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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기도 하면...
글 : 조지 뮬러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답답했던 삶에 환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집니다.
꼬였던 것들이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덧 함정의 지뢰밭도
무사히 지나갔음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면 감추었던 내 미래와 축복들이 나타납니다.
기도하면 내 인생을 향한 크고 놀라운 계획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 천사의 손길이 돕습니다.
기도하면 누군가 나를 위해 움직입니다.
둘이서 기도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마음을 합해서 기도하면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와 교회의 모든 단체들이,
절망하고 무너져가는 가정들이 방황하는 자녀들이,
자포자기하고 빛을 잃어가는 소외된 이들이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작아지고 자유케 되며 용서의 힘이 생깁니다.
기도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넓어집니다.
기도로 얻는 유익들은 아무리 말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소홀히 합니다.
기도는 나를 더 깊은 은혜의 사람 더 놀라운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빈곤이 있을 뿐이다. 기도의 빈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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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예수성심의 영성과 공경(恭敬), 위로(慰勞)’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 군사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골고타 산에서 임종하신 후, 어떻게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는가를 증언해주는 요한복음의 말씀입니다. 당신의 가슴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심, 수난, 죽음, 성체성사를 통해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1) 예수성심 공경의 의미, 목적
교회의 전통 안에서 교부들은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요한 19,34)은 우리의 인간과 세상을 살리는 구원의 생수(生水)로 보았는데, 이 예수님의 마음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으로 본 것입니다. 마치도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탄생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새 하와인 교회가 탄생했다고 보아왔습니다.
예수성심 공경은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의 삶과 생명을 내어주신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가슴의 피와 물을 쏟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리 자신들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뜻을 우리의 믿음, 소망, 신뢰, 충성, 사랑으로 따를 수 있을 때, 또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을 입게 되지요 ...
우리는 예수성심공경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끝없는 사랑, 십자가의 사랑, 구원의 사랑에 응답하면서 사랑의 기도, 희생, 보속, 실천 등으로 살고 보답하고자 하려는 것입니다.
2) 예수성심 공경의 역사적 배경, 유래
신약에서, 특히 요한복음(7,37-39. 19,33-37)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구원의 생명수가 계속하여 온 세상으로 흘러내릴 것을 약속합니다.
교부들, 특히 히뽈리뚜스, 이레네우스, 유스티누스, 치쁘리아누스 등은 예수의 마음에서 흘러내리는 세상을 위한 구원의 생명수를, 성령과 함께 예수성심을 초자연적은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도 아담의 늑방 옆구리에서 하와인 이브가 나올 수 있었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늑방 옆구리에서 교회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중세기에는 예수의 심장(마음)을 은총의 샘으로 보는 교부들의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경대상으로 삼는 경향으로 커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널리 보급하게 된 것은, 프랑스 방문회의 수녀인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내리신 예수성심의 메시지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말가리다 수녀에게 1673년부터 1675년까지 만2년 동안 70회나 발현하시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1) 예수성심은 무한한 사랑의 원천이며 모든 이가 사랑으로 동화되기를 바라신다.
(2) 예수성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또한 인간의 보답하는 사랑을 바라고 갈망하신다.
(3) 세상의 죄와 악을 배상(賠償)하는 탁월한 방법으로 영성체와 성시간을 바치어라.
(4) 성체성혈대축일 후 다음 금요일을 예수성심대축일로 제정하고, 성시간과 영성체를 하라.
드디어 1856년에 교황 비오9세는 예수성심축일을 정하였고, 1899년 교황 레오13세는 전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할 것을 선포했으며, 그 후 비오10세는 해마다 예수성심께의 봉헌을 갱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1888년 제7대 조선 교구장 블랑백주교에 의하여, 한국교회를 예수성심께 봉헌합니다. 한편,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 수녀에게 1675년 6월 16일에서 20일 사이에 발현하신 네 번째 내용에 따라서, 교회는 성체성혈 후 다음 금요일은 예수성심대축일로 정하였는데, 이는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후, 예수성심대축일을 교회축일로 설정한지 만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56년에 비오12세는, 예수성심공경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회칙인 “물을 퍼낼 지어다” 를 반포하면서 예수성심공경은 더욱 권장되어 갔습니다.
3) 예수성심의 메시지
“나는 사랑이다. 내 성심은 그침 없이 타는 불을 제어하지 못한다. 나는 영혼을 위하여 살고 영혼을 사랑한다.” (예수성심의 메시지)
위의 메시지는 예수께서 친히 요세파 수녀에게 들려주신 말씀인데, 그녀는 스페인인으로서 예수성심회에 들어가 수덕(修德)하고 공로를 쌓다가 3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요세파 수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예수 성심께서는 당신의 극히 겸손한 종 요세파 수녀에게 은총으로 감오(感悟)시켜 주신 예수성심 메시지의 이 책을 펴내 널리 알리게 된 것을 기뻐하실 줄로 의심치 않습니다. 이 책이 많은 영혼에게 유익을 주고, 누구나 가련한 죄인인 우리 모든 이가 천주성심인 예수성심께 신뢰를 더욱 가지게 될 것입니다.”
4) 예수성심께 공경과 위로인 성시간, 영성체 등의 신심행사
1674년 7월 2일(?)의 발현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말가리다 성녀에게 살아 움직이는 당신의 예수성심을 보이시면서 보속의 방법으로 자주 영성체(특히 매달 첫 금요일)하고 성시간의 기도를 바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첫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내가 겪은 극심한 슬픔에 (성목요일) 너를 참여시키겠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나와서, 성부의 의노(義怒)를 풀어드리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보속하며 성시간을 가져라.”
예수께서는 게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수난을 목전(目前)에 두시고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간절하게 말씀하시었습니다. ‘기도할 것을, 기도해 줄 것을, 그분과 함께, 그리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해 줄 것을...’ “나와함께 단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마태 26,4)”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마르 14,38)”
5) 예수성심의 영성과 그 실천을 위하여
예수성심은 마리아 말가리다 알라콕에게 발현하시어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 마음은 위로해다오. 세상의 죄와 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내 마음을 위로해 다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예수성심 영성을 실천하고, 또한 공경하며 위로드릴 수 있을 것인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기로 합니다.
(1) 첫 금요일에는 꼭 미사하고 영성체하기
(2) 성시간 참례 (가능한 첫 목요일은 꼭 ...)
(3) 예수성심의 상을 특별히 공경하기
(4) 미사와 성무일도가 따르는 축일 지키기
(5) 개인, 가정, 본당, 공동체, 국가 등을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행사 참례
(6) 가능하다면 자주 아침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하면서 하루를 예수성심께 봉헌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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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형제회 초창기 회고사 >
“복음전파를 위해 달릴 길을 다 달렸다” - 제 4 부 -
서울 이문동 일반팀 FㆍB
팀 봉사자 : 박 팜필로(원석)
< 성서형제회(F.B) 단체 명(名) 변경에 관하여... >
* 1970. 5. 17(성령강림 대축일) : 성서 동지회 B.F (Bible Fellowship) 단체명으로 창립함.
* 1980년대(?) : 성서동지회(B.F), 동지회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 은 맞는 말이나 세상적인 의미에 가깝다 하여 성서형제회로 명칭 변경함.
* 1992. 12. 6 : 에콰도르 과야길대교구 후안 라레아올긴 과야길 대교구장에 의하여 정식 인준함. (단체명을 영문에서 스페인어로 변경 : Bible Fellowship ---> Fraternidad Biblica 플라때르니닷 비블리카)
* 2009. 6. 17 : 성서형제회(F.B) 전주교구 이병호 빈첸시오 전주교구장에 의하여 한국 교회 안에 성서형제회를 평신도단체로 인준되며, 초대지도신부로 윤양호 신부님을 임명함.
< 성서 형제회 인준에 대하여... >
교회법상으로 교회에 평신도단체가 성립되려면 교구장이신 주교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에 최규업(바오로 마리아) 신부님께서는 맨 처음 성서형제회가 시작된 광주대교구 교구장이신 윤공희대주교님께 허락을 받으라 하셨으므로 인준서류를 준비하여 수원에서 광주교구청까지 10여 차례 방문하여 면담한 결과, 주교님께선 시대적으로 교회 안에 꼭 필요한 모임이라고 하셨으나, 사제평의회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지금도 떠올리면 행복한 순간으로 자리한 것은 1988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수원 엠마우스 제과점(레스토랑과 함께 직접 운영)에서 대형 케익(지름 1미터 5단)을 싣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을 달려 간 일입니다. 광주대교구에서 인준이 어렵게 되자, “그러면 팜필로! 팀이 활발하게 활성화 되고 있는 수원교구에서 인준 준비를 해보라...” 하시며, 에콰도르 선교지(빈민사목)에서 한국에 나오시면 당시 외방선교 담당주교님이신 수원교구 교구장 김남수 주교님을 뵈려 갈 때 꼭 동행하여 눈도장을 찍게 하셨으므로 자연스럽게 주교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어 수원교구에 성서형제회 팀이 10개가 넘었으므로 주교님께 교구 지도신부님을 부탁드렸다. 저는 개인적으로 ooo 신부님을 염두에 두고 “조원동 성당에서는 ooo 신부님께서 지도해주고 계신다.” 고 말씀드렸더니, 주교님께선 손시래를 치시며 “그 친구는 박력이 부족해서 안 되고, 사목국장 조원규(야고보) 신부님께 부탁해보라.” 하셔서 “주교님, 사목국장 신부님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십니다.” 하였더니, 주교님께선 “껄껄걸...” 웃으시며 “바쁜 목수가 유능한 목수이며, 바쁜 목수에게 일을 부탁 할 땐 잠시 쉴 때 하면 되는 거야. 쇠뿔도 당김에 빼듯이 내일 오전에 사목국장 조원규 신부님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수원교구 사목국장 조원규 신부님을 뵈었더니, 신부님께선 ‘주교님이 성서형제회 지도를 말씀하셨다.’ 며 첫 말씀이 성서형제회 활성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성서형제회를 활성화시키려면 수원교구 각 본당이 성서형제회가 중심이 되는 사목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교구 주보가 나갈 때(당시 75개 본당으로 기억) 간지 한 장에 성서형제회가 어떤 모임인지 알리고, 교구교육원 강당에서 제1회 성서생활화세미나(1986.11.22.)를 개최하는데, 교재는 바티칸공의회문헌 중 성서생활화 부분을 책자로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본부에 의연금을 보내온 시절이 아니었기에 재정 상태는 바닥이었으나, “하느님, 하느님의 집을 내열정이 나를 불사르이다”(시편69.9) 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수원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님과 수원교구사목국장이시며 성서형제회 지도신부이신 조원규(야고보)신부님께서 마치 불도저처럼 힘있게 밀어주실 때였으므로 엠마우스 레스토랑에서 얻어진 재화로 감당하는데 은혜가 충만하였으며, 누구라도 봉사자였다면 그랬을거라 믿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지도와 도움을 주신 신부님들이 계신가 하면 성서형제회 창립자이신 최규업(바오로 마리아 / 現 남미에콰도르 선교, 은퇴)신부님이 개신교에서 개종하셨다는 것 때문에 의심하는 분들도 계셔서 주교님, 아침저녁(식사 후 산책시간) 으로 시간될 때 뵈며 인준을 득하고자 노력하였으나, 하느님의 뜻은 전혀 다른 남미 에콰도르 과야길 대교구장 후안 라레아 올긴 대주교님에 의하여 1992년12월8일 성서형제회가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 매우 적합하다고 평가되어 인준된다.
< 에콰도르 성서형제회 인준서류 사본 >
한국 천주교 안에서의 인준은 수원교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 이원규 시메온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003년 4월 성서형제회를 수원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 재신청하여 통과시키고, 여세를 몰아 5월에 수원교구 사제평의회에 등록신청 하였으나, 심사에서 부결되었습니다.
황미자(크레센시아) 자매가 전국조정 말씀선포자로 봉사할 때, 전주교구 교구장 이병호(빈첸시오) 주교님에 의하여 2009년 6월 17일 신자단체로 인정받게 됩니다...
- 2018년 7월호에 제5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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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18. 6. 3
마르코 14, 12~16. 22~26
♠ 복음 공부 : 예수님의 최후만찬
- 최후만찬 기록은 신약성경에서 네 차례 나온다. (마르14,22-25 : 마태26,26-29 : 루카22,15-20 : 1코린11,23-26) 이 가운데서 마태오는 마르코를 베꼈다. 루카의 기록은 마르코와 코린토1서의 최후만찬 기록들을 혼합한 것이기에 구전과정으로 소급하면 마르코와 코린토1서의 두 가지 이야기만 교우들의 입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드신 만찬의 진행과 의도를 어느 정도 밝힐 수 있다.
* 12~16절 : 언제, 어디서?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해방절(니산 15일) 전날이며(니산14일 무교절의 첫 날), 또한 그 날은 안식일 전날이기도 하다. 유대교 달력에서 해방절과 안식일이 겹치는 날을 찾아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때 최후만찬을 드셨고, 4월 7일 금요일에 처형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드실 파스카 만찬을 손수 세심하고 은밀하게 준비하셨던 지시대로 예루살렘 시내의 남서쪽 “큰 이층방”에서 식사를 드셨다. 역사적으로 위치는 불명확하며, 14세기에 프란치스코 수사들이 지은 작은 고딕식 경당이 시온 산 위에 있지만, 역사적 신빙성이 없다. 반면에 자신을 배반할 제자가 한자리에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함께 하신다.(주일 복음에는 빠져 있음)
* 22~26절 : ① 만찬절차- 유대인들이 회식할 때 주인 또는 주빈이 일어서서 양손에 빵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양기도를 드린 다음, 회식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정식 식사가 끝날 즈음, 주인이 일어서서 큰 잔에 포도주를 담아 잔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양가도(감사)를 드린 후 돌려가며 마시는 이런 절차를 예수님도 따랐다
② 빵과 포도주의 의미 -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그리스어로 되어 있으나, 예수님의 모국어인 아람어로는 “내 몸”, 즉 나의 육신만이 아닌 나의 전부를 뜻으로 “이 빵은 나” 빵을 주면서 내 몸이 으스러져 내 목숨을 여러분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준다고 바친다고 하신다. 포도주 역시 “이는 내 피다.” 이 역시 혈액만을 뜻하지 않고 나의 전부를 가리킨다. 즉 새빨간 포도주를 보시고 엄청난 피를 쏟으며 처형되실 것을 예감하셨고, 하느님과 온 인류에 당신의 죽음이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는 구원행위가 되리라고 확신하셨다.
♠ 복음 요약 : 서기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예루살렘 시내 어느 큰 이 층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몸이 찢기고 피를 쏟으시며 돌아가실 것을 예감하시고 지상에서 마지막 파스카 식사를 하셨다. 이를 ‘최후만찬’이라 한다.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 최후만찬을 매주 한차례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회상하면서 최후만찬 식사범절을 지켰는데, 이것이 ‘미사의 기원’이다. 이 식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식사, 우선 식사는 몸과 피가 되는 생명체를 유지하고 멈췄을 때는 죽음이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급급하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몫인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내어주며 ‘내 몸과 내 피’ 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내 몸과 피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부이듯 당신 몫으로 받은 음식 전부를 나누어주는 것과 같이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주는 아낌없는 사랑, 희생으로 완성되는 사랑으로 다가온다. 한편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제자가 배반하고 도망칠 것을 아시면서 예수님은 늘 그렇듯이 식사하는 장면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밥 먹 듯 하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큰 의미를 들려주고 계신 듯하다.
♠ 대화 방향 :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말씀을 들으면서 미사를 통해 나 누어지는 빵과 포도주는 나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 참고 문헌 : ▪ 정양모 신부님 강의록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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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일
2018. 6. 10
마르코 3, 20~35
♠ 복음 공부
- 예수님, 당신의 참된 가족을 밝히시다...
* 20~21절 : 예수님의 친척-예수님과 친척들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20-21절과 31-35절에 따로 나와 있으나, 본디는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상황 서술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맺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는 처지에서 나자렛에서 온 예수님의 친척들이 몰려와 그를 데려가려고 한다. “예수님이 미쳤다고 한다.” 신비 속에 들었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여태껏 밖에 있는 전형적인 사람들의 태도다. 이들은 예수님처럼 정신 나갔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으로 인해 친족 전체가 수치스러울까 두려웠다.
* 22~30절 :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이들은 유다교의 최고기관인 산해드린에 참여하여 재판 과정에서 죄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율법조문을 찾아 판결장을 가지고 가파르나움에 도착하여, 예수님께서 이교도들의 잡신인 베엘제불이나 마귀의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낸다고 고발하였다. 하느님을 따르는 율법학자들은 그분을 마귀의 패거리로 본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들어 논박하신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쫒아낼 수 있느냐? ” 어느 집단이든 분열되면 망하게 된다는 상식을 제기하면서 그들 허구의 논리성을 폭로하신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 힘 센자(사탄)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어가려면 그 주인보다 더 힘센 자라야 한다. 당신이 사탄보다 더 힘세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계시며, 성령에게서 권능을 받아 사탄을 제압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인간이 어떤 죄를 짓더라도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성령을 모독한 죄’는 하느님의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위를 두고 말한 것이다. 선한 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영적 질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에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회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주고 싶은 용서를 결코 받지 못한다.
* 31~35절 : 예수님의 가족-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도착하지만 집 밖에 있다. 집 안에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아마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자들) 몰려와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이 찾아온 계기로 가르침을 주신다. 즉 혈연관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과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강조하시며, 당신이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바를 자신도 행하고 있음을 보여주신 동시에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이들이 내 어머니시고 형제들’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육적인 유대뿐 아니라, 영적인 유대관계로까지 가족의 관계를 확대하신다. 이는 혈연에 메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형제, 누이며 어머니라 하신다. 곧 예수님 주위의 당시 사람들뿐 아니라,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후대의 사람들까지도 당신의 가족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 복음 요약 :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 조용하게 아무런 장애 없이 진행된 그런 시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와 정반대로 대단히 거친 대화와 비난에 부딪혀야 하셨고, 심지어 친척들에게 까지 반대를 받으셨다. 인류 역사에서 가족 관계만큼 강력하고 근원적인 사회관계는 없다. 혈통과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제도로 단단해 있던 구조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무너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다. 특히 마르코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길을 죽기까지 따르는 일이다.”(8.33 참조) 예수님의 가족도 예수님의 말씀에 무관한 바깥사람으로 언제나 밖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되려는 이는 그분처럼 ”미쳤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너무 지나치다. 제 정신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하신 운명이었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셨습니다. 우리도 잘못된 소문을 듣고 일시적으로 편견을 가졌던 적이 있는지요?
② 예수님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인지 묵상해봅시다.
♠ 참고 문헌 : ▪ 마르코 복음 맛들이기 ( 수원가톨릭 대학교 출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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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일
2018. 6. 17
마르코 4, 26~34
♠ 복음 공부 - 들어가면서 ...
오늘 복음은 세단락으로 나누워져있다 마르코복음이 공관복음서 3권중에 가장 짧은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여기에 나오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독특하게 이 책에만 나오는 것이지요...
시골에 가려고 안산에 살 때에 열심히 서울을 오가면서 귀농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냥 심으면 될 것 같은데, 막상 교육을 받아보니 식물의 종류에 따라서 깊이서부터 가지를 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영양결핍이나 병들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신기하게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아내와 아들 녀석이 문경으로 이사온 후에 제가 방안에서 뒹굴고 있을 때에 나가보면 밭에 무엇인가 심어져있다. ‘풀을 뽑으라’ 는 아내의 재촉을 그냥 넘겼지만 그 녀석들은 이와 무관하게 무척 자라나는 것 같다. 보살핌이 없어도 방울토마토, 고추 등은 잘 달려있지만, 고구마는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게 자라난다. 하느님이 키워주신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는 일이다...
* 26~29절 :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1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의 어느 시설에 한 달에 한번 봉사하러 갑니다. 그곳 비닐하우스에 풀을 뽑기도 하고 다른 허드레 일을 돕기도 하고, 그곳에서 주시는 아침,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에 고추를 잔뜩 받아옵니다. 할머니들만이 사시는 공동체이기에 밭에 풀 뽑는 일을 게을리 하시는지 온통 고추밭에는 잡초랑 더불어 살아가는 것 같았다. 물론 약도 치지도 아니한 것 같아서 볼품없어 보이지만, 다른 어느 밭에서 나는 고추보다는 더 맛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풀도 양심이 있는지 고추랑 땅속 영양분을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 같았다. 보기보다 고추도 스스로 자라나는 모양새입니다.
* 30~32절 : (겨자씨의 비유) 저는 식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우리들이 아는 겨자와는 다른 종류인 것 같습니다. 표현하는 내용으로 봐서 나무과에 속하는 것 같다. 나무들이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벌어지고 때로는 우리들이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놀랍게도 물과 공기와 햇살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밥솥에 쌀을 넣어서 밥을 짓는데 필요로 하는 쌀, 물 그리고 가스까지 누군가가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요. 주님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 33~34절 :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다) 소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서 90년 초반부터 남미의 선교보고서를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나눔을 하였는지를 읽게 된다. 그들은 피지배자이고 가난한 이들이어서 교육의 기회를 거의 받지 않았기에 그들에 대한 체험이라고 그들이 심고 키우는 식물뿐일 것이다. 주님은 이런 사실을 아시기에 그들이 알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요, 그를 따르는 이들만이 알아듣도록 가르치셨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들은 농사를 지은 적이 없는 우리가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처음 학부모가 되는 날, ‘아이들에게 무엇을 준비해서 학교에 보낼까’ 너무 고민이 많습니다. 열심히 옆집에 가서 나이든 아줌마에게 아내는 열심히 배워 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냥 놀게 내버려두어야 하는 초등학교시절에는 과잉신경으로 아이가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데 정작 세밀하게 보살필 때인 중고등학교에는 그냥 방치해두었던 것이 나중에 너무 후회하게 만든다. 아마도 주님이 이 세상에 계실 동안인 3년간은 들어나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마음이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이나 비유로 제자들에게 말해주고, 또 이를 설명해주어도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복음저자는 이를 아주 순하게 다듬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유대땅은 그리 비옥하지도 아니한 모양인 것 같고,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농사법도 발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와 달리 씨를 먼저 뿌리고, 그 씨가 떨어진 곳이 흙이 있다면 이를 덮어주고 그곳에서만 소출을 기대하고, 나머지 길가나 돌이 있거나 가시덤불이 있는 곳에 떨어진 씨앗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하느님말씀인 씨를 어디다 뿌릴까’ 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관리해주신다고 한다.
♠ 대화 방향 : ① 우리는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 이를 이웃에게 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서 살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성서형제회원으로서 이런 체험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선 적이 있는지요?
②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지만 성서를 멀리하는 이들을 만난 적이 있는지, 있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서야하는지요?
③ 내가 아는 지식으로 논쟁을 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그들과는 거리를 둬야 하는지...? 그들이 좋아하는 대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나눠 봅시다...
♠ 참고 문헌 :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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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2018. 6. 24
루카 1, 57~66. 80
♠ 복음 공부
* 57~59절 : 이스라엘에서는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었다.
* 60~63절 : 아기의 어머니와 아버지 즈가리아가 아기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의사를 정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엘리아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 64~66절 : 즈가리아는 입이 열리자마자 즉시 하느님을 찬미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긴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아기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 복음 요약 : 즈가리아와 엘리사벳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이었으며,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께 청원기도를 계속해서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생물학적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 드렸을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고 실망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믿고 기도 드렸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고 놀랐을까요?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요한이 할 일은 성령께서 즈가리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도자들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은총의 노래로써 시작한다. 살레시오수도원에서는 미사 파견성가 부르기 직전 즈가리아의 노래를 다 함께 부른다. 얼마나 아름다운 성가인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인지 힘을 얻는다. 개인적으로 매일 일어나는 시간 알람음악은 까리따스 수녀님들이 부르는 성가 즈가리아의 노래로 맞추어져 있다.
♠ 대화 방향 : 다 함께 성무일도에 나오는 즈가리아의 노래를 묵상해보자.
68 주여 이스라엘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주는 당신 백성을 찾아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가문에서 * 능하신 구세주를 우리에게 일으키시어,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 옛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손에서 * 우리를 구원하시리이다. 72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거룩한 당신 계약을 아니 잊으시려, 73 우리에게 주시기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74 우리 원수들 손에서 구원하시어 *어전에서 겁 없이, 75 성덕과 의덕으로 우리 모든 날에 *주를 섬기게 하심이로다. 76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주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아, 77 죄 사함의 구원을 * 주의 백성에게 알리리라. 78 이는 우리 하느님이 자비를 베푸심이라,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시고,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며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리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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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봉사자 월례회합 스케치 >
혼배의 5월 봉사자 월례회의
FㆍB 서기 : 권 토마 (순)
1. 제목 : 혼배와 함께 한 5월 월례회의
오늘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데레시아 수녀님, 레오 전국조정봉사자, 당산동팀 5명, 그리고 이문동팀, 전주팀 3분, 그리고 필자가 참석했다. 오후 회의시간에 당산동 4명의 자매님이 다녀가셨다. 미사 중 딸이 시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읽을 때에 저는 성당 앞에 나와서 이 사실을 모든 이에게 전하려고 노력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영성체 후 기도를 하시고 계시는 것을 저는 분명히 보았다. 어느 분이 올리신 신부입장 사진에서 부녀가 손잡고 들어오면서 보여준 표정이 표징하는 것들이 있었다.
2. 장소 : 당산동성당 까페 회의실
3. 시간 : 2018. 5. 12 11:00~15:30
4. 회의 기록
* 11:00~11:30 코이노니아 (시작기도, 주님승천대축일 복음 낭독, 소식지 복음공부 낭독 등)
* 11:30~12:30 혼배미사 : 성전
* 12:30~14:30 안건처리
1) 큰모임 담당자 선정
- 전체진행 : 전국조정 말씀봉사자
- 접수 : 모니카, 효주아녜스
- 시작기도. 인사소개. 안내 : 팜필로
- 십자가의 길 : 안셀모
- FB신앙고백 : 각 지구별
- 삼종기도.식사 : 아폴로니아
- 레크레이션 : 데레사(목3동)
- 말씀사탕 준비 : 당산동팀
- 선물준비 : 효주아네스
- 사진촬영 : 보나벤뚜라
- 뒷정리 : 서울팀
- 기록 : 토마
2) 성서형제회 깃발 준비(상가와 혼배에 사용할 깃발)
- 제작 검토 : 김 효주아녜스(향자)
3) 기쁨소식지 발간에 대하여...
- 비밀헌금이 전부 소식지 관련 비용으로 소비되기에 비용 절감 방안 토의 ☞ 차기회의 우선 배정
4) 기타 : 50주년준비와 기쁜소식지에 대해 회원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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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복음묵상 기고 >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 복음 14,12~16. 22~26 )
광주 / FB 회원
장 도미니꼬 사비오 (철호)
+ 찬미 예수님... 성서형제회 형제자매님들...!
0월 0일 성서형제회 김 아나스타시아 자매님께서 허 데레사 자매님을 모시고 광주에 오셨습니다. 5.18 망월동 묘역을 방문하고 싶다는 허데레사님의 말씀을 듣고 시간을 내어 볼 테니 오시라고 했습니다.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두 분을 만나서 담양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기도드리는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대로 점심식사를 먼저 하고자 담양 떡갈비집 덕인관을 방문했습니다. 주차장에 걸린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영돈 피디의 먹거리 x 파일, 착한 식당, 100% 한우 떡갈비식당으로 인증” 이라는 현수막을 보면서 이 현수막이 붙어야 할 식당이 한군데 떠올랐습니다. 서울에서 설렁탕을 하시는 ‘팜필로 형제님’ 집이 생각났습니다.
대나무밭으로 유명한 죽녹원과 이조시대 중종때 조광조의 제자인 양순보가 살았던 담양 소쇄원을 방문하고자 대나무 숲길을 같이 걸었습니다. 마침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소쇄원을 방문했는데, 가이드가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을 저희도 옆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승 조광조가 음모를 당해 전남 화순으로 귀양을 와서 사약을 받고 죽자, 제자 양순보는 벼슬길에 오르지 아니하고, 고향인 담양으로 와서 집을 짓고 학문에 열중합니다.
훗날 그가 세상을 뜨고 송강 정철이 귀양살이를 와서 그가 지은 집을 방문하고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양순보가 그곳에 집을 지을 때 주변에서 풍수지리에 능한 사람들이 그곳은 ‘봉황이 알을 품는 자리’ 라고 했다고 합니다.
내려오면서 아나스타시아 선생님께 오늘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허 데레사님에게 말을 했더니, “아니 이렇게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을 보여 주어서 고마운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봄처녀 아나스타시아 자매님을 봉황이 알을 품는 자리에 데려 온 것 때문에 괜히 실수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라고 했더니 껄껄걸 웃으셨습니다. 대나무 숲은 선비 양순보의 절개를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절개가 이어진 곳이 5. 18 망월동 국립묘역입니다. 두 분은 차에서 내려서 묘역을 거니면서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주변에 광주 전남 시인들이 쓴 시를 걸어 놓은 곳을 산책하며 그들이 쓴 주옥같은 시를 보면서 5.18에 희생된 젊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두 분과 더불어서 걷는 동안, 두 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키고 살아온 분입니다. 특히 허 데레사님은 한국의 마더 데레사로 불리신 분입니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지만, 그분에게 도움을 받았던, 지금은 천국에 계신 베드로형제의 말을 듣고 그분은 참으로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키고 사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수도원에서 미사 후 신부님께서 아침 식사 같이 하자고 해서 토스트에 커피를 곁들여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신학생 두 명이 와서 합류했습니다. 세 명의 신부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신학생이 최근에 광주 가톨릭대학과 교류를 맺은 개신교 호남신학대학 목사교수를 만나서 강의를 들었는데, 개신교에서는 설교가 가장 중요한데 개신교회에서는 교회 신자수로 목사의 능력을 판단하게 되며, ‘대형교회 목사에게 신자수가 적은 작은 교회 목사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듣기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신자수가 적은 시골 성당 신부님이 신자수가 많은 도시 성당 신부님에 비해 부족한 것이 있을까요? 물론 문화적인 혜택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3-4년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그러한 정기적인 이동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이 듭니다.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시다 휴가 오신 신부님이 계신데, 프놈펜에 개신교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서울 가톨릭의과대학을 졸업해서 그런지 신부들에게 거부감이 없다고 합니다. 환자들을 데리고 가면 전부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치료 받으러 오면 똑같이 비용을 받는다고 합니다. 너무 고마워서 와인을 가져다주면 그냥 받으신다고 합니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산다면 그는 주님의 마음에 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산다는 것,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사는가’ 그것은 말로는 쉽지만, 삶으로는 어렵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두 분과 함께 은총의 오후였습니다.
평생을 성체를 모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오신 두 분과 함께 축복의 하루였습니다.
최근에 읽은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 2편’을 보면,
스위스에서 스위스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한국 자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자매는 가톨릭신자이며 스위스인 남편은 개신교신자였습니다. 그의 남편은 성체성사에 대해 거부반응이 있었으며, 가톨릭교회는 밀가루빵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갑자기 죽고 부인을 따라 메주고리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미사에서 신부님이 그에게도 성체를 영해 주셨습니다. 그는 가톨릭신자가 아니었는데도... 그렇지만 그도 아들을 잃고 부인과 함께 마음이 아픈 상태였기에 그냥 덤덤하게 받아 입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네가 마음이 너무 상심하여 너를 위로해 주려고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위로하려고 미사를 집전한 사제에게 나를 영하게 했다.”
성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그 책을 통해 또 한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체를 영하고서 기도를 드리지만 그 마음이 지속된 상태로 일상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두 분의 목사님들도 ‘수도원 기행 2편’ 을 읽고 감동적이라고 표현한 글들을 발견했습니다.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사인 내가 수도원이 아니라, 광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고 목이 메었다. 미안하다. 그런 나를 묵묵히 받아준 가족과 교인들이 감사하다. 내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마련해 두지 못했고, 하나님에 이르는 길을 만들지 못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내 맘은 그리스도의 평화와 평온이 깃든 어느 수도원 못지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참으로 매혹적인 책이다! ”
[ 신앙은 이해가 아니라 수용이었다. 알기 전에 이미 와 있었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왜관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 것도, 신부님을 만나 마리너스 수사를 소개 받은 것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뉴욕의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찾아가게 한 것도 돌이켜 보니 하느님의 섭리였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드는 것도 하느님의 섭리리라.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 또한 공지영이라는 한 작가의 내면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녀가 운명처럼 이끌려 쫓아간 수도원들은 실상 자신을 좇아간 것이며, 그가 만난 수사들을 통해 정작 변화된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이 책을 탈고한 저자의 삶에 더 이상 고통이 없을까? 더 이상 슬픔이 없을까? 아픔이 없을까? 아닐 것이다. 여전히 고통은, 슬픔은, 아픔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슬픔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아픔 속에서 사랑을 찾아내고, 고통 속에서 은총을 찾아낼 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린 더 이상 슬픔과 아픔, 고통이 없는 종착지로 갈 것이다. 그 날에 이를 때까지, 그 곳에 도착할 때까지 우왕좌왕 할 것이지만, 또다시 절망하고 넘어질 것이지만,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다시 세울 것이며, 나를 끌어당기실 것이며, 내 옆에서 걸어가실 것임을...
나도 이제 조금 알겠다. “ 그 분은 우연의 일치를 가장한 섭리로 찾아오신다는 것을... “ ]
한 주간도 평안한 주간되시길 바라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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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8년 4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