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닮았구나
세월의 탓 이런가 인간의 속됨일가
언덕 아래 반 지하방 깨어진 유리 창문
가는이가 버린 담배 꽁초 오는이가 버린 휴지
유리 창문 사이에 소복히 쌓이었다
한때는 오순도순 웃음이 있던 이곳
주인은 어디가고 쓰레기만 쌓여가네
호호백발 노파가 지나가며 하는말
어찌면 그렇게도 내 모습 닮았구나
할머니 한분이 힘들게 언덕에 올라오드니 후휴 긴 한숨을 내쉬며 가지고 있든 작은 보따리를 내려놓고 신문지 한쪽을 꺼내 자리에 깔고는 털썩 주저 앉아 손수건을 찾아 이마의 땀을 씻는다
조그마한 체구에 힌머리로 보아 이미 고희가 훨씬 넘었을것 같고 가즈런히 다듬어 빗은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뒤에서 보니 영락없이 옛날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 역시 조그마한 체구에 가즈런히 빗은 머리에 비녀를 끼시였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니셨다
어쩌다 십여리길 시장을 가실때나 외가집을 가실때에는 어디서 그런힘이 나시는지 무명 치마에서 바람이 일었다
시장에 가거나 외가집에 가실때 어머니를 따라가려다가 여러번 고꾸라지기도 하였다
당시 검정고무신에 양말도 신지 않은채 맨발로 가노라면 발바닥에 땀이차서 미끄러지기가 일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뒤돌아 보지도 않으시고 미끄러지거나 쉬지도 않으시였다
저 할머니를 보자니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언덕아래 큰길가 사거리 코너에 빨강 기와집이 보인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낳고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에서 학교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뒷집총각과 눈이맞아 결혼을 했으며 이곳에서 두아들을 학교에 보내였다 정이 들대로 들었고 또한 한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언덕이 남편과의 만남이 있던 첫 장소였고 이 언덕에서 처음으로 뒷집 총각과 손가락을 걸었고 달밝은 밤에 처음으로 입맞춤하던 추억이 서려 있는곳이 바로 이언덕이다 생각하면 이 할머니에겐 이언덕이 영영 잊지못할 곳이다
오십여호의 집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이웃하면서 지낸 이곳에서 빨강 기와집은 유일하게도 없을것을 빼고는 무엇이든지 다 있는 하꼬방이자 백화점이였다
어린아이 사탕에서 아이들 연필이나 공책 그리고 가정주부들이 아침저녁으로 찾는 콩나물이나 두부 열무거리 담배나 막걸리 소주도 있고 전기다마나 세수비누 빨래비누는 물론 양말짝까지 있었다
이 할머니 남편은 워낙 기술도 좋은데다 이웃간에 사귐도 매끈하여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일들을 도맡다 시피했다
전기도 만저주고 수도꼭지도 갈아주고 담장도 처주고 울타리나 부뚜막일 까지도 손만가면 야므지게 해주면서도 어떤 공치사나 품값도 많이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집은 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않될 집이였다
세월이 흘러 큰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작은놈이 고등학교 다닐때 할머니의 남편이 갑자기 떠나갔다
실로 청천하늘에 날 벼락이였다 동네사람 모두는 아까운 사람이 떠났다며 하나같이 슬퍼하고 아쉬워 하였다
마냥 슬퍼할수만은 없어 눈물을 잊고 악착같이 두아이들에게 정을 부치고 살아왔다
얼마전 두아이 따라 이사하였다
애비 닮아서인지 훤칠하게 잘생긴 두아이가 훌륭히 자라 신들도 부러워 한다는 내노라하는 좋은직장에 다니면서 오랫동안 저희 두아들을 위하여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공기좋고 넓은곳에서 호강좀 하시라는것이다
궁궐같은 집에 널다란 텃밭도 있고 과일나무도 군데군데 서있는 별장같은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언덕이 그리웁고 저기 보이는 빨강기와집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날 빨강 기와집이 팔리고 뒷방으로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이사짐이라고는 조그마한 이부자리와 냄비 그리고 숫가락이 전부이고 철모르는 사내 두녀석의 손을잡고온것이다
-이거 모두 깨끗히 쓰던것인데 우린 숫가락 하나라도 다두고 그냥 갈테니 혹시 필요한것 있으면 찾아서 써요 -
-어르신 너무너무 감사함니다 쓰레기 하나라도 치우지 마시고 그냥 가세요 _
젊은 부부는 고맙다고 코가 땅에 닿도록 굽실거리드니 밖에나가 고기몇근을 싸들고 온다
_이거 저희들의 작은 성의이오니 적지만 맛있게 잡수세요_
두아이에게 지폐 한장씩 나누어 주고는 내미는 고기를 한사코 거절하고 나왔다
이사하면서 숫가락 하나까지도 두고 가자는 아이들의 말을 따라주었다
홀로 계시는 어머니께서 혹시나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잊어버리시도록 하자는 자식들만의 배려였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두 부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 손을 흔들며 나오자니 울컥하는 마음이든다
요지음 젊은것들 치고는 반듯하게 살아온것 같다
지저분하니 모두모두 치우고 가라고 할터인데 쓰레기까지도 고맙다고 허리숙여 인사하는 그들이다
제발이지 잘 살아주었으면 더 무엇을 바랄가
언덕아래를 바라보니 여기저기 폭탄을 맞은듯 어수선하기 그지 없다
여기도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모두 떠나가고 온동네는 폭풍이 불고 수마가 할킨듯 볼상사납다
진즉이 와서 젊은이들이 사는것이나 볼걸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할머니가 살던 빨강기와집도 예외가 아니다
오는이가 버린 담베꽁초 가는이가 버린 휴지조각들이 깨어진 창문틈에 소복히 쌓이였다
깨진 창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먼지를 뒤집어쓴 시집올때 작만한 농이 부서진채 빠끔히 드러나 보인다
알뜰하던 젊은 부부는 아마도 저걸 가지고 가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웠을가
아마도 작은 방하나로 이사하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저걸 들고 가지 못하였을지 모른다
한번 보고싶다 올망졸망한 어린것들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가 어른 거린다
- 어두어 오는데 할머니 무얼하세요 - 뒤돌아보니 늙수구레한 영감이 서있다
어느새 석양이 발아래 내려와 있거늘 할머니는 이생각 저생각에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
- 이거하나 드실래요 - 할아버지가 초크렛 한개를 내민다
아무말 없이 받아 입안에 넣는다
-나 이동네서 복덕방하든 김서방이외다 _ 묻지않는말을 꺼내며 친구하자고 옆에 털썩 주저 앉는다
나이또래로 보아 할머니의 죽은 영감의 나이와 비슷할것같아 말을 받아준다
- 즈그들이야 에미없는 애비를 위한다고 하지만 어디 늙은 할망구가 해주는 밥만 하나요 -
-그렇죠 영감밥은 누어서 먹어도 체하지 않는대 잖아요
늙으면 사랑이 그리운게 아니고 사람이 그리웁고 같이 대화할 사람이 그리웁다
어느새 어둠이 내린 언덕에는 두늙은이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살다보니 돈많고 잘난사람이나 많이 배운사람보다 마음이 편한사람이 좋아요-
-아무럼요 돈 많고 잘나고 많이 배운게 다가 아니죠 있는 그대로 사람 소박한게 제일이죠 -
- 살아오는동안 사람 귀한줄 알고 남의탓 하지않고 내탓으로 여기는 사람이 별로없죠 -
-그래요 마음의 빚을 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흔하지 않아요 -
어느새 밤하늘에서 별들이 나타나건만 저녁도 잊은채 두노인의 대화는 식을줄을 모른다
같이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 하고 이야기를 들어줄사람이 없는것이 노인에게는 가장 힘든것이다
어쩌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자리가 있어 앉을라치면 젊은이들은 슬며시 자리를 피해버린다
아니 늙은이가 있으면 자리가 있어도 옆에 오지도 않는다
이래서 노인은 외모를 단정히 하고 입을 닫으라고 하지만 늙으면 입이 궁금한 것이다
이래저래 늙으면 서러운것을 너희들도 언젠가는 이해할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