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만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송모씨(69·남)는 얼마 전 독감백신 공급을 시작한다는 공고가 떨어지자마자 보건소에 달려가 접종을 했다. 남보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폐기능이 약해 독감에 걸리면 폐렴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사스와 조류독감 등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곧이어 푸젠 A형 독감마저 맹위를 떨치면서 보건소마다 독감 예방주사 백신이 품절되는 바람에 한동안 백신이 재공급되기를 조바심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송씨는 “이런저런 질병들로 세상이 어수선하다보니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예년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건소에 가면 거의 예방접종을 받는 사람이 없었는데, 올해는 일찍부터 서둘렀는데도 한 시간 이상 기다린 후에야 접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세계적인 백신 제조업체인 ‘카이론’사의 리버풀 공장이 영국 보건당국으로부터 가동 중단 명령을 받아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인 독감백신 부족사태가 예상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감치 독감백신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독감=심한 감기’라고 생각 말아야
흔히 독감을 ‘심한 감기’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일반감기와는 다르다.
감기에 걸리면 주로 코와 목이 따끔거리면서 아픈 반면, 독감은 전신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1~3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갑자기 38도가 넘는 고열에 온몸이 떨리고 힘이 빠지며 두통, 근육통 등이 심하게 나타나고 눈이 시리고 아프기도 하다. 합병증으로 폐렴 등이 발생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도 감기와는 다르다.
독감은 대개 매년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유행하는데, 독감 백신을 맞으면 약 2주 뒤에 항체가 생기기 시작하므로 가을철인 요즈음이 적기이며 늦어도 11월 중순까지는 시행되어야 한다. 접종 후에 생성되는 항체의 예방 효과는 약 6개월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접종하여 가을, 겨울, 초봄에 유행하는 독감을 예방해야 한다. 해마다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가 다르기 때문에 그 해에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의 종류를 미리 예측하여 제조한 독감 백신을 매년 이맘때 한번씩 다시 접종을 해주어야 한다. 독감 백신은 계란에서 균을 배양해 만들기 때문에 계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의사와 상의해 접종 여부를 결정해야한다. 또 생후 6개월 이하인 아기는 접종 효과가 미미한 대신 부작용으로 발열이 흔하므로 접종받지 않는 게 낫다. 임산부는 임신 4주 뒤부터 맞을 수 있다.
#노약자는 필히 예방접종 해두어야
독감 예방접종은 일차적으로 독감으로 인한 입원 및 사망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백신은 노인층의 독감예방에 50~60% 정도 효과가 있으며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은 1차 접종대상이 된다. 또한 나이에 관계없이 만성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접종을 해야 한다. 의료인, 요양원 근무자, 중요한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접종의 대상이 된다.
건강한 사람은 독감으로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반드시 맞을 필요는 없다. 물론 독감에 걸려 발생되는 경제적 손실보다 예방접종비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접종을 해두는 것이 비용면에서 경제적이다.
백신의 예방효과는 나이, 피접종자의 면역기능에 따라 다르고 그 해에 유행한 인플루엔자 종과 예방 접종한 인플루엔자가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을지대학병원 호흡기내과 한민수 교수는 “독감예방접종을 하더라도 독감이 100% 예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교수는 “일반적으로 백신은 70~90%의 예방효과가 있으며 노인이나 만성질환자의 경우에는 효과가 약간 떨어진다”며 “따라서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도 독감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개인위생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흔히 독감예방접종을 하면 발열, 오한, 근육통 등 독감에 걸렸을 때와 유사한 증상의 부작용을 앓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 나오는 독감예방주사는 이 같은 전신적인 부작용이 거의 없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국소적이고 일시적이어서 1~2일 이내에 사라진다.
평상시 건강하던 사람도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저하되면 적은 양의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독감에 걸릴 수 있다. 따라서 평상시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방법으로는 과음, 과로를 피하고 규칙적인 식사, 적당한 운동, 휴식 등을 취해주는 것이다. 독감은 전염이 매우 잘 되는 질환이므로 어린이나 노약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다.
한교수는 “독감이 이미 유행하고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 개인위생이 중요하므로 아침, 저녁, 외출 후 돌아오면 반드시 양치질을 하고 자주 손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물학적 테러 후의 뉴스처럼 들리지만 1918년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이 남긴 실제 상황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하여 발생하는 유행성 열성 호흡기질환이다. 이 병을 일으키는 독감바이러스는 크게 A형과 B형으로 나뉘며 각 형마다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독감은 약 10~40년 주기의 전세계적인 대유행과 그 중간에 2~3년 주기의 소유행이 있다. 20세기 들어서는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경우가 4차례 있었는데 1918년 스페인, 1957년 아시아, 1968년 홍콩에서 발생한 독감은 전세계로 퍼져 각각 2천5백만명, 1백만명, 70만명을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에 발생한 푸젠A형 독감도 북미와 유럽지역을 강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번지지않을까 우려를 자아냈지만 다행히 더 큰 피해없이 물러갔다.
독감은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에 일반 감기나 폐렴처럼 항생제 치료를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대신 항(抗)바이러스 제제를 사용하는데, 증상 발생 뒤 48시간 내에 투여하면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몸에 열이 나는 것은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는데 필요한 생리현상이므로 극심한 경우가 아니면 해열제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독감 증상이 있는 아이에게는 아무리 열이 나더라도 전문의의 자문없이 아스피린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일부에서 ‘라이씨 증후군’이라는 간부전증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감에 시달리다가 기관지 손상을 입고 2차 세균감염이 일어나 ‘세균성 폐렴’에 걸릴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회복될 즈음에 다시 열이 나고 기침, 누런 가래가 생기면 2차 감염에 의한 폐렴을 의심하여 반드시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을지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조용선 교수는 “어린이의 경우에는 합병증으로 부비동염과 중이염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노인과 만성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서 중대한 합병증의 발생 위험이 크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