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이런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영생하는 샘물이 흐르는 동굴이 있다는 것이다.
바보 3형제가 고생과 수고 끝에 드디어 그 동굴을 찾았다.
동굴 입구에는 안내문까지 자세히 적혀있었다.
동굴안의 이 물을 마시면 영생한다.
그러나 동굴안에서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즉시 죽는다.
동굴에 들어온 큰 형이 말했다.
“야! 너희들 절대 말하면 안돼!
그러면 죽어”
둘째가 대답했다.
“알어, 말하면 뭐해,
좀 전에 안내문까지 봤쟎아”
그러다 살아남은 막내가
두 손을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나는 살았다!”
결과가 어찌 되었을까?
너무 바보같은 바보형제이야기지만,
정말 인생이 그렇다.
안다고 다가 아니라
정말 아는 데로 살아갈 때,
믿는 데로 행할 때 능력이 오는 것이다.
한 나라와 개인의 흥망성쇠는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 행복하기를 열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모두가 다 자신의 삶은 행복하기를 기대하는데
어떤 이들은 불안과 염려속에서
평생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늘속에서 평생을 보내기도 한다.
정말 하나님이 인자와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하면
의인이 잘 되고,
악인이 못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세상을 보고 절망합니다.
“[2] 나는 미끄러져 거의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3]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사는 것을 시샘한 탓이옵니다. [4]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 찌고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릅니다. [5]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며 사람들이 당하는 쓰라림은 아예 모릅니다.”(시 73:2-5, 공동)
그러나 시편기자의 고민은 드디어 답을 얻습니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6-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참으로 인생의 참된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성경의 역사속에서
우리는 변함없는 형통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9-11)
구약적 표현으로는 주님의 계명,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고,
신약적 표현으로는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사는 것이다.
하나는 십계명이고,
또 하나는 십자가이다.
이 둘은 본질적 의미에서 하나이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자비와 공의이며,
은혜와 진리이다.
이전에는 엄하게 자녀를 키우면 효자가 난다고
공의만을 강조하여 아이를 키웠다.
그러니 너무 아이들이 주눅들어 살게 되었다.
요즘에는 공의는 없고 자비만 있는 자녀교육을 하니
법도 질서도 공의도 다 무너져 버렸다.
오냐 오냐 하며 키운 자녀 교육은
부모의 가슴에 피멍들게 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공의와 자비의 조화.
그 위대한 입맞춤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보는 것이다.
법은 법대로 공의를 이루고,
자비는 자비대로 온 우주에 전해져서
온 세상 죽을 영혼들을 향해 구원의 팔을 펼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 12:32)
십자가에서 높이 들려진 공의와 자비를 바르게 깨닫는다면
모두가 그 구원의 품에 안기지 않으랴!
죄인을 사랑하신 그 사랑
우리를 품에 안으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하여 내재하시고,
죄를 이길 승리의 근원이 되신다.
마치 무수히 많은 어둠을 빛 하나가 몰아내듯
주님의 사랑과 임재가 우리에게 승리를 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정말 그 사람을 아는 이는
순종으로 화답하게 된다.
온전한 사랑을 받은 이는
온전한 사랑으로 반응한다.
그것이 믿음이며, 순종이며, 새로운 삶의 변화이다.
그것은 역사하는 믿음이며, 수고하는 사랑이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20)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그것은 속과 겉이, 형식과 내용이 함께 하는 참 믿음이다.
그것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는 것이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그 안에 참된 형통이 있다.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 28:15-19)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이것이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렘 9:13-14)
성령은 오늘 우리를 향해 호소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참된 구원은 주님이 우리안에 사시는 것이다.
그 삶은 사랑과 순종, 봉사의 삶이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https://youtu.be/glENND73k4Q
https://youtu.be/1c7uBkEAMbw
https://youtu.be/FIU67dWafpY?list=PLx0S-BH6AEXhMO60wCNa4zr02ugcLUX0f
https://youtu.be/Xy7RPYFz2kc
https://youtu.be/h1iv4A-a23M