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권영해
독보적獨步的·5 외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나무늘보의 거취에 대해
지나친 편견은 무망하다
속 터지는 그의 행보에는
독특한 ‘전략’이 장착되어 있다
나무의 관상동맥을 그러안은 시간은
급행의 세상살이에 대한 성토,
자기성찰의 시간을 확보하고
내일에 대처하는
처세의 로드맵을 제시한다
질주하기 전
성장판을 무한정 열고
나무멍에 탐닉한 그의 출구전략에는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알고 보면 나무늘步는
답보踏步에 심취한 것이 아니다
분통도, 조급함도 가벼이 던져두고
세상과 교신하는 슬로우 라이프
오래도록 세습된
몸서리쳐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
속 터지게 느긋한 그의
‘마음가짐’에 있다
그는
내적으로 진보進步하고 있는 중이다
----------------------------------------
봄은 경력사원·19
혁명이 이리도 신선한가
올해도 어김없이
공약을 남발하는 봄이 도착했다
꽃눈이,
들끓어 오르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어
목 놓아 가슴을 터뜨려 버렸다
샅샅이 불태웠다
동백은
동시다발로 봉기하는 대자보大字報
비겁과 만용이 충돌하는 사춘기가
구석구석 방방곡곡
싱숭생숭 피어난다
온통 청춘으로 흠뻑 젖어
갱년기라곤 없는 넉살 좋은 놈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위태위태한 봄이
오기도 전에
또
가고 말 것이다
치고 빠지기가 미덕인
이즈음에는
억지만이 살길이다
--------------------------------
권영해
경북 예천 출생. 1997년 《현대시문학》 등단. 시집 『유월에 대파꽃을 따다』, 『봄은 경력사원』,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 대한민국 예술문화공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