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가락에도 쟁쟁한 청양 七甲山(561m)을
무조건 山이 좋아 부부가 함께 10년도 훨씬 前인 2004년 봄에 다녀오기는 한 것 같은데
가물가물 뭔가 하나라도 어렴풋이 떠올라야 하는데도 도통 떠오르는 게 없으니~~~
그런데도 그보다 더 훨씬 前인 1990년경 아와지시마(淡路島) 신조감독시절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1995년 진도 7.2의 강진으로 숱한 희생자가 발생한
바로 고베(神戶) 지진의 진앙지이기도 한 아와지시마를 찾아와
고베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켜선 로코산(六甲山- 931.3m)을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
숭어낚시를 한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우리의 뇌세포도 엿장수 마음대로 갈팡질팡 지 쪼대로 우쭐대는 꼴이 가끔은 우습기도 하다.
七甲이란 山 이름의 유래를 먼저 따져본다.
칠갑산은 원래 七岳山으로 岳이 들어가는 山이 늘 그러하듯
그냥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山으로
그 옛날 삼국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던 칠악산(漆岳山)은
漆를 七로 쉽게 바꾸어 천지만물이 생성한다는 일곱七의 의미를 담고
천체 운행의 원리가 된다는 六十甲子의 으뜸인 甲을 덧붙여
七甲山이 되었다는 說이 가장 유력하게 전해오고 있는가 보다.
어찌되었건 武庫山(むこうの山: 저쪽의 산)에서 유래를 찾는 일본의 六甲도 가보았고
대한민국의 七甲도 찾아가 청승을 떨어보았으니,
언젠가는 하고 벼르다가 이름 따라 오갑산의 모습도 챙겨보자고 나선 길인데
산책로도 그만이고 山行 역시나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는 안성맞춤의 코스가 반겨준다.
그냥 五甲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오갑산이
전해오는 기록상으로는 부근에 오갑(烏甲)마을이 있어 까마귀 烏를 쓴 烏甲山도 보아고
삼국시대에는 까마귀 烏와 오리 鴨으로 나타낸 오압산(烏鴨山)이라는 이름도 보이는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장군이 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서 이곳에 진을 친 이후로
그 정상을 이진봉이라 부르고 있고 정상 표지석도 이진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왕대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즉, 병자호란 때 오랑캐의 대장 파오짜(乙五甲/巴五甲)가
전리품(?)으로 이 마을의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한씨 부인을 겁탈하려하였으나
파초선을 든 처녀의 도움으로 파오짜는 화살에 맞아 죽게 되니
그 고개가 바로 五甲고개가 되고 그가 묻힌 산은 五甲山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런데도 언제부터 다섯 五 대신에 벽오동나무 梧로 바꾸어서
왜 梧甲山이 되었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래 아무려면 어떤가? 오늘 하루 알차게 보내며 되는 것을 ~~~
동서울 출발이 30분 빠르게 순조롭더니
연결되는 여주 37번 시내버스도 바로 이어지고
45분을 예상한 시간도 기사양반의 과욕(?)으로 15분이나 단축되어
이래저래 산행기점인 원부저수지까지 도보로 투자할 시간을 톡톡히 번 셈이다.
하지만, 명판이 도망간 덕평교에서 삼평길을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잡다가
이내 눈치를 채고 오던 방향을 거슬러 청미천을 따라 덕평3거리로 향하는데
먼빛으로 보이는 오갑산이 자욱한 안개로 흐릿해도 자태를 들어내며 손짓을 한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다리마다 명판이 없어 고개를 갸웃했는데
한창 고물가격이 치솟던 시절 학교 교문이고 문패고 가릴 것 없이
돈이 된다하면 목숨까지 내걸고 전깃줄까지 끊어간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아하 하고 만다.
<뇌곡교에서 바라본 청미천 하류방면>
1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성주로를 따라 지루한 아스팔트길을 걷자니 조금은 따분해질 무렵
저 멀리 원부저수지 뚝방이 나타난다.
이래저래 따져도 1시간쯤 먼저 온 셈이라 괜히 늑장을 부리며 어우실길을 따라 원부저수지로 향하는데
오갑산 등산안내도 앞에 어느새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村老(?)의 친절이 너무 길어진다.
<어우실길을 따라>
<친절한 산행안내>
<오갑산 & 원부저수지>
오갑산 솔밭 능선을 따라 가는 등산로가 그 흔한 계단이 아예 없어 너무 폭신해서 좋다.
높이로야 159m에 불과한 두둠이산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 생긴 모양 때문이라 유추되지만
숲속에 갇히는 눈높이로는 아무리 나지막한(?) 언덕이라도
그 모양새를 어림할 수 없어 답답함을 품은 채 능선길을 이어가다.
360m의 노루목에서 밥상을 차리고 지친 다리에 힘을 다시 실어준다.
<두둠이산 - 159m>
<점심자리 한 번 그럴싸 하네>
파오짜가 죽어서 오갑고개라는데
혹시 너무 직설적으로 갖다 붙여 五死고개로 바뀌었나를 따져보며 오사고개(429m)를 지나고
마침내 제1헬기장에서 다시 숨을 몰아쉬면 주위를 살피다가
제2헬기장(완장봉-555.8m)을 지나
제3헬기장에서 고사리의 흔적을 둘러보며 국수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수봉 이정표의 높이(594m)와 삼각점의 높이(609.4m)가 다름은
이진봉(609.4m)에 가서야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지만
등산안내도와 이정표는 모두 이진봉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왜 굳이 오갑산 정상석엔 임진봉(?)으로 장난기를 부렸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데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이정표에 진터라고만 안내를 하니
잡초만이 무성한 그곳이 이여송 장군이 머문 진터(567m)이려니 짐작만 할 뿐이다.
<오사고개 - 429m>
<제2헬기장 - 완장봉 555.8m>
<오갑산 국수봉 - 594m>
<이여송 장군이 머물렀다는 진터는 잡초만이 무성하고>
<오갑산 능선길을 따라>
<정말 자리 한번 잘 잡았소 - 이진봉>
잠시 한눈을 팔다 무심코 던진 담뱃불이 화근이 된 화마의 현장이
죽어 천년을 노래한 태백산 주목의 잔해를 보는 듯 하여 끓어오르던 속내를 가만히 깔아 앉히며
삼형제바위에서 눈길을 돌려 툭 터인 사방을 둘러보다
높게만 보이는 옥녀봉(499m)을 먼빛으로만 바라보기로 하고 골짜기 샛길로 빠져들어
한참을 내려오니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쟁쟁하여 어우실이 되었다는 마을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는 어우재 미술관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쪽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며 1시간 이내 이진봉에 다다르는 바로 최단코스 등산로의 들머리다.
<삼형제바위 지능선>
<3형제바위와 옥녀봉>
<형제가 몇인가?>
<어우재미술관 & 오갑산>
<알찬 하루를 마무리 하며 - 장터교>
오갑산 들머리와 날머리가 보기 좋은 친절로 시작하여 아름다운 마무리로 매듭지으며
오늘도 알찬 시간들로 이어진 하루를 고마워하며 19Km 가까운 걸음걸이를 잠시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