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난맹첩』1
석야 신웅순
『난맹첩』은 추사 김정희의 묵란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상하 두 책의 서화첩이다. 다양한 난에 각기 짧은 화제들이 쓰여 있으며 별지에는 유명한「사난결」이 있다. 2018년 6월 27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83호로 지정되었다.
인품이 고고특절하여야 화풍도 높아지는 것인데 세인이 공연히 형상만 같이하기에 애 를 쓰거나 혹은 화법으로만 꾸려 가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또 비록 9천9백99분까지 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나 9천9백99분까지 갔다고 난이 되는 것이 아니요 그 9천9백 99분까지 간 나머지 1분이 가장 중요한 난관이니 이 난관을 돌파하고서야 비로소 난을 그린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1분의 경지는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하자 면 인력으로 되는 경지가 아니요 그렇다고 인력 이외의 것도 아니라 하였다.
그 1분이 인품의 고하가 작품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난맹첩』작품 중에서도「세외선양」,「국향군자」등은 추사 난초 그림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구도가 파격적이고 난초와 화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어울려 화법으로는 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유홍준,『추사 김정희』,창비,220-221쪽)
잎이 꺼칠하고 길게 꺾이거나 짧게 잘리고 휘어지기도 해 잡초 같은 느낌이 들기도한다. 그러면서 고졸하고 조야한 멋이 있는 것은 추사의 예서 서법과 품격에서 비롯된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추사는 아들 상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초를 치는 법은 또한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 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식대로 하는 것을 가 장 꺼리니 만약 그리는 법식을 쓰려면 일필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위의 책,221쪽)
‘예서’ 쓰는 법으로 묵란을 그리라고 했다. 차별되는 김정희만의 독특한, 서법에 따른 묵란화론이다. 추사는 묵란을 그림보다는 글씨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중에서 난이 제일 어렵다고 했다. 산수·매죽·화훼·물고기 등 각 장르마다 대가가 있지만 유독 난초만은 특별히 소문난 이가 없고 황공망·문징명 같은 문인화가도 난초를 잘 그리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어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나라의 정사초·조맹견이 난초에서 이름을 얻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인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위의 책,222쪽.)

「국향군자」
이것이 국향이고 군자이다 此國香也君子也
구도가 파격적이다.
난 한포기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다. 중앙에서 좌우로 교차해 긴 두 줄기 잎이 화면을 시원스럽게 갈랐다. 둘레에는 꼿꼿하게 꽃대를 세웠고 꽃은 활짝 피우게 했다. 굵지않은 필선으로 화면 전체를 휘어감듯, 나라 제일의 향기를 토해낼 것 같은 난이다. 이것이 국향이고 군자(此國香也君子也)이다. 도덕경의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 대교약졸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산심일장란(山深日長蘭)」
산이 깊어 날이 길고 山深日長
인적이 고요한데 향기가 스며드네 人靜香透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난잎의 방향은「묵란도」와 거의 같으나 멀리 뻗어나간 것이 다르다. 멀리 뻗어나가고 싶은 그 무엇이 추사에게 있었을까. 농묵의 잎에 담묵의 꽃, 난잎 굵기의 다양한 변화, 가지런하면서도 각기 뻗어나간 필세를 볼 수 있다.
김정희의 명호는 300여개나 된다. 호는 추사의 삶의 일부였으며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의 메시지였다. 추사의 명호는 세상과의 하나의 소통 통로였다.
‘나이 많은 가시 연꽃’ 노검(老芡)이라는 낙관을 사용했다. 연은 진흙에서도 더럽히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향기가 멀리까지 가는 군자 같은 꽃이다. 나이 많은 가시연꽃, 당시 추사에게 노검은 무엇을 상징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김정희의 「묵란도」. 오세창의 「근역화휘」에 수록된 작품으로 추사의 난 그림 중 가장 정법에 가까운 작품이다.
화제에 정음거사에게 주었다고 적혀 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난맹첩의 마지막 화폭「염화취실」화제 끝에는 ‘거사가 명훈에게 그려주다(居士寫贈茗薰)’가 씌여져 있다. 유명훈은 추사의 제자로 표구를 잘하는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표구장인)이다. 그는 철종 어진의 회장인(繪粧人)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에게 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사의 제자에 대한 사랑과 장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름을 엿볼 수 있다.

추사의 「염화취실(斂華就實)」
이것은 끝 폭이다. 새로운 방법으로도 기이한 격식으로도 그리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게 되리라. 거사가 명훈에게 그려주다.
此爲終幅也, 不作新法, 不作奇格. 所以斂華就實. - 居士寫 贈茗薰
왼편 추사의「염화취실」은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추사 난맹첩 상권의 마지막 작품이다. 화려함을 거두고 실로 나아간다는 삶의 교훈을 담고 있다. 고즈녁한 자태에 그윽한 기품, 휴식과 평화로움을 엿볼 수 있는 난이다.
월간서예 2019.5.138-139쪽.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
졸글인데 늘 찾아주시네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