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김병환
흙과
친해질수록
건강은
멀어져 가고
기계가
일을 해줘도
손발은
할 일이 많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욕심이
사라지는데
편리함
추구하다가
나약한
농부가 된다
김병환 시인의 작품 농부는 짧고 간결한 시행 속에 농업의 현실과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그리고 자기 성찰의 깊이를 담아낸 수작(秀作)입니다
흙과 / 친해질수록 / 건강은 / 멀어져 가고
기계가 / 일을 해줘도 / 손발은 / 할 일이 많다
농업이라는 육체노동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역설을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흔히 대중은 흙을 벗 삼는 삶을 건강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로 낭만화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흙과 친해질수록 건강은 멀어져 간다라는 냉정한 진실을 던집니다. 이는 농사가 치열한 육체적 소모를 동반하는 엄연한 노동임을 아프게 짚어내는 대목입니다.
손발은 할 일이 많다고 말합니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농부 고유의 세심한 손길 즉 생명을 돌보는 정성과 끊임없는 잔손질의 영역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현대화된 농촌에서도 변하지 않는 농부의 숙명과 근면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냅니다.
마음이 / 가난해져야 / 욕심이 / 사라지는데
마음이 가난해져야 라는 표현은 종교적 철학적 비움의 경지를 연상 시킵니다.
자연을 상대하는 농부는 필연적으로 날씨와 수확량 등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과 마주하게 됩니다. 시인은 더 많은 수확과 이익을 바라는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마음을 비워내야 함을 스스로에게 나직이 타이르고 있습니다.
편리함 / 추구하다가 / 나약한 / 농부가 된다
기계와 기술이 주는 편리함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 본연의 자생력과 야성 그리고 인내심을 앗아 갑니다.
시인은 편리함에 길들여져 육체적·정신적으로 유약해지는 자신을 경계하며 나약한 농부가 되지 않겠노라는 결연한 다짐을 보여줍니다. 이는 비단 농부라는 직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노예가 되어 주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엄중한 성찰입니다.
김병환 시인의〈농부〉땅을 일구며 얻은 삶의 지혜를 한 편의 격언 시처럼 밀도 높게 완성해 낸, 대기만성(大器晚成)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