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기포의 새벽 편지-096
동봉스님
한식寒食은 우리 고유명절이지요
한식은 설 단오 추석과 더불어
민간의 사대절사節祀 중 하나입니다
동지점Winter Solstics으로부터
105일 뒤에 들어오는데
양력 4월 5~6일 경이 됩니다
보통 청명 다음날이어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라는 속담이 생겼을 것입니다
한식은 글자 그대로
찬밥이거나 식은밥이 되겠지요
우리는 에너지절약을 위해
자동차 번호 홀짝제를 실시하고
한 등 끄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 얼마나 절약되겠느냐며
시큰둥하게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해도 달도 우리 지구도
모두 다 먼지의 집합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옛날 조상들께서는
한 해 내내 따뜻한 음식을 먹다가
한 번 쯤은 찬밥을 먹자고
생각하여 이벤트를 추진했는데
생각처럼 그리 쉬웠을까요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종교나 조상의 힘이 으뜸이지요
이를테면 마을 중심에 서있는
정자나무 한 그루를 보호하기 위해
동티설動土說을 만들었지요
만약 이 나무를 건드리면
당사자나 당사자 가족은 물론
마을에 큰 재앙이 생길 것이라고요
그런데 그런 일이 가설이 아닌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염원의 힘이든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든
생각대로 되어갔습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
실제 나무에 그대로 작용했는데
소위 '생각의 힘'이라는 법칙입니다
그래서《화엄경》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惟心造라 하셨겠지요
요즘은 개고기를 잘 먹지 않지요
왜냐하면 부정탐 때문입니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아직도 그런 미신이나 믿느냐고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개고기 먹고 건강 챙기려다
되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는 불교수행자이기도 하지만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재야물리학도이기도 합니다
그런 내가 엉뚱하게
미신이나 믿고 앉아 있겠습니까
마을의 보호수!
자칫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진짜 동티가 날 수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티가 평범한 데서 시작되었지요
사람들 생각의 힘이
믿음으로 굳어지면서
나중에는 종교로까지 발전합니다
한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년에 한 번 쯤은
식은 음식을 통해 체질을 바꿔주고
사람 삶의 패턴을 바꿔주고
사람 생각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년 중 가장 건조한 계절에
불조심도 할 수 있고
돌 하나에 새 두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식을 식은밥이라 옮겼지만
실제는 식은밥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일 에너지 절약과 함께
불조심이 캠페인의 목적이라면
찬밥 식은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찬밥이나 식은밥은
익힌밥 뜸든밥이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따랐을 뿐
이미 에너지는 써버렸고
불도 이미 피웠으니
에너지 절약이나 불조심과는
애초부터 상관이 없습니다
따라서 한식은
찬밥 식은밥이 아니라
애초에 싱싱한 야채 산채 음식이고
괴일식이고 건과류입니다
어쩌면 발효식품도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식은
아예 화학의 세계를 거치지 않은
순수자연식이었을 것입니다
맛이 좀 닉닉하겠지만
화학조미료MSG로 범벅한
요즘 음식점 요리보다는
맛이나 건강면에서도 좋았겠지요
나는 아프리카에서 좀 살다보니
여태껏 MSG가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산나물이나 야채 하나에도
조미료를 숟가락으로 퍼 넣으니
목이 니글거리고
배가 부글거리다가
마침내 배탈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절밥이 좋습니다
고기도 익히거나
굽거나 찜하거나 볶은 게 아니라
육회肉膾Raw Beef나
어회魚膾Raw Fish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생선生鮮이
한식상에 올랐을 것입니다
생선이란 살아있는 것
신선도가 높은 싱싱한 해물이지요
말리거나 절이거나
띄우지 않은 물고기고
그냥 살아있는 물고기지요
옛날에는 즉석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 올렸습니다
쌔크리 파이스Sacri Fice
곧 희생犧生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소 잡고 돼지 잡는 게
제사를 지내는 데서 시작되고
마침내 이쁜 사위를 위해
씨암탉까지 잡는 장모님 사랑으로
가족 사랑으로 이어져왔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식입니다
한식을 통해 조상님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생각을 높이기도 하고
체질 바꾸고 건강 챙기고
비록 씨암탉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사랑으로 이어지는
그러한 한식문화 즐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모처럼 한식날입니다
일년에 한 번 밖에 없는 한식날
MSG가 들어가지 않은
절밥 사찰음식하는 곳에서
가족들과 동료들과
괜찮은 시간 즐기시는 것도
꽤나 근사近寺(?)하지 않겠는지요
04/06/2015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