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0월18일(금)보슬비
대나무 두 그루를 창 앞에 모셔오다.
雙竹立窓前, 쌍죽립창전
德不孤有隣; 덕불고유린
引風呼雨來, 인풍호우래
秋庭妙喜圓. 추정묘희원
대나무 한 쌍을 창 앞에 모셨더니
덕 있는 군자는 친구가 따르는 법이니,
바람도 이끌어 오고 비도 불러들여,
가을빛 즐거움이 뜰에 가득하여라.
2019년10월19일(토)맑음
태국에서 노스님 룽포제, 왓프라푹카오 사원 주지스님 아잔탠과 그의 도반 마하위라(승가대학의 강사)와, 재가신도 테라분(태국 외무부 근무)이 오다. 김해공항으로 마중 나가다. 진주로 모셔와 븟반에서 점심공양 대접하다. 산청 대성사로 가서 쉬신다.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수호자이니
다른 누가 수호자가 되리.
자신을 잘 제어할 때
얻기 어려운 수호자를 얻는다. (Dhp.160)
그대는 자신을 섬으로 만들어라.
서둘러 정진하여 현명한 님이 되라.
티끌을 날려버리고 허물을 여의면,
그대는 천상계의 고귀한 곳에 이르리. (Dhp.236)
2019년10월20일(일)맑음
죽향에서 태국 스님들에게 점심을 공양 올리다. 말차 한 잔으로 입을 헹구며 공양을 마치자 스님들께서 망갈라 경Mangala sutta을 독송하면서 축복해주신다. 큰스님을 진주선원으로 모셔와 법문을 청하다. 태국에서는 큰 스님을 ‘룽포제’라고 부른다. 태국말로 ‘룽포’는 아버지, ‘제’는 채식주의자라는 의미이다. 큰스님을 일생동안 채식을 하신다. 테라분이 태국어에서 영어로 통역하고 내가 영어에서 우리말로 통역한다. 한 시간 동안 법문하시고 질문응답 시간을 갖다. 룽포제와 태국스님들에게 보시를 올리다. 룽포제께서 은으로 만들어진 불상과 숄을 선물로 주신다. 이러한 법회는 숙세의 선업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정진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시며 떠나셨다.
2019년10월22일(화)맑음
태국스님 일행과 불국사와 석굴암을 참배하고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에서 일박하다.
2019년10월23일(수)맑음
동해안을 달려서 낙산사 홍련암을 참방한 뒤, 해수관음을 친견하다. 설악산 신흥사를 참방하고 케이블카를 타다. 대포 항에서 일박하다.
2019년10월24일(목)맑음
오대산으로 달려 중대를 거쳐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상원사와 월정사를 방문하다. 전나무 숲길을 걷다. 예전 오대산의 고적했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여 상업화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해거름에 달려서 산청을 거쳐 진주로 돌아오다.
2019년10월26일(토)맑음
공부모임하다. 등현스님을 강주로 모시고 구사론을 강론하다. 참석자는 혜진, 용묵, 용문, 경민, 일민, 원담. 오전 9:30에 시작하여 오후6시에 마치다. 보살님들이 점심과 저녁 잣죽공양을 올리다. 유익한 하루였다.
2019년10월28일(월)맑음
초하루 독경법회하다. 혜안스님 와서 함께 공양하다. 올해 초에 스님이 청사포에 개설한 보디야나 선원이 잘 운영되고 있다. 스님은 내가 강의한 자료를 유투브에 올릴 것을 권유하셨다. 고려병원에 가서 독감예방 주사 맞다.
2019년10월30일(수)맑음
어젯밤부터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 실외에 내놓았던 화초가 냉해를 입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제 오후 연경부부가 와서 화분을 실내로 들여놓았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모든 관심이 자기에게 집중되어있다. 자기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주변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기에, 자기만 행복하고 그 주변 사람들은 고통스럽다. 실재의 자기가 아닌 우상화된 자기idolized self, 거대자기grandioso self에 취해서 살아간다. 내면의 공허함과 쓸모없음을 메꾸려고 타인에게서 에너지를 착취한다. 대상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 자기에게는 없는 타인의 장점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다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려한다. 따라서 질투심이 많다.
음악은 다른 예술로부터 발생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꽃이 새싹을 틔우기 위해 최후를 맞는 것처럼, 음악은 가장 내면적이기 때문에 제일 늦게 문화의 가을꽃이 떨어지는 시기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니체 대 바그너>
이 대야에서
저 대야로 옮겨가는
요지경 인생
-잇사(小林一茶, 1763-1827)
2019년11월1일(금)맑음
몸과 마음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태어난 유일한 원재료이며 대체 불가능한 재산이다. 이생은 오직 한번밖에 없는 기회이다.
집단의 꿈이 이루어짐으로써 개인의 소원이 성취되기도 하고, 개인의 소원이 이루어짐으로써 집단의 꿈이 실현되기도 한다.
<고려대 양형진 교수의 우리사회의 불교와 과학, 수행>에서 녹취
정보이론,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이 세 개의 이론이 현대과학의 3대축이다.
Shannon의 entropy이론은 정보이론이다. 엔트로피 증가=정보의 감소=무지의 정도가 증가한다. 無知의 정도가 엔트로피이다. 정보란 엔트로피의 부정이라는 뜻에서 네겐트로피negentropy라 한다. 자연 상태의 물질은 그냥 내버려두면 무질서가 증가될(엔트로피가 증가할)뿐인데 생명은 어떻게 이 무질서경향에 저항하면서 생존을 지속해갈 수 있을까? 생명이란 외부에서 에너지를 취하여 생명기능을 유지해간다.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화성에 생명이 있는지 탐색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먼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연구 결과 생명이란 ‘고도의 정보집합체’라고 결론지었다. 지구전체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이것이 가이아Geia 이론이다. 하나의 단위 개체 생명이란 전체와 연결되어 상호 의존하여 존재할 수 있을 뿐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실체가 아니다. 즉 無我이다.
<갈릴레이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대상의 속도를 알기 위해서는 대상 그 자체에서 나오는 정보로는 알 수 없고, 관찰자와의 관계에서만 알려질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도 그 자체 단독으로만 알려질 수 없고, 관측자(인식주관)의 관측에 의해서 알려진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관성의 법칙inertia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는데, 과연 관성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떤 힘도 작용하지 않는 물리적공간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지구는 공전궤도를 초속3km/sec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과연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느냐? 동시성simultaneity이란 문제.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를 우주상수로 정의했다. 30만km/sec
관측자와 대상이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의 늦고 빠름이 달라진다.
시간의 상대성-시간도 고유한 값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변적 변수이다.
진짜 또는 실재란 없다. 다만 관측자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어떻게 관측되는가에 의해 정해질 뿐이다.
칸트는 선험적 진리 a priori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뉴턴 고전역학의 인식론적 기반이 되었다.
첫댓글 상대가 자기애적 성격인 줄 알았다면 어느 정도 간격을 두면서 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선의를 이용하면서 내 관심과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먹으면서 자기의 애정결핍을 메우려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그의 갈증과 자기결핍은 치유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거리를 두면서 내가 자애명상이나 통렌을 수행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