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 동안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울릉도·독도탐방' 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요?
탐방 다녀온 후, 결과물을 내야 해서 꾸역꾸역 쓴 것이지요.
생물주권의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곳에 올려봅니다.
* 동화 속에 나오는 사진은 동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안선모가 주관적으로 넣은 것임을 밝힙니다.
-----------------------------------------------
독섬을 지키는 소년, 탄이
안선모
1.
“탄이야, 탄이야! 일본 사람들이 도착했대.”
이웃집 칠복이가 골목길을 헐레벌떡 올라오며 외쳤다. 그 모습에 탄이는 씩 웃었다. 역시 칠복이다. 칠복이는 며칠 전 탄이와 싸우고 다시는 안 놀 거라며 씩씩대며 갔는데 그 일을 벌써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싸움은 별것 아닌 일로 일어났다. 멋진 어부가 되겠다는 칠복이에게 탄이는 비웃듯 말했다.
“난 어부가 제일 싫어. 땀내 나고 짠내 나고 비린내 나고.”
탄이의 말에 칠복이가 킁, 하며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런 철부지 자식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제발 좀 그만 해라.”
탄이는 엄마를 삼킨 바다가 미웠다. 바다를 좋아해 바다에서 살다시피 한 엄마를 바다는 무심하게 삼켜 버렸다. 그때부터 탄이는 엄마가 물질을 하다 사고를 당한 독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난 뭍으로 가서 멋진 일을 할 거야!”
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엄마를 버리고 떠나겠다는 소리잖아? 이 후레자식아!”
그 말에 발끈해서 탄이는 달려가 두 주먹으로 칠복이 가슴팍을 마구 두들겼다. 덩치가 큰 칠복이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틀린 말 했냐, 이 샌님 같은 자식아!”
그 말에 완전 열 받은 탄이는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힘도 센 칠복이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칠복이를 기어코 넘어뜨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칠복이가 탄이를 노려보며 외쳤다. 눈물이 글썽한 채로.
“나는 너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의리라고는 멸치똥 만큼도 없는 자식아!”
“말끝마다 자식 자식하는데 난 네 자식이 아니란 말이다. 난 감돌석과 고초롱의 자식이란 말이다, 인마!”
“앞으로 내가 너랑 놀면 네 자식이다, 인마!”
그러면서 칠복이가 뒤도 안 돌아보고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렇게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떠난 칠복이는 이틀 만에 탄이를 찾아왔다.
탄이는 칠복이와 함께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설마 또 강치 잡으러 오는 건 아니겠지?”
칠복이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지난달에 독섬에서 그렇게 많은 강치를 잡아갔는데 또?”
“그놈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는 짓이 곧 강치 씨를 말려버릴 것 같더라니까!”
“그런데 옷차림새를 보니 강치 잡으러 온 것 같지는 않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유심히 보던 탄이가 중얼거렸다.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는 사람들은 안경을 끼고 양복을 입고 있다더라.”
아버지 말에 의하면 그랬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탄이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놈들이 우리 섬에 오는 이유가 그것 말고 또 있단 말이야?”
칠복이는 한 달 전 일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덩치가 큰 칠복이는 자기 아버지를 따라 종종 배를 타곤 했는데 그날 일본 어부들이 강치를 잡는 걸 보았다고 했다.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옷은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린 채 마구잡이로 강치를 잡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칠복이는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라고 했다. 일본 어부들이 호시탐탐 돌섬을 노리는 까닭은 강치뿐 아니라 바다에 널려있는 해산물과 각종 물고기들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강치 때문이다.
이번에 온 사람들은 제발 일본 어부들과 다르기를 탄이는 속으로 빌었다.
산등성이를 내려와 칠복이네 집 앞에 도착하니 칠복이 엄니가 생선을 다듬으며 언성을 높였다.
“아이고, 저 잡것들이 이 외딴 섬에 또 왜 왔다냐?”
뒤에 선 칠복이 아버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2.
탄이는 일본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 나카이 상이 마음에 들었다. 울릉도 남자 어른들은 무뚝뚝하고 수염이 텁수룩하고 몸에서는 온갖 야릇한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는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일본 사람들은 세수할 때 비누라는 것을 쓴다더라. 그리고 이 사람들은 풀을 연구하러 왔대.”
나카이 상이 탄이네 집에 머물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칠복이 아버지처럼 물고기를 많이 잡지는 못해도 나름 실력자다. 조그만 배로 독섬의 거친 파도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최고였다. 칠복이가 들으면 화를 낼 일이었지만. 칠복이는 자기 아버지가 울릉도 최고 어부라고 생각했다.
“나카이 상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한다. 탄이 너는 식물에 대해 잘 알고 그림도 잘 그리니까 혹시 아냐? 그 사람이 너를 일본으로 갈지도. 그러니까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아버지가 탄이에게 당부한 말이다. 탄이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자기만 아는 장소에 피어 있는 자기만 아는 꽃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죽으라고 죽는 시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울릉도에서 탄이 만큼 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탄이는 어렸을 때부터 물질을 하는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가 바다에 있는 동안 탄이는 독섬에 피어 있는 꽃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별을 닮은 꽃에게는 별꽃, 달을 닮은 꽃에게는 달꽃, 해를 닮은 꽃에게는 해꽃. 이름이 있는 꽃에게는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안녕, 해국! 바닷바람에도 끄떡없는 너는 참 용기 있는 꽃이야.”
엄마가 하늘나라에 간 뒤부터 탄이는 더 이상 꽃을 보러 다니지 않았다. 꽃을 보면 엄마와 함께 한 추억이 떠올라 더 슬펐다.
“이제부터 너는 내 조수다.”
나카이 상이 그러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봉 투 속에는 일본지폐 몇 장이 들어있었다. 공짜로 머물며 부려먹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데 의외였다. 지난 해 더운 여름날,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졌다고 아버지와 어른들이 술에 취해 하던 말이었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조선 사람은 노예가 되었다며 울부짖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조선어를 잘 하세요?”
탄이의 물음에 나카이 상이 웃으며 말했다.
“조선 땅에 온 것이 1909년이란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안 가 본데가 없지.”
“아!”
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말을 잘 하는 게 이제 이해가 되었다.
“이제 3년차로 여기 두 섬의 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하려고 해.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하단다. 소문에 의하면 네가 식물박사라고 하던데?”
“에이, 박사는 뭘요?”
머리를 긁적이면서 탄이가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탄이가 본 섬의 식물이 눈에 죄가 떠올랐다. 어디에 어떤 식물이 사는지, 어느 곳에 가면 어떤 꽃이 피는지 안 보고도 훤할 정도였다.
나카이 상은 그동안 조사하고 채집한 식물들의 표본도 보여주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적혀 있는 책도 보여주었다. 탄이는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놀랐다. 조선에 살고 있는 모든 식물이 작은 책 속에 다 들어있었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꽃>
<울릉국화> <울릉장구채> <울릉바늘꽃>
그날부터 탄이는 나카이 상을 쫓아다니며 심부름도 하고 길잡이도 했다. 나카이 상이 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못 보던 식물이 나오면 사진도 찍고, 간단히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채집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탄이는 나카이 상 못지않은 전문가가 되고 있었다.
“오늘은 독섬에 사는, 저만 아는 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탄이의 제안에 나카이 상의 눈이 반짝 빛났다.
탄이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나카이 상과 독섬에 올랐다. 가파른 벼랑 위에 있는 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조심조심 꽃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두 뺨에 콕콕 박힌 주근깨도 그대로인 꽃이 작은 초롱 모양으로 피어 있었다.
<독도섬초롱꽃>
“이건 바로 엄마를 닮은 꽃이에요.”
“엄마를 닮은 꽃?”
나카이 상이 안경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이름도 섬초롱이라고 지었어요. 엄마의 이름이 초롱이었거든요, 고초롱.”
제주도에서 해녀로 살다 어쩌다 울릉도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고 독섬 바다를 누볐던 엄마는 안타깝게 바다 속에서 올라오지 못했다. 최고의 해녀였던 엄마가 물속에서 못 올라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탄이는 예전에 자주 갔던 독섬에 가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카이 상과 함께 독섬에 온 것이다.
“감탄군! 고맙다. 이런 꽃을 보게 해 줘서. 이 식물은 조선 섬에서만 사는 희귀한 꽃이야. 세계 식물학계에 보고할 고유 식물이 또 하나 늘었군.”
나카이 상이 이렇게 기뻐할 줄 몰랐다. 그런 나카이 상을 보는 탄이의 마음도 기뻤다.
3.
나카이 상이 머무는 동안 탄이는 최선을 다해 도왔다.
나카이 상은 조만간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고향에 돌아가면 그동안의 연구로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내가 1909년에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발견한 한반도 고유식물이 500종이 훨씬 넘는단다.”
나카이 상은 그러면서 그동안 수집한 고유식물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그 중 가장 기쁜 발견은 바로 탄이 네가 보여준 바로 이 꽃이지. 이 꽃은 독섬과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꽃이어서 더욱 가치 있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단다.”
탄이는 섬초롱꽃 사진 밑에 붙어 있는 영문 글자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Campanula takesimana Nakai
나카이 상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걸 학명이라고 해. 첫 번째 글자는 캄파눌라라고 읽어. 작은 종 모양의 꽃이라는 뜻이야.”
“아하! 작은 종 모양의 꽃.”
탄이가 미소를 지었다. 나카이 상이 두 번째 글자를 설명했다.
“이건 다케시마나- 꽃을 발견한 장소가 죽도라는 뜻이지.”
“예? 죽도요?”
“일본에서는 그 섬을 죽도라고 한단다. 여기서는 독섬, 독도라고 하지만 말이야.”
“이건 아니지요! 독도라고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탄이가 놀라 외쳤다. 그 모습에 나카이 상이 놀란 눈으로 탄이를 쳐다보았다.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당연히 다케시마로 불러야지.”
늘 친절했던 나카이 상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아, 죄송해요.”
탄이가 급히 머리를 숙였다. 나카이 상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마지막 글자 설명을 시작했다.
“이 마지막 글자 자리에는 이 꽃을 발견한 사람을 적기로 되어 있지. 이 글자는 바로 나카이!”
나카이 상이 자랑스럽게 마지막 글자를 읽었다.
“한반도 고유식물 527종 가운데 327종에 ‘나카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지.”
나카이 상의 설명을 다 듣고 나자, 탄이는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 느낌은?’
탄이는 밤새 뒤척였다.
<울릉도에 자생하는 꽃>
<섬괴불나무> <섬기린초>
4.
다음날, 탄이는 칠복이를 만났다. 둘이는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저 멀리 포구에 배가 떠 있었다. 나카이 상이 떠나는 날이었다. 탄이는 나카이 상을 배웅하러 나가지 않았다.
“너, 이상하다. 맨날 나카이 상, 나카이 상, 하면서 꽁무니를 쫓아다니더니.”
“…….”
“왜 아무 말이 없어? 나카이 상이 널 일본으로 데리고 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화났구나.”
“그게 아냐!”
“그럼 뭐야? 너, 그 사람 쫓아다닐 때 정말 행복해 보이던데? 너 그런 모습 난 처음 봤어.”
“그랬구나, 내가.”
탄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쭉 얘기했다. 탄이와 마찬가지로 칠복이도 섬초롱이 다케시마나 나카이로 등록된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우리나라 주권뿐 아니라 모든 생물 주권까지 빼앗은 거였어. 나카이란 사람은 식물 주권을 빼앗으려 온 거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동물, 물고기 등등 모든 동물 주권을 빼앗는 활동을 하였던 거야.”
탄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뭐가 그렇게 신나서 나카이 상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걸까? 엄마와 내가 발견한 섬초롱꽃 하나도 지키지 못하면서.”
탄이가 울먹거렸다. 그러자 칠복이가 탄이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아직도 이 섬을 떠나고 싶어? 이 울보 자식아!”
탄이가 눈물을 훔치고 멀리 독섬을 향해 섰다.
“천만에! 더 이상 일본이 하는 짓을 두고 보지 않겠어. 독섬을 지킬 거야. 강치도 지키고, 섬초롱꽃도 지키고!”
칠복이가 대견하다는 듯 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넌 식물을 지켜. 난 물고기와 강치를 지킬 테니까. 이제 철 든 친구야.”
탄이는 칠복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친구! 더 이상 자식자식 하지 않고 친구라 불러줘서 고맙고.”
멀리 독섬에서 떠오른 아침 해가 온 누리로 퍼져나갔다.
첫댓글 저는 다녀오고도 안 냈다는... ㅎㅎ
그런데 이걸 보니 막 어떤 생각이 떠오르네요.
갑작 쓰고 싶...
어, 안 내도 되는 거예요? 난 억지로 쓰느라...ㅠㅠ
@바람숲 ㅋㅋㅋ 모범생과 뺀질이의 차이.
마음만 먹으면 뚝딱 쓰는군요. 대단합니다 ☆
아녜요 선생님. 구상하고 쓰느라 고생했어요. 안 써져서 마감일에는 새벽3시까지 낑낑거렸지요.ㅋ
잘 읽었어요. 꼼꼼하게 수집하고 연구하는데는 일본놈들 못따라가지요. 저도 급하게 동화 써내느라 작품이 부끄럽네요 ㅋ
저도 급하게 쓰느라 고생했어요.ㅋ 마감일이 닥쳐야 쓰는 이 못된 습관을 고쳐야 할 텐데....
탄이와 칠복이의 우정,
일본과 나카이 상에게서 독도와 섬초롱꽃을 지켜내겠다는 다짐,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독도의 자료 사진들이 있어 더욱 좋네요.
예, 제가 요즘 요런 식으로 작가들의 동화를 소개하려고 해요. 시범적으로 송재찬 샘의 동화를 하고, 이제 두 번째로 해 보았어요.
점점 더 나아지겠죠?
저도 급하게 짧은 정보글 냈는데. 부끄럽습니다^^;;
샘은 워낙 바빴잖아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