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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과 빈부귀천 길흉화복
명심보감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적악지가 필유여앙(積惡之家 必有餘殃)' 란 말이 있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악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는 말이다. 흔히 선행을 하는 것을 '功德을 쌓는다' 라고 말하고, 악행을 하는 것을 '業을 짓는다' 라고 말한다.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들은 사람의 육신이 죽으면 재물과 명예, 권력 등 이 세상의 것은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덕과 업력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영혼을 따라 윤회하며 후생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덕이 많으면 후생에 복이 많고, 업력이 많으면 인생에 간난신고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역대의 모든 부처들은 다음과 같이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 권하였다.
"모든 惡을 짓지 말고, 모든 善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생각(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의 가르침이다."[ 칠불통게(七佛通偈) ]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끈다. 청정한 마음으로 행하면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른다.”《법구경》
이처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우연이 아니라 선행과 악행에 따른 인과응보인데, 붓다는 카르마(業)와 마음수행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만약 사람이 행한 業이 없는데도 즐겁거나 괴로운 과보가 생긴다면, 그 누구도 바르게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業이 있으므로 과보가 있으며, 그 때문에 수행해야 한다.”《잡아함경》
"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인간세상에 이어 천상계가 있어서 業에 따라 그 세계들이 등차적으로 건립되어 있다. 중생은 자기가 지은 그 죄과에 의하여 자기에게 맞는 세계에 태어나고 또 다른 다음의 業因을 지어가는 것으로 끝없는 삶을 살아간다. 선행을 행한 착한 사람은 안락한 세계에서 한결 더 안락한 세계로 나아가다 보니 그 지혜는 더욱 더 밝아지게 되며, 악행을 지은 악한 사람은 고통스런 세상에서 한결 더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나아가다 보니 그 마음이 더욱 더 혼탁하고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수능엄경》
이와 같이 선업(덕)과 악업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이 달라지는데, 그렇다면 德과 業은 정신일까 아니면 물질일까?
이에 대해 법륜대법 李洪志 사부님께서는 德과 業은 정신이자 동시에 물질임을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 좋은 일을 하면 백색물질 - 德을 얻고, 나쁜 일을 하면 흑색물질 - 업력을 얻는다." "과거에 노인들이 이런 한 마디 말을 했다: 德을 쌓아라 德을 쌓아, 조상에서 德을 쌓아라, 이 사람은 德을 잃는다, 德을 손상한다. 그 말은 모두 지극히 옳다. 현재의 속인에게는 이미 이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신이 그런 젊은이들과 말하면서 德이 없고 德이 적음을 말하면 그는 전혀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그것의 의의는 확실히 아주 깊으며, 그것은 단지 근대인의 사상과 정신적 표준일 뿐만 아니라 진정하게 물질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우리 사람의 신체에는 이 두 가지 물질이 다 있다."(전법륜)
사람은 부모를 통해 인간의 몸을 받고 부친의 精과 모친의 血을 통해 유전인자를 물려받으므로, 자식은 부모의 성격과 재능, 기질과 질병 등 조상의 정신과 물질을 일정 부분 대물림한다. 그러나 부모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며, 또한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성격이나 재능이 서로 다르므로 본인이 전생부터 지니고 온 덕과 업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수련계에서는 고대로부터 물질과 정신, 즉 몸과 마음은 하나임을 주장했는데, 현대 의학계가 과학적 실험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몸과 마음은 하나로 늘 서로 영향을 미치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함을 발견했다. 예를들어 매실을 생각하면 침이 분비되고, 야한 생각을 하면 음기가 발동하여 애액이 분비되는 등이다.
우리의 뇌는 수십가지의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는데, 사람이 긴장하고 분노하면 뇌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공포감을 느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한다. 두 물질 모두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혈관을 수축시키거나 막는 작용을 하여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한다. 기혈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가 다량으로 발생하여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이해, 관용, 감사 등)으로 받아들이면, 단백질이 부신피질 호르몬과 베타 엔돌핀으로 분해된다고 한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베타 엔돌핀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한다고 밝혀졌다.
특히 번뇌망상이 사라진 무념무상의 상태(삼매)에서나 깊은 숙면 중에 잘 분비되는 세로토닌이란 물질은 기분을 유쾌하게 하고, 어떤 욕구실현을 통해 얻는 상대적 만족감이 아닌 절대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활력을 생기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집중력과 기억력을 향상시켜 업무능률을 올리고,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시켜 주기도 하는데,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 자살충동, 강박장애, 공황장애, 정서불안,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햇빛쬐기(화창한 아침햇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나,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이면 마음이 침울해짐), 깊은 숙면(잠을 깊게 잘 자고 나면 피로가 풀려 몸도 개운하고 기분도 상쾌하며 깊은 호흡으로 에너지가 충전되어 활력이 생기나, 근심걱정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그 반대임), 삼매(절대적 만족감과 행복감, 평화로움을 느낌)의 상태에서 분비가 촉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고, 근심걱정에 시달리느라 깊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심신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이완시키는 삼매에도 들지 못하니 세로토닌 분비가 적어서 정서적으로 편안하기 어렵다.
미국 메사추세츠종합병원의 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선정을 통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되면 해마(hippocampus)의 회색질 밀도가 증가되어 기억력과 학습능력, 자존감과 동정심(측은지심), 반성의식이 증가하고, 편도체의 회색질 밀도는 오히려 감소되어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깊은 수면이나 명상은 곧 스트레스와 노폐물들을 청소하여 몸과 마음을 일정부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 즉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사람의 마음(생각과 감정)에 따라 뇌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뇌의 구조가 변하고, 뇌에서 분비된 물질과 뇌의 구조는 다시 사람의 마음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의학계가 밝힌 바와 같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거나 혹은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 따라서 심신에 긍정적인 물질이 형성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물질이 형성되기도 하는 것으로 마음의 선악에 따라 산생되는 물질의 성질도 변한다.
그래서 德과 業은 정신이자 동시에 물질이며, 원망과 미움 등의 나쁜 감정을 가지면 나쁜 언행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해로운 물질의 분비로 자신을 스스로 해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생각만 해도 곧 業이라고 말한다.
도가에서는 業을 탁기라 칭하는데 지혜의 눈(天目, 天眼)으로 보면 검은물질로 보인다고 한다. 이 검은물질이 참나(본성)를 둘러싸고 있어서 본성인 자비와 지혜를 가로막고 있는데, 이를 불교에선 업장(業障)이라 말한다.
업장소멸이란 바로 검은물질인 탁기를 없애는 것을 말하는데, 업장은 마음(생각과 감정)을 잘못써서 생겨난 것이므로 업장을 소멸하려면 곧 마음을 청정하게 닦아야 한다.
우리가 화를 내게 되면 머리에 먹구름 같은 것이 뿌옇게 끼고 가슴에도 탁기(業)가 쌓여서 심할 경우에는 며칠 동안 마음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데,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면 그 기운이 파동으로 전달되어 상대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갈등이 심화되며 서로의 사이가 더욱 나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려면 내 마음부터 바로잡아서 역지사지하여 상대를 미워하는 나쁜 마음을 버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관용, 자비심으로 상대를 감화시켜야 한다. 그러면 상대가 나에게 가진 미움이나 증오도 풀린다. 그럼 서로의 마음이 편안해지니 이로써 業은 소멸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業을 짓지 않으려면 타인에게 화를 내거나 또는 나쁜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상처주고 미움과 원한을 사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상습적으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화를 발산하는 부정적인 물질(業)이 본성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물질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으로,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집착심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그런 부정적인 물질이 사라지고 나면, 화가 잘 나지 않고 마음도 평온해지며 번뇌도 사라짐을 체감했다.
결국 인생을 살면서 나쁜 마음과 언행으로 인해 쌓인 검은물질(業)이 청정한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우리의 본래 성품인 평안과 행복, 지혜를 가려서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業이 많은 사람일수록 육체적 고통과 번뇌망상에서 해탈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가 그 만큼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우친 성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원한을 사는 모든 악(살생, 도둑질, 폭행, 강간, 간음, 사기, 음해, 비방, 욕설 등)을 멀리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고(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등),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욕심을 버려라, 분노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등)고 가르쳤던 것이며, 마음을 깨끗히 하기 위해 마음 다스리기와 함께 선정을 아울러 가르쳤다.
사람들의 행위는 마음(생각과 감정)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하는 근본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먼저 상대에 대한 미움을 버리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듯이, 이기심이 많은 상태에서는 타인을 위하는 순수한 자비심과 이타심이 생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기심을 품고 하는 선행은 대부분 댓가를 바라거나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등의 순수하지 못한 선행으로, 그 욕구를 상대가 충족시켜 주지 않거나 본인이 그 이기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도리어 욕구불만의 번뇌를 초래하는 경우가 생긴다. 즉, 마음이 정화되는게 아니라 도리어 원망과 배신감이 일어나 마음이 탁해지며 인간관계가 오히려 나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본인은 좋은 일이랍시고 한 일이 도리어 상대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무지로 인해 초식성 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여서 광우병에 걸리게 하거나, 자식은 판검사가 되고 싶지 않은데 부모가 판검사가 되어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강요하여 자식이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탈선하거나 자살하는 경우 등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열리지 않은 무지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그 일이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도 모르면서 자기 관념과 욕심에 얽매여서 상대방에게 강요하면 도리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고, 사물의 실상과 인과관계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열려야 모든 악행을 멈추고 번뇌가 따르지 않는 순수한 선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성인들은 공통적으로 그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나는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남들은 날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과거에 지은 業을 어떻게 소멸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李洪志 사부님의 다음 법문을 읽어보시고 꼭 실천하여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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