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서 가피(加被)란 중생이 불보살의 자비와 위신력에 힘입어 얻게 되는 이로움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가피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현전(現前)가피’(혹 현증顯證가피), ‘몽중(夢中)가피’ 그리고 ‘명훈(冥熏)가피’입니다.
현전가피는 불보살이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 그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유명하게 잘 알려진 이야기로 조선시대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세조가 몹쓸 병에 걸리게 되어 그 병을 고치려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다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동자가 현신하여 고쳐주었다는 이야기가 현전가피의 이야기로 남아있습니다.
몽중가피는 꿈속에서 불보살을 만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거나, 본인의 소원을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몸이 아파서 간절하게 기도하니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약을 주신다거나 아픈 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져셔서 병이 나았다는 일화들 모두 몽중가피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꿈에서 불보살이 나타나 상서로운 모습을 보여주시며 현실에서 큰 복을 받게 되는 것들 역시 몽중가피의 이야기입니다.
이에 반해 세 종류의 가피 중 최고로 수승한 가피로 칭하는 명훈가피는 현전가피나 몽중가피처럼 현실이나 꿈에서도 눈앞으로 어떤 이로움이나 복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떻게 가피를 받았는지도 모르게 자신이 뒤바뀐다거나 상황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모든 이로움을 뜻하는 게 바로 명훈가피이기 때문입니다. 명훈가피에서 명은 ‘어두울, 그윽할 명(冥)’자를 쓰고, 훈은 ‘스밀 훈(勳)’자를 씁니다. 모양이나 색으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마치 향기처럼 그것이 나와 상황에 그윽하게 스며들어서 알 듯 모르듯 은밀하게 변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명훈가피에는 최고의 수승한 가피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가피에 모습이나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가피라 한다면, 이 가피를 주는 불보살님, 가피를 받는 나, 가피의 내용물, 그리고 가피로써 변화하게 된 긍정적인 결과가 포함됩니다. 하지만 이 명훈가피는 불보살, 나, 내용물, 긍정의 결과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현전가피나 몽중가피는 이러한 내용물들이 들어가 있지만, 명훈가피에는 이 내용물이 없기에, 그 모습이 은밀하기에 도리어 가장 수승한 가피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전체적이고도 알 수 없는 변화의 측면에서 현전가피나 몽중가피의 내용물이 포괄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물 없는 가장 말끔하고 담백하며 수승한 명훈가피를 저는 눈앞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눈앞은 대상도 아니고,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며, 결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내용이나 형식, 결과들이 눈앞에서 모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말끔하고도 텅빈 바탕의 눈앞이기에, 그 모든 가피의 내용이며 형식, 결과들이 드러나게 해줍니다. 나라는 존재가 이 텅빈 눈앞의 허공에 깃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환히 열릴 수만 있다면, 눈앞의 허공성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용이나 형식, 결과는 인연에 따라 생멸하고 증감하기도 하는 유위법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눈앞은 애초부터 불생불명하고 부증불감하는 반야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1971년 당시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법회에서 고암(古庵, 1899~1974) 종정 스님께서 이러한 법어를 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미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부처님 가피요, 들을 수 있는 것, 생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우리 모두는 알든 모르든,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이미 눈앞이라는 가피를 입고 있습니다. 이 허공과 같이 환하게 트인 눈앞에서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그 모든 것들을 인연에 알맞게 진리로 대하는 가피를 ‘이미’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글쓴이: 끝은 시작이었다. |
첫댓글 최고의 가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