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스승 김병권 선생님께
선생님, 어이 눈을 감으셨습니까?
오늘 미처 예상치 못한 시각에 선생님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기다리시던 미국의 손자 손녀도 못 보셨다면서요, 일주일 말미도 안 주고 그리 저승사자가 재촉하던가요.
그러나 애지중지하시던 따님과 사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시며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선생님과 저의 인연은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두 번도 더 훌쩍 넘어서서 마음으로 부모님처럼 의지하였는데
이제 끈이 떨어졌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지난해 여름 6월 23일 제가 용산국립박물관 전시회를 관람한 후에 서빙고동 선생님 자택으로 찾아 뵈올 때는
얼마나 신수가 좋으셨습니까?
아니 두 달 전 한국수필 문학상 2022 시상식과 송년회가 있던 12월 2일 공로상을 수상하시고 수상소감을
말씀하실 때도 얼마나 정확하고 유려한 언어구사로 감동을 주시며 노익장을 과시하셨나요.
제가 2000년부터 용산문화원에서 선생님께 처음 수필을 배우고 2003년에 한국수필로 등단,
그리고 2009년에 첫 수필집 『인생의 등불』을 내놓고 얼마나 감개무량해했던가요.
이제 14년 만에 제2 수필집 『노을꽃』을 내놓고 제일 먼저 선생님께 소포로 부쳐드렸습니다.
그리고 2월 1일 전화를 드리니 건강 악화가 분명한 전화음성이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 따로 전화를 드리니 선생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 말씀과
저의 수필집을 열심히 읽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월 3일에 자택으로 방문해 보니 선교사일로 터키에 계시던 따님이 오셔서
노쇠하신 사모님과 함께 수발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거실에서 선생님은 괴로운 모습으로 저의 수필집 『노을꽃』을 읽고 계셨었지요.
두 다리가 말갛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식사도 잘못하신다고 해서
걱정은 했지만 이리 빨리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정은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늦게나마 문학에 입문하여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스승님의 큰 은혜에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영국신사와 요조숙녀로 만나 뭇사람들의 본보기로 사시는 스승님과 사모님을
누군들 존경하고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인간수명 백수시대에 아쉽게도 이제는 하늘이 샘이 나서 막무가내로 갈라놓는 모양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하늘의 심사를 누가 이기겠습니까?
선생님, 사모님 그동안의 행복보따리 잘 간직하셨다가 다시 하늘나라에서 함께 펼치시고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누구나 가야 할 새 세상에서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 뵙기를 염원하면서
선생님을 먼저 보내드립니다.
선생님 하늘나라 안락한 곳에서 편히 영생을 누리소서
2023년 2월 13일 소정 민문자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