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각국사 의천의 차맥
1) 요나라 천우황제, 의천과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경기도 풍덕군 흥왕사에 세워진 ‘대각국사묘비명大覺國師墓碑銘’은 흥왕사터에서 발견되었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비석에는 의천과 요遼나라 8대 왕인 도종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요나라 천우황제(天佑皇帝/도종道宗 재위 1055∼1101)가 ” 재차로 경책經冊, 다향茶香(차와 향), 금백金帛(금과 비단) 등을 고려로 보내주면서 ‘의천’ 대각국사와 사자師資(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 라는 기록이 있다.
요遼나라의 8대 황제 도종道宗은 46년간 재위하였다. ‘야율준(耶律濬/생몰 1057 ~ 1077)은 도종의 외아들이었는데 ’야율을신‘의 모함을 받아 20살에 요절하였다. 말년에는 태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도종은 1101년에 타계하였고 손자 ’천조제‘가 황위를 이었다. 요나라는 ’천조대‘에 이르러 금나라에 멸망하였다.
요나라 천후황제(도종)**(주1) 타계한 후 22년이 지나서, 북요北遼**(주2)의 14대 황제 ‘덕종’(서요西遼의 1대 황제/1087 ~ 1143, 재위/1132 ~ 1143/ 천우제)이 《대장경》과 여러 종류의 소초 6천9백 권, 금과 비단 등을 고려로 보내 고려로 보내왔다고 한다. **(주3)
요나라 후기에 의천대각국사는 절대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당시 고려의 사신이 요나라에 가면 의천의 안부를 여쭈었을 정도로 요나라의 도종 때 의천은 요나라(거란)에 영향을 끼쳤다.
요나라에서 온 사신이 토산품을 바치며 예를 갖추어 절을 했다. 또한 우리의 사신이 요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국사의 안부를 물었다. 도종으로부터 이어진 의천 대각국사와의 인연은 도종이 의천을 차의 스승으로 받들었기 때문이다. 김부식 찬<개성 영통사 대각국사 비>
의천은 또한 고려의 ‘뇌원차腦原茶’로 송과 요나라와도 차문화를 교류하였다. 뇌원차로 의천은 고려의 주변국들과 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이어갔던 것이다. 뇌원차는 송과 요에서 유행하였다.
2) 송나라에서 구법한 의천, 송과 활발한 차문화교류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 구법求法을 결행하려 하자, 문종文宗과 모후인 인예태후가 반대하였다. 결국 그는 형인 선종宣宗 때 <청입송구법표請入宋求法表>를 올려 송나라 구법을 결행한다. 그 당시의 고려는 주변국들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다. 고려의 주변 정세가 불안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문종과 인예태후는 반대했던 것이다.
의천이 송에서 17개월을 머무는 동안 송 황실로부터 극진한 예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아, 의천을 통해 송과 고려 사이에 활발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85년 5월 송나라에 도착하자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그에게 ‘어차御茶’ 20각과 약품藥品 1합을 하사했다. 이때 의천은 특별히 ‘사사차약표謝謝茶藥表’를 올려 감사의 뜻을 표했다.
아울러 “귀한 차嫩芽(눈아)와 영험한 약을 공경하게 받들겠노라”고 칭송했다.
[臣僧某言 今月 13日 中使至 奉傳勅旨 伏蒙聖慈 特賜御茶二十角 藥一銀合者 無晃凝旒 特紆於睿眷 嫩芽靈藥 優示於寵賜] <대각국사문집>
의천이 송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송 황실로부터 용봉차를 선물 받고 ‘승僧’에게 차를 준 것에 대한 화답의 시 ‘화인이차증승和人以茶贈僧’이다.
北苑移新焙 북원이신배 / 북원에서 말린 새 차를 옮겨와서
東林贈送僧동림증송승/ 동림의 ‘승’에게 보내왔다
預知閑煮日예지한자일/ 한가로이 차 달일 날 미리 알았던 듯이
泉脈冷敲氷천맥냉고빙/ 차가운 얼음을 두드리며 샘을 찾고 있었네
이 시에서 북원北苑은 푸첸성(福建省/복건성) 건안현建安縣을 말하며, 그곳에서 용봉단차가 생산되는 곳이다. 동림東林은 정토종淨土宗의 초조初祖인 혜원법사慧远가 주석하던 동림사東林寺를 말한다. *동림사는 중국 여산의 오로봉에 있다.
송나라 조정과 승려 및 사우(師友스승과 벗)들로부터 차를 선물 받았다. 현존하는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의 기록에 따르면, 의천이 송나라 도성에 도착하던 달 13일에 송나라 조정에서는 그에게 사신을 보내 위로하고 “특별히 어차御茶 20각과 약품 1은합을 하사하였다. ” [臣僧某言 今月 13日 中使至 奉傳勅旨 伏蒙聖慈 特賜御茶二十角 藥一銀合者 無晃凝旒 特紆於睿眷 嫩芽靈藥 優示於寵賜] <대각국사문집>
이 때문에 의천은 특별히 ‘사사차약표謝謝茶藥表’를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하였고, 아울러 “귀한 차嫩芽(눈아)와 영험한 약품이라고 칭송 하였다.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권5와 권6의 목록에서는 <사사용봉차표謝謝龍鳳表>와 <사황태후동정표謝皇太后同前表>가 있고, 권9에는 <사사차과장謝謝茶果狀>이 있다. 안타깝게도 원문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기록은 송나라 조정에서 ‘용봉차龍鳳茶’와 ‘다과茶果’를 하사받은 의천이 감사를 전하는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어차御茶’와 ‘용봉차’는 송나라 황실에서 마시던 고급 공차貢茶이다. 이는 푸첸성(복건성福建省) 건주建州 등지에서 생산되는 ‘용봉단차龍鳳團茶’를 가리키는 것으로, 북송 당시의 이름난 공차이다. ‘표지성 절강차와 한국차의 친연 관계를 밝힌다’ 월간 <차의세계> 2003년 2월호
송나라에서 차문화를 소중하게 다루고 있음을 접한 의천은 고려에 돌아와서 천태종을 개창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에 차문화를 일으킬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의천에 의해 송과 활발한 무역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왕실의 존중을 받게 된 차가 바로 ‘뇌원차’였다. 의천은 송나라의 용봉단차를 고려에 전래하고 뇌원차를 드러내 송과 고려의 차문화 발전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