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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묵상
목회자의 행복은 무엇일까? 거창하게 ‘소명’을 말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다만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목회의 절실함이 덜 요청되면서 종종 목회자의 다수는 잉여 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동안 성직을 남발한 까닭이기도 하다. ‘목사 과잉’과 더불어 ‘개척 포화’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들은 설 땅이 비좁다. 서로가 경쟁자처럼 느껴져 더 괴롭다.
개척(Pioneer)은 미국 서부 진출 시대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온 세상 교파가 다 모인 신세계에서 전도자들은 역마차 행렬을 쫓아 서쪽을 향해 나갔다. 이때 누구보다 열심을 낸 감리교 전도자들은 맨 앞장에 섰다. 새로 건설한 마을 한복판에 첫 교회 간판을 내건 신앙공동체는 대체로 감리교회였다. 그들의 삶은 위험과 언제나 동행하였다.
그런 개척 전도자들에게 늘 위기가 상존하였다. 1년에 한 번 모이는 감리교 연회(年會)에서 전도자들은 찰스 웨슬리 찬송 ‘생전에 우리가’(And Are We Yet Alive)를 부르며 용기를 내었다. 신앙공동체의 지속과 은혜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가사는 아주 결연하다. “생전에 우리가 또 다시 모였네. 예수의 보호하심을 다 찬송하리라.” 그들이 마주한 것은 싸움터 같은 세상이었다.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싸움터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런 비장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동네에도 너무 많은 크고 작은 교회들이 있고, 비슷한 패턴과 프로그램으로 교인 확보 경쟁을 일삼기 일쑤다. 한때 도시의 경우, 500미터 이내에 같은 교단 교회가 없으면 개척이 가능한 교회 부재 지역으로 인정받았다. 지금 그런 제한 규정은 시대착오적이 되었다.
구태의연한 개척 논리가 사라진 지금, 새로운 개척정신이 필요하다. ‘모로 가든 서울’이란 식으로, 어떻게 하든 성장과 규모만을 추구하던 논리는 용도 폐기되어야 한다. 교회는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탈바꿈해야 할 긴박한 이유가 생겼다. ‘가나안’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상은 수많은 교회 가운데서도 다닐만한 교회를 찾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황폐해진 신앙적 환경에서 다시 새로움을 추구할 명분이 생겨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맞춤형 신앙공동체를 구현할까? 한때 목회자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1985년 첫 개척 시절에는 교회가 앞장서서 마을 안팎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작은 시골교회는 자연스레 탁아소, 도서관, 상담소 역할을 맡았다. 결기 있게 ‘한 말씀’이라도 정의롭게 하는 사람으로 목사를 앞장 세웠다.
본부에서 일할 때 어느 평신도 임원이 분노를 터뜨렸다. “목사 중에 의인 열 명이 없어요.” 지금도 그 목소리가 쟁쟁하다. 남이 아닌 내 이야기로 귀담아 둔 탓일 것이다. 단 ‘열 명’의 부재로 오늘의 교회와 목회환경은 크게 위기를 맞은 것이 분명하다. ‘예수 없는 예수교회’라는 질타의 목소리가 드높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예외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그런 단말마에 주눅들만큼 순진하지 않다.
어느새 색동교회가 16년 생일을 맞는다. 25세와 50세, 두 차례 교회 개척에 참여하면서 깊이 느낀 일이 있다. 교회의 개척은 신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 어린 무경험자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연히 새내기의 개척정신은 높이 살 일이지만, 이미 경험을 쌓은 중견 목회자들이 개척 일선에 나서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우리 시대는 더 많은 형식의 파괴와 함께 형식의 창조가 필요하다.
어쩌면목회자로서 비교적 자유로운 의식을 갖게 된 것은 나이 탓이 아니더라. 목회 초년생부터 좋은 선배와 나쁜 세상을 통해 자유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세상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그런 어설픈 목회 요령 따위가 아니다. 평소 남의 시선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주제 넘음’과 씨름한 덕분이었다. 지금도 “불편한 내부인이 되라”(In side, outsider)는 충고는 여전히 금언(金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