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제5 강론(445년 2월 25일)
사도께서는 우리가 “묵은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골로 3,9) 거룩한 생활로 나날이 새로워지도록(2고린 4,16 참조) 권고하여 가르치십니다. “여러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고린 6,16)라는 사도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처하신다면,(1고린 3,16 참조) 우리 마음이 그처럼 고귀한 손님에게 부당한 거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집의 경우에 사람들은 그 집에 물이 새거나, 강한 폭풍우를 만났거나 낡아서 파손된 부분이 있으면 놀랄 만한 열성으로 재빨리 복구합니다. 이와같이 우리 영혼에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나 불결한 부분이 없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5,1]
☕ 하느님의 성전이 영혼이 파손되었다면 고쳐야 한다.
계명을 지킬 때에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자기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명령하시는 분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네 생각을 하느님께 맡겨드려라, 그분 친히 너를 키워주시리라고 한 예언자의 말씀대로, 계명을 주시는 분은 이를 이행할 원의를 일으켜 주시고 또한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5,1]
☕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으면 주님께 달려가 도움을 청해야 한다.
자기는 상처받은 일도 없고 무죄하기 때문에 아무런 쇄신도 필요없다고 감히 장담할 정도로 뻔뻔스럽고 교만한 자가 흑시라도 있단 말입니까? 그런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현세의 유혹들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지나친 망상 때문에 점점 노쇠되어 갑니다. 모두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함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욕망이 충동질하며, 유흑이 음모를 꾸미며, 이득이 아첨하며, 손실이 위협하고, 비방하는 자들의 혀가 쓰라림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칭찬하는 이들의 입은 늘 진실하지는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증오가 난무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거짓된 존경으로 속이고 있으니, 거짓말쟁이를 멀리하기보다는 불화를 일으키는 자를 피하기가 더 쉬울 정도입니다. [5,1]
☕ 우리는 현세의 유혹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식별이 필요하다.
자기는 정직하다고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험담꾼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또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의한 자들의 모욕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현세 사물들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생각을 돌려보면, 얼마나 큰 어둠이 자기를 엄습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사악한 주장들에서 생겨나고 있는지, 그래서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대립이 결국 한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5,2]
어떤 일이 우리의 원의대로 진척되지 않고, 인간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사악한 자의 주장이 의로운 사람의 주장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을 보게 되면, 관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흔들리게 되고, 부당한 트집을 잡는 불평에 떨어지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뛰어난 예언자인 다윗*도 이런 식의 변화 때문에 자신이 위험에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하면서, "내 발이 흔들리고 내 발걸음은 거의 쓰러질 뻔하였으니, 내가 죄인들의 평안함을 보면서 그들을 시샘하였기 때문입니다”(시편 72,2-3)라고 말했습니다. [5,2]
㈜ : *여기서 다윗을 °가장 뛰어난 예언자" 라고 지칭하는데, 사순시기 강론 6,1에서는 같은 표현을 솔로몬에게도 적용한다.
불평등에서 오는 혼란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이가 적다는 사실과, 역경에서뿐만 아니라 순경(順境)에서도 타락하는 신자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나약한 인간성에 입은 상처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치료해야 합니다. 이때문에 저는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위험들 중에 몇 가지만을 간단하게 상기시켜 드린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기는 마음에 거리낄 것 없다, 자기는 죄에서 깨끗하다고 자랑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잠언 20,9)라고 말하고 있둣이, 모든 이는 죄에 대한 용서와 치유를 위한 처방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5,3]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1고린 10,12)라고 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는 항구하다고 자신할 정도로 강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구원을 위해 매우 유익하게 제정된 이 복된 시기를 잘 이용하고, 우리 마음의 거울을 세심한 주의로 깨끗이하도록 합시다. [5,3]
우리가 사멸할 인간 본성을 지니고 사는 현세생활을 아무리 순결하고 절도있게 살아간다(디도 2,12 참조) 하더라도 세상살이에서 오는 먼지가 끼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창세 1,27 참조) 영혼의 광채가 어떠한 허무의 연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떠한 더러움에도 흐려지지 않고 끊임없이 닦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5,3]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선하신 하느님의 인내를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분이 화내시는 것을 아직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분이 마음 상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죽을 생명의 기간은 길지 않으며, 어리석은 의지에 허용된 방종의 기간도 길지 않습니다. 만일 하느님의 정의가 판결을 미루고 있는 동안에 참회의 약을 찾지 않으면 영원한 벌의 고통에 처해지게 될 것입니다. [5,3]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둣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마태 6,12)라고 기도하면서 우리가 고백한 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을 아주 견고한 사슬로 묶어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기도의 가장 성스런 계약이* 어떤 여건에서든 완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자기 양심을 성찰하여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우리도 죄사함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5,4]
☕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자기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거짓말을 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 : *"가장 성스런 계약”: 주님의 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둣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를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는 계약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이행할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이 자기 창조주를 본받는 것보다 더 합당한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 능력의 정도에 따라 하느님의 일을 이행해야 합니다.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들을 입혀 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 줄 때 하느님께서 그런 봉사자들의 손을 당신 도움으로 가득 채워 주시지 않겠으며, 또 종의 선함은 주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당신의 자비를 실현하시기 위해 협조자를 필요로 하시지 않지만, 사람들의 고통을 사람들을 통해 도와 주시기 위해 당신의 전능을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애덕을 실천한 것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마땅히 감사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들인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일들은 모두 그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주님 친히 제자들에게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마태 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4]
☕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실현하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