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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 까리온 – 테라디오스 데 로스 템프라리오스
16일 차(26.6Km)
밤은 괴로워
순례는 모든 것이 즐겁고 은총이지만
밤만 되면 언제 날이 밝아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나 기다려짐
다른 순례자들은 서로 누가 코를 잘 고는지 경쟁하지만
나는 그것을 판정하는 심판관이 되어야 하는 신세.
하지만 잠이 부족하진 않고 밤이 지루한 거다.
그래서 생각.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오신 날 밤 고이고이 펴리라?고 한 황진이처럼
나는 식당에 내려와 내일 일정 공부하고 생각 정리 하는데 쓴다.
기이한 인연
영어를 전혀 못하는 스페인 남자
첫번째 만남 : 5일전 6시가 안되어 배낭을 꾸리고 알베르게를 나가려는데
문이 잠겨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의 그남자가
밖에서 테이블과 의자로 막은 듯한 옆 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감사 인사 전하고 먼저 걸어 가는데, 아직 어두워
까미노 사인이 마을을 지나자 보이지 않아 길을 잃을까 걱정됨.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 오길 기다리자 5분 뒤
한명이 헤드램프를 켜고 걸어오는 것 발견.
자존심에 들키지 않으려고 나무 뒤에 숨었다가
약 20미터 후방에서 쫓아감
30분 더 걸으니 다음 마을에 도착했고
날이 밝자 아까 그 스페인 남자임을 확인
모른 체 같이 동행
도로에서 샛길로 까미노 사인이 있는데 그는 큰길로 가려해
사인을 보라해도 스마트폰 길찾기를 보며 자기를 따르라는 손짓
그의 행장은 프로답게 배낭을 잘 꾸렸고 스틱도 없이
두팔을 흔들며 걷는 모습에 망설이다 그를 따르기로 결정
한참을 가도 사인은 보이지 않고 앞에도 뒤에도 순례자는 안보임
그때부터 그도 당황 스마트폰으로 길찾기를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두리번 거리기 시작
20분쯤 가자 지나가는 차가 멈추더니 스페인 말로 이야기 하는데
오던 길을 되돌아 가던지
산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며 넘으라는 뜻으로 보임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으로 그만 졸졸 따라감.
그때부터 그 남자 속도를 내기 시작, 나는 허덕이며 따라감
마을이 나오자 또 어디로 갈지 헤메는데 마침 경찰차 발견.
한참을 이야기 하더니 방금 지나온 길에서 산으로 올라 가라 함
이때부터 등산시작.
내가 못 쫓아가면 기다려 주길 수 차례. 1시간 걸려 산을 넘어감
경찰차는 길을 가르쳐주고 10분 후 확인 차 우리를 쫒아 옴. 고마운 경찰
산을 넘자 멀리 다른 길에서 오는 순례객이 보임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안도의 한 숨과 함께 나에게 보라며 엄지척
나도 웃으며 고맙다 인사
실은 미웠지만^^
그는 담배를 피워 물더니 맛있게 한 모금 빨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쏜살같이 앞서 걸어감
오늘의 깨달음: 사람을 믿지 말고 싸인을 믿어라
우리도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길을 잃지 않는다
두번째 만남: 숙소에 도착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건드려서 보니 그 남자.
한 명의 여자와 함께
둘 다 영어를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답답
그 여자를 소개 하는데 알아 듣지 못하니
자기 손가락 약지를 가리켜서 그녀가 약혼한 여인인 줄로 생각
(나중에야 와이프임을 알게 됨)
자기는 하루 40킬로 이상 걸을 것이라 함.
그래서 이제는 만나지 못하겠구나 생각
세번째 만남: 다음날 숙소에 도착 마을 구경하는데 그가 벤치에 앉아 영상통화 중
옆에 앉자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자기 부인과 자녀라고 하며 애들한테 이야기하라 함.
아이들은 영어를 함
"하와유?" 하더니
나보고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몇 살이냐 등
간단한 대화후 가족들과 영상 인사
통화 후 왜 여기까지 밖에 안왔냐 하자 어제 부인을 만나 같이 보내고,
그녀는 오늘 자동차로 집에 가고 자기는 늦게 출발했다나...
네번째 만남: 그런데 다음날 숙소에 도착하니 그가 까페에서
스페인 사람들과 음식을 먹고 있어 어찌된 일인가 물으니
잠시 쉬는 중으로 10킬로 더 간다 함.
그래서 이번이 정말 이별일 거라 생각 기념사진을 찍음
다섯번째 만남:그런데 이게 웬일
다음날 숙소에 도착하니 같은 숙소에서 그를 발견
그는 오늘 20키로도 채 걷지 않은 것임
벤치에 앉아 카톡하며 또 가족들과 인사를 시킴
자기들도 기이한 인연이라 생각하는지?
저녁에 자기 전에는 한술 더떠 내일 5시에 같이 출발하자고 함
자기는 나보다 10킬로 더 간다며
믿어야 할지?
정말 헤어지고 싶지만 자꾸 만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내일을 기대하며~~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는,
12세기에 설립된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
현재 마을에는 기사단과 관련된 것은 거의 남지 않았으나,
마을의 이름에 끌린 많은 순례자들이 마을을 찾는다.
오늘 묵은 하께스 데 몰라이 알베르게는
8명이 한 방을 쓰는데, 남녀 각 4명씩 배정받음
코고는 사람 없이 적막하여 잠을 푹 잘 수 있었음
어제와 달리 밖에는 바람이 불고 추워 담요를 갖다 덮고 잠
빨렌시아에서 레온지방으로 오늘 넘어가는데 기온 차가 심함
반팔차림에서 다시 윈드쟈켓을 입어야 할 듯
어제 저녁 한 방을 쓰는 로사 자매와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눔
자매는 50세이고 어머니 간호를 27년째 하고 있다 함
성소가 있어 수도원에 갔다 어머니를 간호해야 할 처지가 되어
수도원을 나와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봄
본인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해
50세가 되면 자유여행을 하겠다고 생각하며 살다
친구 3명과 오기로 했는데, 2명은 사정이 생겨 혼자 오게 되었음.
처음엔 두려워 한국인과 동행하고 만나는 것이 좋았는데, 특히 처음 9일간
하지만 나도 만난 적 있는
40년 전 미국인과 결혼해 이민간 68세 자매 (17년전 이혼)가
영어도 잘해 함께 동행했는데 의견차이로 상처를 받음
또 한국분들은 만나면 모이기를 좋아해 단톡방을 만들어 연락하며
어느 곳에서 며칠에 만나 파티하고
이곳서 만나 순례중인 신부님과 피정하자고 수시로 연락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곳에 온 보람이 없다고 함
동행하던 분과 헤어졌고 한국 분들과 일정도 맞추지 않고
혼자만이 갈수 있는 거리를 조정하며
남은 순례길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 갖겠다 함
순례길 특히 프랑스길엔 한국인이 정말 많음
함께 장을 봐 조리하느라 주방은 한국인 차지.
삼겹살, 닭도리탕, 닭죽 스파게티 카레 등
먹고 싶은 것 모두 해먹음
하지만 시끄럽고 먹는데 치중
미사나 순례자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 소홀한 면이 있음
가능한 만나면 인사하고 헤어지는 정도로 대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
6월 4일 : 템프라리오스 – 칼사다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
17일 차(26.8Km)
순례길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슬프게 하는 것
기쁘게 하는 것
새벽에 비가 안 오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향기
보리밭 밀밭과 흙냄새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
드넓게 펼쳐진 들판
아스라이 보이는 스카이 라인과 하늘
바람에 스치는 향긋한 냄새
한낮의 나무그늘
쉼터와 식수대
성당의 종소리
마주치며 인사하는 말: ‘올라’ ‘부엔 까미노’
숙소에 도착 샤워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
카톡 응원 메시지를 보는 일
이 모든 것을 듣고 보고 맛보고 느낄수 있고 걸을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드림
슬프게 하는 것
길가에 순례자들 발에 밟혀 죽은 수많은 달팽이들
로드킬 당한 산토끼, 이름 모를 예쁜 새
신자는 줄고 낡고 허물어져 가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시골 마을 성당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가는 것
하지만 성당의 종소리는 변함없이 울리며 희망을 기원
로드킬 당해 죽은 새를 집어 길가 풀숲에 놓았다 하니,
카톡으로 딸이 하는 말
앞으론 그 위에 꽃 한 송이도 올려놓으라고
미처 그 생각을 못한 나의 측은지심의 한계
아직 사랑이 부족한 스테파노~
순례길 단상
순례길을 걸으며 계속 맞닥뜨리는 것은 템풀기사단의 흔적,
중세 순례자를 위한 병원 흔적,
까미노를 위해 헌신한 분들(성인,왕비 등).
순례자를 위해 건설된 다리들, 숙소, 성당등
이모든 흔적이 까미노에 남아있고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번성했던 마을들
그래서 마을이름에도 다 유래가 있고 까미노가 붙은 마을이름도 많음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 이름이 하케스 데 물라이 인데,
이 마을이 과거 템플기사단의 근거지였고
하케스 데 물라이는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수호자였음
여기서 잠깐 템플기사단이란?
1차 십자군 전쟁 승리 후
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위해
1119년말 프랑스 귀족 위그드파생 주도로
뜻을 같이하는 8명이 모여 9인 기사단을 조직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왕 보두앵2세는
예루살렘성전 언덕에 기사단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 터가 옛날 솔로몬왕의 성전이 있었던 자리로,
기사단의 이름을 성전(템플)기사단이라 짓게 됨
이들의 폭발적 성장에 두려움을 느낀
바티칸과 여러 왕들의 음모에 의해 1307년 10월 18일 금요일
중세 최대 검거작전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짐.
여기서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말 유래
그 무렵 무어인들을 상대로 국토회복 전쟁(레콩키스타)이 한창이던
스페인이 도망친 기사들을 받아들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수호하던 기존의 기사단에 통합시킴
그래서 산티아고는 가장 안전한 순례길이 되었고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됨
간식먹고 제법 큰 마을인 사아군 도착 몇 군데 돌아보고 있는데,
종소리가 수십 번 들림
이는 미사한다는 소리.
부지런히 달려가니 5분전. 미사 잘 드림
어제 로사 자매와 오늘 숙소에는 성당이 없어 주일미사 걱정을 했는데
순례도중 미사드릴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심.
‘야훼이레’ 주님이 다 마련해 주신다
미사도 스페인와서 제일 격식있는 미사였고,
수녀님들이 독서 성가 파이프 올갠 등 연주
감명깊은 미사였고 큰 성체를 쪼개는데 1분? 꽤 오래 걸림.
모든 미사 참여자 큰성체 모심
이 마을에서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첫번째 길은 로마 시대의 길인 트라야나 가도(Via Trajana)로 가는 오래된 길인데,
이 길은 고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다녔으며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렸다.
또 다른 길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로
베르시아노스, 엘 부르고 라네로,렐리에고스를 지나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까지 가는 길이다.
이 길은 평지 위에 나무가 무성하여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카사 엘 쿠라
순례시작한 후 처음으로 편안한 숙소.
15유로로 조금 비싸지만 2인실 침대.
보통 알베르게는 5~10유로. 너무 안락했슴.
이곳에서 처음으로 체코 학생을 만남.
너무 작고 조용한 마을이라 쉬며 재충전 할 시간이 많고
숙소도 안락해 그 동안 느꼈던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6월 5일 : 칼사디야 데 로스 에르마니요스 –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18일 차(24.5Km)
오늘은 온종일 칼사다 로마나의 오솔길을 걸음.
고대 로마 때 닦인 이 길은 지금도 거의 훼손되지 않음
이 길은 아키타나 길의 일부로 아키타나 길은
갈라시아의 금광을 아스토르가를 경유하여 로마와 연결되도록 건설된 동서 고속도로였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칸타브리아 원정 시에도 사용됨
이후 이슬람 군대와 샤를마뉴를 포함한 그리스도 군대가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을 빼앗기 위한 전투에서도 사용됨.
재정복 후 이 길은 순례자의 길로 알려지게 됨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
이 도시는 레온 왕국과 까스띠야 왕국 사이에 있다는 점 때문에
중세 시대까지는 방어 도시의 역할을 했었다.
첫댓글
찰스 랜드보로
참 좋아 했던 곡들인데
오늘 게시물에 함게 해 주셨네요
늘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