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동그라미
우리 집 Family room에는 아주 오래된 3인용 소파가 있습니다.
한 30년 전에 한국에서 구입해서 이민 올 때 대형 이사 짐에 함께 실려왔었던 것입니다.
진 곤색 바탕에 연 푸른 꽃무늬가 우아하고, 쿠션이 오래도록 변형되지 않고 상태가 좋은 편이라서 아끼며 애용하던 것이었죠.
이제 자리도 비좁고 해서 처분하려고 ‘trade me’에도 올리고,
가까운 중고 물품 가게에 문의했더니, 우선 와본다고 했습니다.
전화로 통화했던 맑고 명랑한 목소리의 곱슬 머리 키위 남자가 들어 오더니, 우선 그 소파에 앉아 보았죠.
“it is a beautiful sofa!” 하길래,
얼른 나도 “it was!” 맞장구 쳤지만,
그는 더는 아무 말도 않고 웃으면서 일어섰어요.
그리곤 집안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정원이 좋다고 탄성을 질러가면서도,
우리가 팔고자 하는 가구엔 아무런 흥정이 없었죠.
이것 저것 명랑한 말투로 묻고 이야기하고, 벽에 걸린 그림을 품평까지 하는 거예요.
마치 초대 받아서 집에 놀러 온 손님처럼 느긋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게,
스스로 그의 직업을 무척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키위들은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이 적어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가 가고 나서, 나와 남편은 ‘우리가 얼마나 착각을 하고 있었던가!’ 하고 웃었어요.
오랫동안 우리가 손때 묻혀가면서 이사 다닐 때 마다 끌고 다니던 그 무거운 가구가,
다른 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더구나 그것을 다시 되팔아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그 쇼파의 가치는, 그저 오랜 애착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잊고 있었다니!
내게 소중했던 것이기에, 아직도 그 value를 조금이라도 인정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깨기에 충분한 오후였습니다.
다음날 ‘Trade me’를 통해 오클랜드 북쪽 마을에서 어느 노부부가 장거리 운전을 하고 그 소파를 가지러 왔어요.
할아버지는 이곳에 도착해서 이미 지쳐 있었고, 무거운 소파는 남편과 내가 간신히 올려 실어 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소파 등받이를 손으로 쓰다듬으시면서
‘it`s lovely colour but quite old’ 하시네요.
‘I have special care with love for a long time’ 이라고 말씀 드렸죠.
트레일러에 실린 그 소파가 이제 새 주인과 함께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물건도 정이 들면 살아있어서 그 뒤 모습이 서운했습니다.
어느 절에 주지 스님이 마당 한가운데 큰 원을 그려놓고 동자승을 불러서
“내 마을에 다녀 왔을 때, 네가 아직도 이 원안에 있으면 오늘 하루 굶을 것이다.
하지만, 원밖에 있으면 이 절에서 내 쫓을 것이다.”
그러고는 마을로 나가셨어요. 동자승은 난감했습니다.
원안에 있자니 굶을 것이고, 원밖에 있으면 절에서 내쫓김을 당할 상황이었으니까요.
한동안 원을 바라보던 동자승은 마당 한구석에 놓인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스님이 그려놓은 원을 쓱쓱 지워버렸습니다.
원이 없으니 원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원 바깥에 머문 것도 아닌 것이니
동자승은 원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원을 그리고, 스스로 그 안에 갇혀 삽니다.
어떤 경우는 전혀 의미가 없는 아집일 때도 있고, 지나친 욕심으로 , 때로는 성급한 화냄으로,
그리고 부끄러운 어리석음으로 인한 시기심으로…...
자신이 만든 그 울안에서 벗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만든 그 원의 존재를 인지 하지도 못 합니다.
그것이 절 마당에 그려진 원이라도,
무슨 대단한 것처럼 집착하면서 인생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어디건 선을 그으면 바로 경계가 생깁니다.
그러면 그 경계에 끄 달리게 되죠. 또한 누구나 그 선의 기준은 바로 자신입니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지식과 경험, 가치관, 선입견……. 이런 것들로 무장한 ‘나’ 라는 잣대를 들고,
세상을 판단하고 가르고 분별해서 결정합니다.
나의 주관은 아주 뚜렷하고 단호 하기 까지 합니다.
아기들은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무런 분별 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부모와 학교가 꼭 필요하다면서, 수 많은 분별을 가르칩니다.
명석한 기억으로 분석하고 나누고 선별하는 것을 잘하면, 똑똑하다고 인정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서 고금의 현자들이 얘기하는 인생의 깨달음은,
그 분별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까지 자라면서 배우고 학습해온 방식을 바꾸라고 합니다.
나의 주관이 그저 나만의 주관 임을 알면, 그 마음의 동그라미를 지우면서 살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주관을 객관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 들수록 버리고 사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모으기만 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한해 한 해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설익은 젊음이 알기 어려운 경험의 지혜를 터득해가는 일입니다.
이제 정리하고 단순화하고 그때 그때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결국 다 버리고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살아 있을 때 주면 선물이고, 죽고 나면 아무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내 소지품들은, 적으면 적을 수록 좋겠지요.
그래도 늘 언제였나 싶게, 서랍에 가득 넘치게 되고 맙니다.
그 자질구레한 것들 말고, 내 마음이 넘치게 부자였으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한 한해가 되길 바라면서……
2022년 새해 정월에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 마음에도 동그라미가 있나 들여다 보았더니 동그라미보다 더한 높은 성이 있네요. 나도 못 넘고 남도 못 넘어오는 높은 성이.... 올해엔 이 성을 깨버려야겠습니다.
갈때는 편하게 바람처럼 훌훌 떠날 수 있도록 주변을 잘 정리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시골에 살다 보면 집으로 오는 작은 물건 하나라도
훗날 요긴하게 쓸 거라 생각하고 모아 두었던 저 잡동산이들....고민하고 있습니다.
산에 갈 때는 배낭 하나만 들고 갑니다.
그 안에는 이불도 있고 주방도 있고 옷장도 있습니다.
배낭만 있으면 며칠 지내는 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배낭 하나의 짐만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배낭 열 개 백 개를 짊어지고 사니...
더는 필요없는 없는 것을 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사는 게 그나마 자위가 되곤 합니다.
좋은 글에
늦게 댓글을 달아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