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보고 욕 좀 하지 마세요.” 8살 작은아이가 이마를 잔뜩 찡그리면서 말했다.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래?” “했잖아요. 조금 전에 ‘짜쓱’이라고 했잖아요.”
“그게 무슨 욕이야? 짜쓱은 욕 아니야. 넌 어머니의 예쁘고 귀여운 딸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야.”
열심히 설명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짜쓱이 욕 아니어도 저는 그 말 정말 듣기 싫으니까 하지 마세요.”
폭언을 할 수밖에 없는 교사
옆에 있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는 것이 도리어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버렸다. “야 임마, 말버릇이 왜 그래 엄마가 너 이쁘다고 그러는건데.”
“아버지는 왜 욕하세요? ‘임마’는 욕 맞죠? 그 말도 듣기 싫어요. 저는 임마도 아니고 짜쓱도 아니고 정빈이란 말이에요.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왜 그렇게 불러요?” 아이의 말에 남편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마가 욕인가? 여보, 임마가 욕이야?”
선뜻 대답을 못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지만 사전에 나와 있지 않았다. 말을 하는 나는 별 생각 없이 하는데 받아들이는 아이는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던 중 ‘교단 폭언 실태 조사연구’에 관한 신문기사에 눈길이 멈추었다.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폭언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작 교사들은 이같은 폭언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로 시작하는 글. ‘선생님의 폭언은 학생들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선생 오래 하니 느는 것이 협박이고 엄포야.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죽을래? 그만 살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니. 안 그러고 싶어도 웬만한 말에는 꿈쩍도 안 하니 자꾸만 더 거칠고 자극적인 말을 하게 되고. 이러다 퇴직하면 떼인 돈이나 빚 받아주는 곳에서 스카우트하겠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대학동창 모임에서 만난 한 친구의 말에 그 누구도 웃지 못한 채 우리는 서로를 우울하게 바라보았었다.
“야 임마, 너 오늘 나한테 죽고 싶어?”
참으로 섬뜩한 말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인 것이 사실이다. 설마 선생이 학생을 정말 죽이겠다고 그런 말을 하겠는가? 협박용이라는 걸 선생도 알고 학생도 알지만 말을 하는 선생과 말을 듣는 학생의 느낌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짧지 않은 교단 생활에서 고집스럽게도 지키려 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다. 수업뿐만 아니라 담임으로서 학급의 조·종례를 할 때에도, 개인적인 만남이 아니면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지금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은 내 큰아이와 동갑인 중학교 2학년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선생이 꼬박꼬박 경어 쓰는 것을 오히려 이상해하며 그러지 말라는 이야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경어 사용은 나를 다스리는 방법
첫째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경어를 쓰는 이유는 여러분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아는 아이는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해줄 줄 아는 마음을 가질 거라고 믿기에.
두 번째는, 나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스리기 위해서다. 솔직히 ‘너희들 오늘 내 손에 죽고 싶어?’라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상황이 많으며, 그럴 때 감정이 잔뜩 묻어 있는 말들을 내뱉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 학생들에게 경어를 쓰기에 그런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여러분들, 오늘 선생님 손에 죽고 싶어요?”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 아닌 다음에야 이러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차라리 입을 다물거나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 나를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지금 선생님이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합니다.”
교단에 첫발을 딛는 후배들에게 내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경어 사용’을 당부한다. 선생으로서 나를 다스리는 한 방법으로.
첫댓글 찔립니다. 의도하지 않은 저의 말투에 아이들의 마음이 무척 상했으리라 짐작되네요. 내일부터는 차분한 마음 다스림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