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아일랜드 기행 52 / 콘위 성Conwy Castle
콘위 성Conwy Castle의 꽃 왕의 기침소리 그친 곳에 꽃 한 송이 피었다 우산도 안 받고 하늘을 어루만지며 침묵 한 송이 펴들고 있다 나는 꽃잎에 손을 내밀지만 나의 손은 꽃에 닿지 않는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그녀의 집이 있는지 내가 아직 안 가본 고향 어느 곳에 숨었는지 꽃의 가슴에 내 손을 얹어보지만 안에서 들리는 아무 기척도 없다 내 손은 캄캄하다 저 아득한 빛을 꺼내기에는 아직 너무 어둡다 세상의 소문들 모두 돌아간 자리 한 잎의 그녀에게 말을 걸기에는 내 손은 너무 낡았다 |
52. 콘위 성Conwy Castle
젖어서 버섯 스프를 먹는다
점심식사는 오롯하다
감자요리와 치킨과 구운 빵들
버섯 스프를 떠먹고 내 몸은 따뜻해진다
우중의 식당은 사람이 적어
버거킹보다
피자헛보다
라라코스트의 집보다
웨일스의 풍요를 먹고 마시기에 흡족하다
먹는 즐거움보다는 먹을거리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더 큰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커피 한 잔은 행복한 덤
제왕의 식탁이 아니라도 오붓하다
콘위 성에 다다르니
빗발이 한층 사나워진다
우산마저도 받쳐 들 수 없을 정도
위용에 넘치는 성은 비에 젖어 더욱 우람하다
바람 불어 묵직하다
고색창연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우리 일행 중에
우중에 성채를 둘러보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옛 성에 어린 적막감이여
나는 고성을 바라보면 숙연해진다
소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분별이 무너진다
가진 자는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못 가진 자는 무엇을 빼앗길 수 있는가
무엇이 나의 것이고
지상에 당신의 것은 어디 있는가
체온이 떠나버린 옛 성에 서면
서두르며 살아온 내가 보인다
너무 흔들려서 넘어지던 육신이 보인다
갑옷 입고 투구 쓰고 창검을 비껴들고
고성의 새벽을 지키던 기사들과 그의 시종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저들이 먹고 마시던 바람소리
지금은 어느 변방을 떠돌고 있을까
여기도 한 때는 뜨거운 기침소리 넘쳤으리라
마시고 남은 행복을 콘위 강에 버렸으리라
콘위 성 -
웨일스 북부 콘위에 있는 중세의 성채
웨일스인들의 독립운동을 막고자 하는 의도로 축성된
에드워드 1세 시대의 성곽으로 세계문화유산
여덟 개의 탑과 두 개의 망루로 된 성채를
스노도니아Snowdonia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곳
콘위 강의 강변 언덕배기에 있어
풍광이 수려하고
외부로부터의 물자조달이나 군사적 이용이 용이한 지형
성벽의 길이 일천오백 미터
성채는 대개 산정에 있으나
콘위 성은 평지와 다를 바 없어 사람의 발길 잦은 곳
성벽은 아직도 우람하고 견고하다
세상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채의 하나
여정을 기록한 팸플릿에는
콘위 성에서도 전투가 있었다는데
우리 가이더 박윤영님의 말로는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이곳에서 없었단다
방어를 위한 성채에서
단 한 번의 전투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곳
그저 콘위의 도성을 위엄으로만 옹위했을까
비를 맞으며
다람쥐처럼 망루 위를 걸어서 둘러보는 조망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망루의 이 방 저 방을 들어가보고
벽채를 만져보며 옛 역사를 떠올려본다
중세의 그림자여
돌에 스민 이끼에나 숨어 있는가
텅 빈 방들에 담긴 식어버린 체온들이여
한때는 돌의 돌마다 꿈이 스며 있었으리라
창검은 갈고 갈아도 쓸 곳이 없었으나
거기 평온의 자락에 전투 대신에 노래가 있었으리라
무용담이 사라진 자리에
진세塵世의 춤들 더러 있었으리라
애잔하여라
흩어진 돌의 침묵들이여
내 귀는 부지런해서
전설을 듣고
신화를 만들고
폐허로 돌아간 망루의 탑들 위에
사라진 시대의 깃발을 달아놓고
투구를 벗은 다감한 병사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콘위 강물 따라 떠내려간 숱한 옛 이야기여
지금은 어느 바다에서 떠돌고 있는가
사람이 떠난 공간을 떠도는 바람소리들
적멸 속으로 잦아든 시간의 애증들이여
나는 외로워 내 가슴의 시를 쓴다
뷴주히 써내려간 나의 시에
고적孤寂을 담아 콘위의 물결 위로 떠내려 보낸다
방랑의 궤적이 길어질수록
생은 날로 더욱 외롭고
삶의 신비는 아직도 가닿을 수 없어라
누가 가고
누가 존재하는가
남은 자는 누구이고
떠난 자는 누구인가
눈물겨운 자나
비어 있는 자나
저 바람 속에 누우면 모두가 같아지는 것
무상은 허무가 아니라
인생을 되짚어가는 시금석이다
성자가 말했다
‘苦集滅道’
사제四諦의 길은 방금도 우리 앞에 있다
내가 붙드는 것은 무상이나
무상의 끝은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덧없음은 생각의 덧없음인 것
덧없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인가
묻는 자를 들여다본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而
寂滅爲樂
모든 것 덧없으니
이것이 생멸의 법칙
생멸을 멸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