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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24≫ ◆제자 ,사도◆
◆사도◆
'사도'의 어원은 '파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 apostello이며 이의 명사형인 apostolos 즉, 사도는 '보내진 자' 또는 '파견된 자'라는 의미이다. 성서에서 '사도'는 초기에 예수를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사도'라는 칭호는 예수가 그의 교회를 세우고,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들과(마태 10:2, 사도 21:4) 이방인들의 탁월한 사도였던 바울로에 국한되어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12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던 시기에는 '제자'들로 불려졌으나 예수가 승천한 이후부터는 '사도'들로 기록되고 있다. 제자들에게 최후의 만찬을 베푸는 자리에서 예수는 이들을 사제로 임명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들은 성령강림절 이후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가르쳤던 바를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초대교회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사도’는 사도직을 계승한 주교 등 성직자뿐만 아니라 사도적 활동을 하는 평신도들에게도 해당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는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는 성직자나 평신도나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이라는 것과 교회 건설에 평신도들도 고유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교령 25)을 성직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베드로◆
첫번째 교황이며 십이 사도들의 지도자. 갈릴리에서 어부 요나의 아들로 태어나 아우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던 중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원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가 그에게 베드로 또는 아람어로 게파(Cepha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요한 1:42) 베드로나 게파는 둘 다 ‘바위’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그의 강한 성격에도 어울리지만 후에 그리스도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하심으로써 그의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베드로가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서에서 그의 이름은 사도들의 명단 중 언제나 제일 처음에 기록되었으며(마르 3:11) 다른 어떤 사도들의 이름보다 빈번히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다(루가 5:10). 베드로는 사도들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며 예수가 사도들에게 질문할 때마다 그들을 대신하여 답변하곤 하였다. 베드로는 또한 예수의 거룩한 변모(transfiguration)의 증인이며(마태 17:1-8) 예수가 야이로의 딸을 살려냈을 때 그와 함께 있었고(루가 8:51) 게세마니에서 그리스도가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하고 있을 때도 그와 함께 있었다(마르 14:33). 예수는 자신과 베드로를 위하여 성전세를 바치셨으며(마태 17:24-27)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음을 알려주면서 천사는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라”(마르 l6:7)고 말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 베드로는 유다의 후계자를 뽑는 모임을 마련했으며(사도 1:15-26)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참석했던 예루살렘 회의를 주관하고 논쟁을 잠잠케 하는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사도 15:6-12). 4복음서에 기록된 그 밖의 많은 일화들이 베드로의 지도자적 역할을 명백히 해주고 있으며 그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신(요한 21:16-17)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였다.
베드로는 여러 가지 강점들을 지니고 있었으나 때로는, 인간적인 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성급함은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동산에서 대사제의 종 말코스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린 사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요한 18:10). 그는 메시아적 사명을 잘못 해석하여 예수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고(마르 8:33) 예수와 자신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비겁함을 드러내고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루가 22:54-62).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들 중의 그 어느 것도 예수가 그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고 말씀하심으로써 부여한 그의 역할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승천 후 베드로는 그리스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아그리파(Herod Agrippa) 1세에게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소아시아 및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로마에서 잠깐 동안 그리스도 교단을 주재하였으나 네로의 폭정 아래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후에 로마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안드레아◆
열두 사도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 벳사이다 출신(요한 1:44)의 어부이며 예수를 처음 만나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냈을 때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이튿날 형 시몬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를 찾았을 때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냐? 앞으로는 너를 게파라 부르겠다"라는 말씀을 들었다(요한 1:35-42). 이들 형제는 갈릴리아 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었다(마르 1:16-18). 예수를 뵙게 하여 달라는 그리스 사람들의 간청을 들어 필립보와 함께 예수께 말씀드린 사실(요한 12:20-34)에서 두드러진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을 집에 모셨고(마르 1:29)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예수께 질문했고(마르 13:3-4) 5,000명을 먹인 기적에서 한 소년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고 보고하였다(요한 6:5-10).
위경 ‘사도 안드레아의 행전’은 비신화화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전을 간직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아는 북 그리스, 에피루스(Epirus) 등지에서 선교하였다. 70년경 그리스 파트라스(Patras)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였다(축일 11월 30일). 그래서 그리스도 예술에는 십자가를 든 모습이 많다. 러시아와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사목서간◆
1. 개관 :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등 세 서간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 직분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교회의 제도와 조직 그리고 이단 단죄 등 사목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서간의 문체, 어법, 내용, 신학사상도 서로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다. 이렇게 세 서간은 두드러지게 단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18세기부터 '사목서간'이라 불려왔다. 이들 사목서간에는 초대 교회의 제도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와 함께, 초창기의 교회론적 가르침과 그리스도론적 가르침에 관한 전승도 수록되어 있다(1디모 3:16, 6:15-16, 2디모 1:8-10, 2:8-13, 디도 3:4-7).
2. 필자 문제와 집필 연대 : 사목서간은 서기 180년경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목록에 바울로의 서간으로 배열된 이래 바울로의 친서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사목서간의 문체, 내용, 신학적 용어 등이 바울로의 친서들과 다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바울로 친저설을 부정하는 가명작품설이 제기되었다.
① 사목서간에 전제되어 있는 역사적 상황이 바울로의 친서들과 사도행전에 묘사된 그의 생애 및 전도활동과 부합하지 않는다.
② 용어와 문체도 바울로의 친서와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바울로 특유의 개념들이 사목서간에서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의화'라는 개념이 바울로의 친서에서는 하느님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상태를 뜻하는데, 사목서간에서는 인간이 스스로 닦아야 할 덕을 의미한다(1디모 6:11, 2디모 2:22, 3:16). 그런가 하면 바울로의 친서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은 '경건함' 또는 '건전한 가르침'이란 말이 사목서간에서는 중요한 용어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 사목서간의 문체도 바울로의 친서 같은 박력이나 다양성이 없고, 대체로 평면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다.
③ 사목서간의 신학사상은 바울로의 사상과 일치하는 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사목서간의 필자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목자로서 전통을 중시한다. 그 전통의 내용은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으로써, 필자는 이를 '건전한 가르침'(1디모 1:10)이라 하며 충실히 지키려 하였다(1디모 6:20, 2디모 1:12-14). 한편 바울로와의 뚜렷한 차이점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바울로는 예수의 재림을 뜻하는 낱말로 '파루시아'(내림)란 말을 썼지만, 사목서간의 필자는 '에피파니아'(현현, 현시)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은 예수의 재림뿐 아니라 예수의 육화(강생)도 가리킨다(2디모 1:10, 참조 디도 2:11, 3:4). 둘째로, 바울로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구원사건으로 보았는데, 사목서간의 필자는 예수의 지상생활 전체를 구원사건으로 보고 있다. 셋째로, 바울로의 '의'란 믿는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 상태로 보았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경건성'과 비슷하게 도덕적 성실성으로 보고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어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로, 바울로는 결단이 요구되는 신앙행위를 강조했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신앙의 내용, 곧 전해 받은 가르침(말씀)에 역점을 두고 있다. 다섯째로 바울로는 세말이 곧 다가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사목서간의 필자는 세말을 먼 미래의 일로 보고 교회 공동체와 현세의 질서를 중시하였다.
④ 사목서간이 쓰여진 무렵에는 확실히 이단자들이 공공연하게 준동하며 일반 신도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이 이단자들은 유태교와 그노시스(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단의 유태교적 요소는 족보 시비, 또는 ‘꾸민 이야기’와 율법에 관한 토론 등에서 엿볼 수 있고 (1디모 1:3-4, 디도1:10-14, 3:9), 그노시스주의적 요소는 그릇된 금욕주의, 예컨대 결혼을 금하고(1디모 4:3) 자기들은 이미 영적으로 부활하였다고 믿은 데서 엿볼 수 있다(2디모 2:18). 사목서간의 필자는 이단의 오류를 바울로처럼 일일이 논박하지 않고, 오직 그것이 건전한 가르침과 어긋나니 철저히 배격할 것을 역설한다(1디모 6:3, 2디모 2:14).
⑤ 사목서간에서 살필 수 있는 교회상은 바울로의 친서들이 보여주는 교회상과 많은 차이가 있다. 사목서간에는 이미 교계제도가 상당히 기틀이 잡혔고, 감독자 장로봉사자 등 성직자들은 특별한 자격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바울로시대에는 성령의 작용인 은사가 다양했지만, 사목서간이 씌어진 시대에는 예언의 은사만 남고(1디모 1:18, 4:14), 그 밖의 은사들은 교계제도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상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사목서간은 바울로의 친서가 아니라, 후대에 바울로를 존경하며 그의 사상에 심취한 성명미상의 어떤 사람이 집필한 가명작품으로 추론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집필연대는 대체로 서기 100년경으로 추정하면 무난할 듯하다. 왜냐하면, 사목서간에서는 감독자와 장로가 구별되지 않고 있지만, 서기 117년경 안티오키아 주교 이냐시오가 막네시아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3:2, 6:1) 감독자를 교회 최고 지도자로 지칭하고 장로들이나 봉사자들과는 명확히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내용 : ①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는 이단의 사설을 배격하고, 전해 받은 ‘건전한 가르침’에 따라 정통신앙을 지킬 것을 권고하고(1:3-10·18-20, 4:1-11) 참된 예배를 강조한다(2장). 또한 성직자의 자격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 임명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3:1-13, 5:17-25). 그리고 교직자 자신이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4:12-16) 신도들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어느 계층이건 두루 보살피는 한편 교회의 규율 확립에 진력할 것을 촉구한다(5-6장).
②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는 전서에 비해, 형식상의 수신인인 디모테오에 관한 개인적 이야기가 많지만, 그 목적은 전서와 같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떳떳이 신앙을 고백하고(1:6-14), 이단자들에 맞서 건전한 가르침을 지킬 것을 권고한 다음(2-3장), 바울로의‘유언’형식으로 교직자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명령한다(4장).
③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 둘째 편지와 마찬가지로, 성직자의 자격과 자질을 강조하고(1:5-9), 이단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칠 것을 촉구한다(1:10-16, 3:9-11). 그리고 각 신분에 따르는 처신의 규범을 밝히고(2장), 성직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특히 신도들을 올바르게 가르쳐 선행을 하게 하라고 당부한다(3장).
4. 가명작품에 대하여 : 가명작품(위서)은 구약 말기부터 서기 1-2세기에 걸쳐 널리 이용되던 문학유형의 하나였으며, 그것을 현대의 관점에서 한갓 거짓말이나 위조작품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명작품의 저자들은 대개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을 빌어 자기작품을 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품의 권위를 높일 뿐 아니라, 그 위인의 사람됨과 사상을 되새겨 그가 만약 자기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이러저러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것을 작품화했던 것이다. 사목서간의 필자도 같은 생각에서, 지난날 사도로서 명성을 떨친 바울로가 그의 제자이며 협조자였던 디모테오(사도 16:1-3, 필립 2:19-22)와 디도(갈라 2:3, 2고린 2:13, 7:6·13, 8:6·16·23, 12:18)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서간을 썼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학유형을 택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울로 사도의 신학사상을 자기시대, 자기 환경에 적용하여 당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가명작품이라고 해서 성서의 무류성을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도 "성서 저자가 말하고자 한 바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저자의 시대에 널리 통용되고 당시 사람들의 공동생활에서 관습화되었던, 감정과 말과 이야기의 표현양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하였다. (金允桂)
◆파견◆
‘임무를 부여하여 보낸다’라는 의미를 가진 파견이란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지만, 대체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최고의 파견은 삼위일체의 파견이다. 즉 하느님은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제2의 위격(persona)인 예수 그리스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파견하였고,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파견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제1위격인 성부로부터 파견된 자의 권위로 제자들을 파견하였다(마태 11:5, 마르 6:7-13, 루가 9:1-6, 10:1-12). 파견된 제자, 즉 사도들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계서 주신 모든 법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다(마태 28:19-20). 마지막으로 사도들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성직자들은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한다. 즉 미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미사를 집전한 사제가 강복을 내린 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로써 신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는 것이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바울로◆=바오로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의 한 사람. 십이 사도의 일원은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가장 큰 활약을 한 사도였다. 칠리치아(Cilicia)의 타르소(Tarsus)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는 성장한 후 광신적인 바리사이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박해로 악명이 높았다(사도 8:3). 그러나 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된 바울로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개종하였다(사도 22:10). 바울로가 그리스도교를 처음 전하기 시작했을 때 교회 내에서의 그의 위치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그를 변절자라고 욕하였고 그리스도 교도들은 그의 박해에 대한 초기의 평판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바르나바는 특히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그는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에 바울로를 데리고 가서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일과 또 다마스커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대담하게 전도한 일들을 낱낱이 설명해주었다(사도 9:27). 바르나바의 변호가 효과가 있어 안티오키아 교회는 키프로스, 밤필리아, 이고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등으로 이어지는 전도 여행에 바르나바를 지도자로 바울로와 마르코를 보조자로 각각 임명하여 파견하였다(사도 13:14). 첫 번 전도 여행을 완수한 후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당시 할례를 강요라던 낡은 율법의 지지자들에게 보다 완화되고 보편적인 그리스도교 사상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 무렵 유대에서 몇몇 사람이 안티오키아에 내려와 교우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와 그들 사이에 격렬한 의견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교회는 바울로와 바르나바와 몇몇 신도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다른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게 하였는데(사도 15:1-2) 베드로가 이 회의를 주관하였다. 모든 견해들이 피력된 후에 마침내 바울로와 그의 동료들의 견해 즉,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유태인이 될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승리를 거둔다(사도 15:5-21). 회의를 마친 후 바울로는 두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나는데 이 여행에서 그는 프리기아, 갈라디아, 필립비, 데살로니카, 베레아 지방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모든 신도들을 격려하였으며(사도 18:23) 세 번째 전도 여행에서는 마체도니아와 그리스를 방문하였다. 이 세 차례의 전도 여행에서 바울로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으나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릴 만큼 사도로서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그는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을 서간문의 형식으로 저술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그가 재판받기 전 투옥되어 있던 2년 동안에 쐬어진 것이다. 67년경 바울로는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손에 순교하였으며 그의 시신은 현재 성 바울로 대성전에 안치되어 있다.
◆루가◆
복음사가. 축일은 10월 18일. ‘사랑하는 의사’(골로 4:14)요 바울로의 ‘동료’(필레 1:24)로서 바울로의 죽음 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2디모 4:11)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셋째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이다. 이교도 출신의 개종자이며(골로 4:11 · 14 참조) 자신이 저술한 내용을 목격하지 않았으므로(루가 1:2) 일흔 두 제자의 하나도 아니고(루가 10:1) 엠마오로 가는 길에 글레오파와 동행한 자도(루가 24:18) 아니다. 토로아스에서 처음으로 바울로를 만났고(사도 16:10) 수년 뒤 필립비에서 다시 합류했으며(사도 20:5) 바울로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고(사도 21:1-18) 체사레아와 팔레스티나와 로마에서 구금된 바울로와 함께 머물렀다(사도 27:1-28:16).
전승에 의하면, 루가는 미혼이었고 84세를 일기로 아카이아(비타니아 혹은 이집트)에서 별세했는데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리스도교 회화에서는 대개 저술가 또는 소(牛)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의 상징(에제 10:14, 묵시 4:7)으로 표현한 것은 루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품 때문일 것이다.
◆바르톨로메오◆
열두 사도의 하나. 축일은 8월 24일. 바르톨로메오는 공관복음서(마르 3:l8, 마태 10:3, 루가 6:14)와 사도행전(1:13)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름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며 그밖에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1:45-51, 21:2)에 나오는 나타나엘(Nathanael)은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이라 추정할 수 있다. 양자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일찍이 주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이 공관복음서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열두 사도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가 요한복음에 언급이 없는 사실이 부자연스럽다는 점, ‘바르톨로메오’는 ‘달메의 아들’(bar-Talmai)이란 뜻으로 성(姓)이므로 이에 이름이 있으리라 보며 나타나엘은 그의 이름일 수 있다는 점, 공관복음서에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가 함께 나열되어 있고 요한복음(1:45-46)에서 또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께 데려갔다고 하여 함께 소개되어 있는 점 등을 그 논거로 한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톨로메오는 이디오피아, 인디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성무일도서에 따르면 그는 또한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거기서 순교하였는데, 살아 있는 채 피부가 벗겨지고 참수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벗겨진 피부를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최후의 만찬◆
그리스도가 수난하고 죽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같이 가진 그리스도 최후의 식사를 전통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이 때 그리스도는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공관복음서들은 만찬의 준비와 제자의 배반 예언, 그리고 성체성사의 성립에 대하여 전하고 있으며(마태 26,17-29, 마르 14,12-25, 루가 22,7-38),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가 제자에게 남기는 최후의 말씀들을 매우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성찬식(聖餐式)을 세우셨다는 언급은 없으며 서간성서들 가운데 1고린토 11,23-25에 성찬식에 관한 언급이 나타난다.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졌던 날이 언제인가에 관하여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는 각각 다른 견해를 보이는 듯 하나 전통적으로는 공관복음서를 근거로 하여 과월절을 준비하기 직전, 즉 과월절이 시작하는 목요일 저녁으로 믿어져 왔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바르나바◆
사도. 키프로스섬의 레위족 출신으로, 바르나바란 이름은 ‘위로의 아들’이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요셉(사도4:36)이며 성 마르코의 사촌(골로 4:10)이다. 바울로와 함께 안티오키아 지방과 예루살렘 지방을 왕복하면서 예언자와 교사로 활동했고(사도 11:22 이하), 바울로의 제 1차 전도여행에 동반하였다(사도 13:4-14:26). 사도회의에서 바울로와 함께 유태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사이파 출신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격렬하게 논쟁하였다(사도 15:1-29). 그 뒤 바울로의 제 2차 전도여행 때 마르코의 동행문제로 바울로와 충돌했고, 마르코와 함께 키프로스섬으로 떠나갔다(사도15:36-39). 그밖에 1고린 9:6, 골로 4:10에도 바르나바에 대한 기록이 있고,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가 지은 ≪Hypotyposeis≫, 에우세비오의 ≪교회사≫, 위(僞)글레멘스의 ≪성서성훈≫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재회록≫(Recognitiones)에 의하면 마태오와 동일인이라고도 한다. 테르툴리아노의 ≪De pudicitia≫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르나바라고 말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키프로스섬의 살라미나에서 유태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7세기 ≪로마 미사경본≫에도 그의 이름이 보이고 9세기 이후 축일표에는 6월 11일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마르코◆
?-75년경. 사도 바오로의 제자였던 마르코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따라 전교 여행을 하였다. 두 번째 복음의 저자인 그는 사도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다고들 한다. 마르코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현시에 나오는 네 가지 상징적 생물 가운데 사자로 묘사된다. 사자는 포효하는 소리로 광야를 뒤흔든다. 이렇게 마르코가 사자로 묘사되는 까닭은 그의 이야기가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 세례자의 사명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웠고 거기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공증인들의 수호성인이다. 전례 거행은 4월 25일(축일)이며 주제는 우리가 복음 선포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전례사전]
◆베드로와 바오로◆
1. 베드로 : 베드로는 갈릴래아 어부 요나의 아들로 태어나, 동생 안드레아와 어업에 종사하던 중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본명은 히브리어로 시몬이었으나 예수께서 게파(아람어 Kepa, 베드로)라고 이름지어 주었다. 여기 베드로의 뜻은 바위(盤石)를 의미한다(요한 1,42; 마태 16,18).
그리스도 승천 후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되었으며, 지도적인 중심 인물이 되어 초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64년 네로 황제의 폭정하에서 순교하였다.
2. 바오로 : 바오로는 예수님의 직제자는 아니나, 초기 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이방인의 전도사였다. 그는 칠리치아 타르소에서 유다인으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리사이파였다. 그의 유다인 이름은 사울(Saul)이었으며,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박해자였다.
그러나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인 개종을 하였다(사도 22,10).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개시하면서 보다 친근감을 갖도록 자신을 바오로 사도라고 스스로 불렀다.
그의 생애와 사상은 서간(27권 중 13권)과 사도 행전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예수 승천 후 3회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하였고, 67년경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독신으로 살았으며, 베드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초대 교회의 사도였다.
◆파견◆
이는 라틴어로 미시오(Missio, 보낸다)라고 한다. 하느님은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를 파견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 역시 하느님의 권위로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파견받은 제자를 사도(使徒)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께서 명한 모든 것을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파견받았기 때문이다(마태 28,19-20).
그리고 사도들은 그 후계자를 온 세상에 파견하였다. 그 후계자들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성직자를 말한다. 이 후계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미사 성제를 마치고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로 신자들을 세상에 파견한다.
출처 : [용어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