사를 들어보니 법정이 간옹 상위호환격인듯)
선주의 입촉 후 소위 참모에 해당하는 인물은 무후가 아니라 법정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법정은 한중공방전에서 유비가 이상한 짓 하려고 할 때(화살이 쏟아지는데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팀) 막아낸 일도 있습니다(자기가 더 앞에 서서 간언했죠).
뭐, 법정은 법정대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비록 은원관계에 집착하고 유비의 총애 때문에 안하무인인 느낌은 있었어도 사적 감정으로 국가대사를 그르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 일찍 죽은게 아쉽죠.
뭐 그런데 관우를 잃고 형주를 잃은것뿐만이 아니라 오나라가 지속적으로 도발을 해서 전쟁을 안할수는 없었을겁니다. 도발하면서 오나라가 형주뿐만이 아니라 촉땅도 넘보고 있다는 야심을 드러낸고로...
관우가 늙은 적토마타고 도망치다 잡힌건 아닐까... 적토마는 짝짓기는 해보고 생을 마감했을까도,,, 궁금하고,,,
애초에 정사에선 여포가 적토라는 말을 타고댕겼다고 슬쩍 언급만되지 그게 관우한테 넘어갔다는 기록은 전혀 없는 관계로 관우가 적토마를 타고댕겼다는건 연의의 창작이겠죠. 말씀하신대로 진짜로 그게 관우한테 넘어갔다면 관우가 죽을때쯤엔 적토마도 엄청난 고령 -_-;
@Lamiless 도중에 늙어죽을겁니다 25~35년이 기본 수명...
어차피 형주 없이 촉만으론 천하통일은 무리라고 판단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