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만 뚫려있는 느낌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생기는 듯해요. 사방이 다 막혀있고 이 길만 뚫려있는 느낌을 받았죠. 그래서 합니다.”
▲스카우트 원불교 연맹장 김덕영 교무
스카우트 원불교 연맹장 김덕영 교무(54)의 조부모는 안동에서 도를 찾아 계룡산이 있는 신도안에 정착했다. 김 교무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만난 처녀와 결혼하여 6남매를 뒀고 그녀는 맏딸이었다. 소작농인 부모는 날마다 일을 하느라 동생들을 돌보며 밥을 하고 새참을 나르는 일은 그녀 몫이었다. 어느 날 집 뒤에 원불교 교당이 생겼고 대학생들이 방학마다 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기였던 남동생을 재워놓고 교당에 공부하러 다녀오다가 남동생이 잠에서 깨어 눈물 콧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걸 보고 “삶이란 이런 것인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회의를 느꼈다. 부모처럼 일만 하다 자식도 돌볼 수 없는 삶을 살기 싫었던 그녀는 공부를 하기 위해 15살에 대전으로 나왔다. 그러나 동생들이 늘 눈에 아른거려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도 동생들만 쳐다보지 말고 누나 갈 길을 가야지.” 하는 남동생의 말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성직자로 향하는 계기였어요. 당시 교무들의 삶을 보고는 그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시작은 했으나 여자는 어떻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게 복이라 여기던 아버지로 인해 이불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면서 눈치껏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버님이 저를 찾아오지 않으시는 겁니다. 점쟁이로부터 그 딸은 하고 싶은 대로 놔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고, 가슴에 묻는 자식보단 어쩌다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는 자식이 좋지 않으냐는 말을 들으셨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 그 점쟁이가 어찌 보면 은인이지요.”
▲원만이가 새겨진 원불교 연맹 표장
캐릭터 '원만이' 탄생
1985년 교무로 첫발을 디딘 그녀는 제주로 발령을 받아 갔다. 그곳에서 만난 교도가 스카우트를 소개했고 청소년 교화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시작한 게 25년이 흘렀다.
전국 20개 연맹 중 종교단체로는 가톨릭에 이어 두 번째로 2007년 만들어진 원불교 연맹의 표장도 99년 칠레 잼버리 때부터 선물로 준비한 캐릭터 '원만이'를 형상화하여 김 교무가 직접 만들었다.
▲복주머니와 원만이 변천사(빨간색 요쿠르트
인형이 맨 처음 원만이, 그 옆은 최근의 다양한
종류의 원만이)
“처음 세계에서 온 각국 사람들에게 줄 선물로 복주머니를 생각했죠. 폐품을 활용하자는 의견으로 치마 속단을 잘라 복주머니를 만들었는데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그 뒤엔 복주머니 안에 인형을 넣어보면 어떨까 싶어 만든 게 원만이 캐릭터의 시작이죠. 요쿠르트 빈병을 삶아 색을 칠하고 그 위에 필름통 뚜껑에다 구멍을 뚫어 인형을 만들었는데 필름통 뚜껑에 구멍 뚫는 게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라 좀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던 차에 복주머니 매듭이 눈에 띄더군요. 매듭으로 6근(몸, 마음, 눈, 코, 귀, 입)을 뜻하는 몸을 만들고 얼굴은 마음 心을 그려 넣어 웃는 모습입니다. 6근을 잘 사용하면 롱다리가 된다고 말해주면 무척 좋아하지요. 세계 160개국에 100만개 원만이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활동
김 교무는 최근 '원만이' 특허를 낸데 이어 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 작업도 진행중이다. 예술단을 운영해 원불교를 널리 알릴 예정이기도 하다. 또한 영국 길델파크에 원불교관의 건립을 비롯해 2011년 스웨덴 세계잼버리, 2011년 브라질 세계총회, 2015년 일본 세계잼버리에도 참가하여 국제교류를 증진할 계획이다. 야영장과 회관 건립을 서둘러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과 아태잼버리 유치, 아구노리캠프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스카우트 원불교연맹 20년의 사진 자료집 발간에도 분주하다.
지난해에는 2012년 개최예정인 세계총회의 제주 유치도 이뤄냈다. 유치가 확정되자 제주에 3,500평 부지를 확보, 국제 선센터와 해외 입양아 초청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
여성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젠 건강을 생각하며 일해야 할 때더군요. 한 번은 계속 코피가 나는 겁니다. 결국엔 레이저 치료를 받았더니 일주일 내내 콧물을 흘리고 다녔어요. 그 몰골로 일하긴 어렵죠. 뭔가 꾸준히 일을 하려면 꼭 건강을 지켜가며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원만이'와 함께 세계로 꿈을 펼치는 김덕영 연맹장의 웃음이 환하다.
글&사진 유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