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 곰 의 하루
노 순 희
벤치에 앉아 때 이른 자두를 먹으며 담소하던 젊은 엄마 서너명이 내게로 황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나는,목재木材 깔린 길 바닥이 무슨 안락한 소파라도 되는양 비스듬히 누어 있다.
왜 누워있지?
화단에 무수히 피어난 보라꽃 흰꽃은 알고 있을까.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여인에 '안경은 여기 있어요' 하는 여인도 있고 누군가는 내 손을 잡아 끌고 있다.
또 어떤 여인은 손수건을 꺼내어 뭔가 흘러내리는 나의 이마를 연신 닦고있다.
내 기억은 방금전 밝은 연둣빛의 학원버스를 보고 연이와 함께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난것까지에서 멈추었다.
연이를 태운 차는 이미 출발하고 보이지 않았다.
나를 에워싼 여인들은 모두가 낯설다. 단지 여인들과 내가 앉았던 벤치가 나란히 있었다는 인연 밖에는 없으니 그럴밖에.
왼쪽 눈썹 아래가 아프지도 않은 것이 뭔가 습한 것도 같은 찝찝한 느낌이 든다. 찢어진 모양이었다.
연이를 학원차에 태워 보낸 후 나는 곧장 부산으로 직행할 예정이었다.그만큼 마음이 급했을까 학원차를 보고 냅다 달려가는 연이를 왜 내가 쫓아가려고 나서다가 나무계단 턱에 발이 걸려 나도 모르는 순간에 옆으로 들어 누우면서 또 다른 턱에 눈썹 아래를 부딛쳤던 것이다.
이일을 어떻헌담!
한 여인이 친절하게도 속삭이듯 피부과를 찾아가라고 말했다.
'** 피부과를 가세요. 원장이 ** 병원에 있던분이라 잘 보시거든요'
여인은 다시 손수건으로 내 눈썹 아래를 지긋이 눌렀다 떼면서 마치 친 언니에게라도 하듯 다정스럽게 말 하는것이었다.
댁은 어디신가요 물으니 509동이란다. 우리와는 바로 마주보는 동이지만 한번도 마주친적 없는 낯선이가 이리도 아름다운 친절을 베풀다니 세상은 아직 따듯하구나.
여인의 말 대로 ** 피부과를 찾아 갔더니 원장은 큰 병원에 갈것을 권유하며 진료를 회피했다.
성형외과를 가면 더 좋겠다고 한다.
태양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오후 세시였다.
짜증이 나도 소용이 없다.
꾸우욱 눌러 참고 피부과 원장이 시키는 10차선 대로 건너의 종합병원으로 갔다.
담당 의사는 왼쪽 눈썹 아래 찢어진 상처부위를 상하좌우로 조물락 거리더니 바늘을 댈것까지는 없겠다면서 붙여주는 테이프는 5일간 떼지 말라고 당부했다.
닷새 분량의 약을 처방하며 썬 그라스를 끼고 다니라는 말로 써비스까지 했다.
부산역 앞 거리에 예상대로 해는 지고 어둠속에 장맛비가 내린다.
빗속에 썬그라스를 낀 여인이 기분만은 다치지 않았는지 발걸음도 명랑하게 부산의 밤거리를 걷는다.
그녀가 가는곳은 해운대,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으니 얼굴이야 망가졌든 말든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생각하며
오랜만에 만날이들 생각에 흥얼흥얼 콧노래 마저 나오는 판이다.
늘 시간에 쪼들리다보니오늘밤이 아니고는 만날 시간이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두 친구 앞에서 썬그라스를 벗으니 한쪽눈은 연극배우의 분장한 눈이 되어있다.
친구들은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입을모아 나를 위로했다.
눈 화장은 점점 짙어갔다. 하룻밤이 지나자 눈 뜨고 볼 수 없는 눈이 되고 말았다.
눈동자는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래야 보이지도 않고 어둠에 잠긴 호수같은 눈 위아래로 믿을 수 없는 먹빛의 멍이 '주인님'하고 부른다.
세상에 이런일이..
'엄마! 현이 (울산에 사는 세째 딸) 온다는데 어떡할까?'
둘째가 물었다.
'오지 말라고 그래 이 몰골로 아무도 만날 수 없다.'
'정말?'
'아니아니 보구 싶다 어서 오라구 해'
1초도 걸리지 않고 수정안은 통과되었다.
찾아 올 세째에게 엄마가 부산에 내려온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숨을 죽이고 세째네 가족을 기다렸다.
이쪽 상황이야 어떻튼 그쪽은 무사하니 '무사한 자식 기다리기' 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둘째와 약속대로 작은 방의 문을 꼭 닫은 나는 라텍스 매트위에 누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태? 로 쉬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고 왁지지껄 세째 내외와 데리고 온 1남 1녀를 맞이하는 둘째도 반갑다고 수선을 떤다.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 퍼진다.
모두들 소파에 앉아 흥분이 가라앉았는가 싶던 바로 그때 나는,
챙이 크~ㄴ 모자에 썬 그라스를 끼고는... 어떻게 말렸는지 아직도 꽃빛이 화사한 말린 꽃바구니를 든채... 방문을 열고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거실로 나갔다. 시집간 딸들에게 친정 엄마가 누구이던가. 더우기 당연히 서울에 있을 엄마가 오늘밤 소리소문도 없이 부산의 언니집 비인 방에서..만날 읊조리던 허무병이 도졌는지... 정신이 나갔는지...대낮도 아닌 한 밤중에 검은안경에... 꽃바구니까지 들고 나오다니...
아아 !~ ! 엄마아아~ !
소프라노의 세째가 기절 초풍하며 얼굴이 맞닿을정도의 거리로 다가온다.
'장모님 언제 오신겁니까'
너무 놀랜 나머지 작은 눈을 똥그랗게 뜬 사위가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내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드민다.
안경은 썼으나 눈썹 아래 붙인 투명 테이프를 보며 웬일이냐고 물었다.
'쌍꺼풀 하는 김에 보톡스도 한방 맞았네'
'진짭니까?'
세째가 나선다.
'엄마~! 쌍꺼플이 얼마나 진한데 무슨 수술이야 어떻게 된거야 빨리 말해바.'
나는 도리없이 서서이... 모자와 썬 그라스를 벗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 세째와 그녀의 신랑은,
'아아악!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잠시후 온 가족이 손뼉을 치며 부르는 합창소리가 담을 넘었다. 제일 신이난건 유진 (현이 딸) 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팬더 곰! 팬더 곰! 팬더 곰!
팬더가 와서 보고 울고 갈 얼굴이면 어때, 알콩 달콩 살아가는 자식들을 만난것이 즐거워서 그래도 나는 웃었다.
그날밤 팬더 곰과 그의 가족들은 생맥주와 치킨을 앞에 놓고 우루과이 대 한국전의 월드 컵 경기를 마음 조리며 보았다.
멀리서 가까이서 피 끓는 부산시민들의 함성이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경기가 끝나고 새벽 1시 30분경 ,
일요 조기축구시합을 위해 울산 식구들은 자리를 떠났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서 현이가 나를 보고 말한다.
'엄마!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또 만나 엄마 안녕!'
나는 멀어져 가는 그네들의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 현아, 네 말대로 또 만나자꾸나, 행복하게 잘 살아, 사랑해 아주 많이많이...'*
첫댓글 근데 우찌 다쳤는지는 암만 봐도 안비이네요..
어머! 선생님. 괜찮으신겁니까. 걱정이 됩니다. 암튼 속히 나으시기를 기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아직도 팬더곰? ㅎㅎ--그거 빨리 안 가라앉는데.... 그래도 많이 다치지 않으셨으니 다행입니다.
참" 긍정적이시네요. 아프셨을텐데 쌍거풀 잘 아무시기를
" 친구들은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입을모아 나를 위로했다. 눈 화장은 점점 짙어갔다. 하룻밤이 지나자 눈 뜨고 볼 수 없는 눈이 되고 말았다.
눈동자는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래야 보이지도 않고 어둠에 잠긴 호수같은 눈 위아래로 믿을 수 없는 먹빛의 멍이 '주인님'하고 부른다. 세상에 이런일이.. "
선생님 어찌 그 런 일이 정말 다행입니다.
하느님이 선생님이 착한 분이라 큰 아픔은 주지 않았나 봅니다.
하루빨리 나아셔서 이쁘신 얼굴 보여주세요.
그리고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엄마~! 쌍꺼플이 얼마나 진한데 무슨 수술이야 어떻게 된거야 빨리 말해바.'
나는 도리없이 서서이... 모자와 썬 그라스를 벗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 세째와 그녀의 신랑은,'아아악!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내 눈 앞에서 사라졌다.// 건강한 모습을 조만간 뵙게 되겠지요, 선생님,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전화로, 댓글로 염려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교수님 ,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물론 제 불찰이었습니다마는 다친게 억울해서 작품하나 만들자 싶었는데...뜻하지 않은 심려를 끼치게 된점 너무도 죄송하옵고 넘치게 보내주신 사랑에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살면서 갚아나가야겠지요. 고맙습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