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09년 1월 15일과 2012년 10월 18일에 촬영한 것임.
경복궁 근정문 앞의 금천에 있는 영재교 양편에는 서수가 지키고 있다. 서수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근정전 동쪽을 지키고 있는 서수인 청룡과 흡사하다. 가슴의 무늬까지도..(사진은 근정전 동쪽에 있는 청룡)
영제교 우측의 서수(瑞獸)
1770년(영조46) 음력 3월 초 엿새, 영재 유득공 선생은 경복고궁으로 들어갔다. 스승인 연암 박지원 선생
을 모시고 벗인 청장관 이덕무, 몇몇 지인들과 함께 서울을 답사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첫날 삼청동,
둘쨋날 남산, 셋째날 낙산 일대를 거쳐 마지막으로 경복궁 터로 들어섰다. 태조 초년에 지어져 조선 제일의
공식적인 궁궐이며 법궁으로 쓰이던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에 왜군의 손에 불타버린 뒤 그 때까지
빈 터로 남아 있었다.
나는 238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춘성유기春城遊記>라는 유득공 선생의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먼
발치에서 나마 유득공 선생 일행의 뒤를 따라가며 눈동냥 귀동냥을 한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오늘로 돌아와
경복궁을 뛰어다니며 그 분의 말씀을 좇아가 본다.
경복궁 터 남문 안에 다리가 있는데 다리 동편에 천록(天祿) 둘이 있고 서편에 하나가 있다. 그것은 비늘과
갈기가 완연하게 잘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서편에는 왜 하나만 있을까? 유득공 선생은 남별궁 뒤뜰에서 등
이 뚫려 있는 천록을 보았는데 그것은 서쪽에 있던 것이 옮겨진 것으로 짐작되나 증명할 만한 근거가 없다
고 안타까와 한다. 아! 천록 바로 이것이 천록이라는 짐승이로구나. 얼른 오늘로 돌아와 보니 거기 있다.
영제교 동서편 금천 변에 각 한쌍씩 네마리의 천록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등이 뚫려 있다. 그러나 이 천록은
줄곧 제자리를 지켰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수난을 당한 끝에 겨우 이 자리에 되돌아 온 것이다. 가련한 천록.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으니 불행 중 다행 아닌가?
(출처:2008,12월,문화재사랑. 글,홍순민 문화재위원/명지대교수)
천록은 고대 중국의 상상의 동물로 사슴 또는 소와 비슷하며 꼬리가 길고 외뿔을 가졌다. 사악을 물리치는
서수이다. 사진은 영재교 서쪽의 천록이다.
유득공"의 춘성유기에 의하면 당시(1770년)에는 서편에는 천록이 하나만 있었다고 했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지금은 서편에도 한쌍의 천록이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없었지만 남별궁(현재 조선호텔) 뒤뜰에 있었다던 등이 뚫린 천록이 이 자리로 온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는 동편에 있었을 혀를 내밀고 있는 천록이 와 있다.
메롱" 하듯이 해학적인 표정이 압권인 이 천록은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기 전인 1912년 부터
철거하기 시작한 경복궁 전각들과 함께 철거되었다가 1995년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자리가 이동된 것 같다.
악귀를 물리쳐야 할 서수의 표정이 무섭기는 커녕 귀엽기만하다. 조상들의 해학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영재교 오른편의 천록이다. 이 곳에 유득공이 남별관에서 보았다는 등이 뚫린 천록이 있다.
메롱"하고 있는 천록이 있어야 할 자리로 와 있는 등이 뚫린 천록이다.
자리가 바뀌긴 했어도 천록이 영재교를 다시 지키고 있게 된것이 다행이다.
영재교 아래 물길을 지키는 두 쌍(네마리)의 천록 모습. (모든 사진들은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이다.
근정전을 둘러 쌓고 있는 월대에는 많은 서수들이 근정전을 지키고 있는데 그 중에는 돌 개도 있다.
다시<유득공 선생과 경복궁을 거닐다>란 홍순민 교수의 글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근정전 옛 터 기단 동쪽과 서쪽, 모서리에는 돌로 된 개(石犬) 암수가 있다. 암컷은 새끼를 한 마리 안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개는 신승 무학대사가 남쪽의 도적을 향해 짖게 하려고 만들었다. 개가 늙으면
뒤를 잇게 하려고 새끼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병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이 돌 개의 죄란
말이냐. 그럴 듯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믿을 수는 없는 이야기라고 유득공 선생은 씁쓸히 웃으며 말한다.
돌 개! 지금 근정전 상하 기단 전면 동서 모서리 난간 기둥을 받치는 돌 위에 앉아 있는 귀엽디 귀여운 것이
돌 개 였구나. 그런 내력을 간직한 것이었구나! 지금 저 돌 개는 유득공 선생이 보던 그 돌 개는 아니고 고종
초년 경복궁 중건 당시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는 하나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장한가! 듬직한 돌 개여
동쪽 상,하단 모서리의 돌 개. 돌 개 기둥 위에는 이름 모를 서수가 있다.
동쪽 하단 월대 모서리의 돌 개.
동쪽 상단 월대 모서리의 돌 개.
돌 개는 가슴에 새끼를 품고 있다.
귀여운 새끼 돌 개의 모습.
서쪽 월대 모서리의 돌 개.
서쪽 월대 모서리에 있는 돌 개도 새끼를 품고 있다.
서쪽 상,하 월대 모서리의 돌 개 모습.
서쪽 하단 월대 모서리의 돌 개.
서쪽 상단 월대 모서리의 돌 개 모습.
월대 모서리에 있는 네 쌍의 돌 개 커플은 모두 새끼를 품고 있다.
모서리에서 사각지대를 감시하는 돌 개들은 모두 바라 보는 방향이 다르다.
어느 곳으로도 악귀가 들어올 수 없게.....
남쪽 월대로 오르는 계단 양 옆을 지키고 있는 서수(호랑이)
월대에는 사방신과 12지신 상이 있다. 정면인 남쪽에는 남쪽 수호신인 주작과 말의 형상이 있으나.
12지신은 무슨 까닭인지 방위대로 배치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리고 개와 돼지는 빠져있다.
정남향 아래 월대에 있는 서수. (사자라고 볼 수도 있고 개로 볼 수도 있다).
정남향 상 월대로 올라 가는 계단에 있는 12지신 중의 남쪽의 신 말.
상 월대에 있는 사방신 중 남쪽 수호신인 주작.
참고로 4신및 12지신의 방위표를 올린다.
남서쪽에 있는 양.
서남쪽에 있는 잔나비.
서수들은 거의 성별을 구별할 수 없거나 대체적으로 숫놈인 경우가 많은데 잔나비는 암놈인듯 하다.
가슴이 봉긋하지 않은가!
참 우리의 조상님들은 유쾌하다. 지엄한 궁궐에 세운 서수에도 이런 발상을 했다.
궁궐에서 월대에는 아무나 오를 수 없었다. 월대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은 정3품 이상의 관리에게만 주어졌다.
그래서 3품 이상의 관리는 당상관이라 했고 그 이하의 관리는 당하관이라고 했다.
부르는 호칭도 달랐다. 당상관은 영감님"이라 불렀으며 당하관은 나으리"라고 불렀다.1품에 올라 정승이
되면 그때는 대감님"이라고 불렀다. 당상관은 정책 입안자이며 당하관은 집행자다.
12지신 중 서쪽 신인 닭. 아래 월대에 있다.
사방신 중 서쪽 수호신인 백호 . 서편 상 월대에 있다.
남쪽 정면 동쪽 모서리에 있는 서수.
남동쪽 방향 아래 월대에 소가 있다. 소는 북동쪽에 있어야 한다.
월대를 바라 보고 있는 소.
남동쪽 상 월대에 있는 뱀.
월대 중간에 있는 이름 모를 서수. (사자일수도 있고 개일수도 있다)
사방신 중 동쪽 수호신인 청룡. 상 월대에 있다.
12지신 중 동쪽 신인 토끼. 동쪽아래 월대에 있다.
서쪽 계단, 토끼와 청룡이 지키고 있다.
북동쪽 모서리에 있는 이름 모를 서수.
사방신 중 북쪽을 지키고 있는 현무이다.
아래 월대에는 12지신 중 북쪽 신인 쥐가 있다.
북서쪽 월대의 서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 꽃 이란 시다.
첫댓글 여러 차례 둘러 보았던 경복궁, 무심코 지나쳤던 동물들의 모습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나요? 다음에 기회가되면 자세히 볼겁니다.귀중한 자료 김교찬 작가님 감사합니다.
아시는 분인데, 저리 사진 찍으시며 돌아다니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